쌀 수탈 항구, 근대 관광 1번지 되다

2015.03.02 21:34 입력 2015.03.03 00:28 수정
박용근·사진 강윤중 기자

(9) 전북 군산

▲ 고딕 등 건축양식 혼재된 군산세관
서울역사·한국은행 본점과 닮아
제18은행, 쌀과 함께 토지 강매

▲ 물 공급 위한 제1수원지 제방
점방산·설림산 계곡 막아 만들어

전북 군산시는 일제의 흔적이 아픔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일제는 군산을 호남평야의 미곡을 수탈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았다. 현존하는 일제 잔재들도 쌀 수탈을 목적으로 한 금융기관과 지주 가옥, 수리시설, 창고 등이 대부분이다. 군산항은 고종 36년인 1899년 국내에서 6번째로 개항됐다.

군산항은 충청도와 전라도 내륙지역을 아우르는 곳으로 일제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하기 위한 최적지였다. 군산의 정미소 10곳은 밤낮없이 가동됐고, 군산 부두에는 쌀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1933년 일제는 국내 전체 미곡생산량의 53.4%를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이 가운데 20.5%는 군산항을 통해 실려 나갔다. 당시 군산시민 1만3000여명 중 일본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하니 그들의 득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탈당한 상흔이 남아 있는 군산시 장미동 옛 군산세관. 이 건물은 군산항을 개항시킨 대한제국이 1906년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하고 2년 뒤 8만6000원을 들여 준공했다. 이 건물 옆에 현재의 군산세관이 들어서 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수탈당한 상흔이 남아 있는 군산시 장미동 옛 군산세관. 이 건물은 군산항을 개항시킨 대한제국이 1906년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하고 2년 뒤 8만6000원을 들여 준공했다. 이 건물 옆에 현재의 군산세관이 들어서 있다.

■ 관광자원으로 조성된 군산근대역사벨트

군산 내항을 찾은 지난달 27일 막판 한파가 몰아쳤다. 군산의 근대유산들은 크게 군산근대역사벨트지역과 외곽 유산들로 나눌 수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벨트지역은 군산세관, 미즈상사, 장미갤러리, 근대미술관, 장미공연장, 근대건축관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외관만 둘러보는 데는 1시간이면 족하고 내부까지 꼼꼼히 살펴보려면 2~3시간 걸린다.

근대역사박물관은 근대역사유물들을 총망라한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위용이 만만치 않다. 2011년 개관했는데 현재까지 다녀간 누적 관람객은 100만명이 넘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현재 모습이 비교 전시돼 있었다.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유산을 체험적으로 설명해주는 전시관도 볼 만했다.

박물관을 나서자 (구)군산세관(전라북도 지정기념물 제87호)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세관은 군산항을 개항시킨 대한제국이 1906년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하고 2년 뒤 8만6000원을 들여 준공한 것이다.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 현관 처마를 끌어낸 것은 영국 건축양식이다. 이런 양식은 국내에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뿐이다.

군산세관을 나와 미술관 정문 앞을 지나면 (구)미즈상사와 근대미술관이 나타난다. 미즈상사는 일제강점기 무역회사였다. 이곳은 당시 식료품과 잡화를 수입해 판매했다. 근대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재 제372호)이었다. 조선의 쌀을 군산항을 통해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선 은행이라니 소름이 돋았다. 군산지점은 1907년 국내에서는 7번째, 전체적으로 18번째 지점으로 개설됐다.

근대미술관 뒤편에 있는 장미공연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금은 공연장으로 변신했지만 과거에는 쌀 곳간이었다. 건축물이 위치한 곳은 쌀 창고라는 의미를 담은 장미동(藏米洞)이다.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가 이곳에 쌀을 보관했다.

근대미술관과 함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 1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근대건축관이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재 제374호)이었던 곳으로 건축학적 의미가 크다. 군산 근대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묘사된다.

일제 강점기에 쌀을 수송했던 임피역사는 관광시설로 복원돼 활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쌀을 수송했던 임피역사는 관광시설로 복원돼 활용되고 있다.

군산지역의 물 공급을 위해 점방산과 설림산 계곡을 막아 만든 제1수원지는 1912년 착공, 연인원 10만명을 동원해 3년 뒤 완공했다.

군산지역의 물 공급을 위해 점방산과 설림산 계곡을 막아 만든 제1수원지는 1912년 착공, 연인원 10만명을 동원해 3년 뒤 완공했다.

■ 수탈금고 등 수두룩한 외곽지의 근대유산들

근대역사벨트 지역을 벗어나 2㎞쯤 이동하면 히로쓰 주택이 있다. 지붕과 외벽 마감재, 일본식 정원과 내부 목조구조 등 당시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일본 상류층 주택이다. 건물 형태는 근세 일본 무가(武家)의 고급주택인 대규모 목조주택으로 2층의 본채 옆에 단층의 객실이 비스듬하게 붙어 있다. 두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일본 두목 하야시 집으로 사용됐고,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장으로 많이 이용됐다.

히로쓰 가옥에서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인 동국사가 있다. 이 사찰 대웅전은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이뤄져 있다. 외부 삼면에 미서기 창을 설치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은 동국사가 유일하다.

동국사에서 차편으로 10여분 이동하면 제1수원지 제방(국가등록문화재 제207호)이 나온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군산지역의 물 공급을 위해 점방산과 설림산 계곡을 막아 만든 수원지다. 1912년 착공해서 연인원 10만명을 동원해 3년 뒤 완공했다.

군산시 외곽인 개정동 군산간호대학교 안에 있는 이영춘 가옥(전라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200호)도 유명하다. 이 집은 1920년 전북 최대 일본인 농장주인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가 지은 개인별장이다. 해방 후 농촌위생사업의 선구자였던 이영춘 박사(1903~1980)가 사용했다. 건축비가 총독부 관저와 비슷할 정도로 고급자재를 사용했다. 자동차로 10여분 이동하면 착취를 일삼은 일본인 대지주의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금고형 건물인 일본인 농장창고(국가등록문화재 제182호)도 볼 수 있다. 농장의 각종 서류와 현금, 불법으로 수집한 고미술품 등을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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