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재벌에 의한 필화 1호 : 정경·권언 유착의 심화

2017.04.20 21:24 입력 2017.04.20 21:26 수정
임헌영 문학평론가·민족문제연구소장

‘3분 폭리’ 연쇄 보도…검찰이 기소한 건 재벌 아닌 언론

1966년 9월22일 6대 국회 58회 정기회 본회의 삼성 재벌의 사카린 밀수사건 관련 대정부질문에서 한국독립당 김두한 의원(오른쪽)이 국무위원석을 향해 미리 준비한 오물(왼쪽 아래)을 뿌리기 전 정부의 부패를 질타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6년 9월22일 6대 국회 58회 정기회 본회의 삼성 재벌의 사카린 밀수사건 관련 대정부질문에서 한국독립당 김두한 의원(오른쪽)이 국무위원석을 향해 미리 준비한 오물(왼쪽 아래)을 뿌리기 전 정부의 부패를 질타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부정축재처리위원회가 구성(5월28일)되어 기업인들이 구속됐을 때 이병철은 도쿄에 있다가 김종필의 종용으로 한 달 뒤 귀국했다. 공항에서 바로 서울 명동 메트로호텔로 연행당한 그는 이튿날 박정희와의 면담(6월27일)에서 경제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6월30일 재산목록과 헌납각서를 제출하면서 구속 해제된 기업인들은 7월17일 경제재건촉진회를 결성하여 한 달 뒤 한국경제인협회로 개칭했다가 1968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을 정경유착의 옥동자로 탄생시켰다.

■ ‘나라 경제 망친 3분(粉)’ 고발

1963년 대통령 선거(10월15일)와 국회의원 선거(11월26일)로 민정 이양 후 12월17일 제3공화국이 출범하자 총칼 아래서 숨죽였던 언론이 진실 밝히기에 나섰다. 경향신문은 ‘국회선 밝혀질 것인가’란 기획기사를 12월18일부터 시작했는데, 필화로 비화된 건 ‘국민경제 망친 3분(粉, 밀가루·설탕·시멘트)’이었다. 흉년으로 허기진 판에 밀가루와 설탕으로 폭리를 취해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기사는 세상을 분노로 달궜다.

해가 바뀌자 야당이 ‘특정 재벌의 국민경제 파괴 반민족행위 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경향신문은 ‘3분 폭리업자 의혹 규명에 공화당 수뇌진도 동조’(1964년 1월27일) 기사에 이어, ‘폭리의혹, 점차 확대-특위 구성 반대 위해 일부 의원 매수설 떠돌아 / 설탕, 제분이 거액 취리(取利)’(2월1일)를 보도했다.

야당 의원들은 3분 폭리 조사 규명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해당 업체가 40여명을 동원해 조사를 반대하거나 기피 또는 소극적인 태도로 바꾸도록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경향신문이 그 기사를 내보내자 가판이 불티났고, 삼성이 수십만부를 사들여 가판대에서 경향신문이 사라질 지경이었다. 공개된 삼성 재벌의 폭리는 다양했다.

1961~1963년 군정 3년간 원조 달러로 소비제품을 수입하여 물가와 시장을 제압해 경제 파탄을 초래했다. 한국비료 건설을 미측과 의견 충돌이 있는 것처럼 속여 지연시켜 외화를 낭비했다. 특히 개인 이익을 위해 한·미 간에 이간 행위를 했고, 일본에서는 국내 주요 재정 사정과 업계의 비밀 산업정보를 제공하여 한·일 회담 협상에서 한국 입장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물엿과 압맥(壓麥·납작하게 누른 보리쌀)으로 폭리를 취했고, 일본과 미국·스위스에 1000만~2000만달러를 도피시켰으며, 일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작은 섬과 도쿄 근처 유원지에 별장을 두 채 지어 향락하고 있다 등등.

■ 언론 탄압 나선 재벌

경향신문은 ‘3분폭리 규명될 것인가 / 대표적인 매판성 / 소비품 장사 민족자본 조성에 역행 / K의원 모 재벌 돈보따리 풀어 앞잡이’(1964년 2월3일)를 보도했지만 이미 국회는 나긋나긋해져서 이 쟁점을 외면했다. 그러자 삼성은 해명 광고를 내는 한편 2월11일 경향신문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신용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경향신문도 이병철 삼성 회장과 김선필 대표이사 등 간부 12명을 맞고소하면서 “지금 폭리업자의 횡포가 이기느냐 사회 공기인 언론기관이 그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되느냐의 중대 간두에 처했다”(사설 ‘삼분폭리와 해명서 사태’)고 호소하며, ‘국가사회의 이익을 망각한 재벌은 용납될 수 없다’(사설, 2월22일)고 했다.

“일찍이 어떠한 외부 위압과 강권에도 굴복한 일이 없던 광영 있는 투쟁 역정을 거친 본지가 금력 앞에 상처를 입고 물러앉는 일이 있다면 결국 우리 사회 언론창달의 앞날을 위해 보다 더 불행한 일이라 할 것이며 민주주의 장래를 위해 이보다 더 불길한 일은 없다”(사설 ‘본격화한 언론과 금력의 대결’, 3월9일)고 주장했지만, 서울지검은 경향신문의 고소는 무혐의 처리해버리고 삼성의 고소만 받아들여(3월30일) 발행인 이준구, 편집인 겸 주필 박상일, 정치부장 김경래, 국회의원 유창열을 불구속 기소했다.

삼성은 이어 4월8일 서울지방법원에 경향신문을 상대로 ‘부동산 및 유체동산 가압류명령신청’을 냈다. 경향신문의 보도를 해명키 위해 신문 광고비로 120만7300원을 지출하고, 종래 월평균 2500만원이던 거래가 이 보도로 1200만원으로 줄었기 때문에 그 손해금을 청구하려는데, 신문사가 재산을 은닉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삼성은 신문사 가압류는 곧 취하했지만 명예훼손 건은 질질 끌어 30여회의 공판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1970년 초 고소를 취하하면서 끝났다. 이 필화가 나중 경향신문이 경매에 부쳐진 계기가 되었다고 <경향신문 50년사>는 밝혔다.

이 와중에 삼성은 동양 라디오(1964년 5월9일)와 텔레비전(1965년 8월15일)을 개설하고 중앙일보도 창간(1965년 9월22일)하여 국내 초유의 권력·재벌·언론 유착의 성채를 쌓았다.

■ 경향의 반격…‘삼성의 밀수’

그러나 와신상담 중이던 경향은 ‘또 재벌 밀수 / 사카린 2천 부대를 / 건설자재로 가장해 / 삼성재벌계 한국비료서 / 세관서 압수 / 벌과금 등 2천만원 징수’(1966년 9월15일)라는 강펀치를 날렸다. 울산에 건설 중이던 한국비료는 박정희가 대통령 선거(1967년)에 맞춰 화려하게 등장시키려는 야심작이었다. 부산세관에 적발되어 경남일보에서 ‘밀수품 빼돌려 / 세관선 적발품 처리 흐려’(1966년 5월19일)라고 제일 먼저 폭로했으나 중앙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세관은 벌금 2000여만원을 부과하고는 시침을 뗐으나 넉 달 만에 경향신문이 다시 터트렸다.

삼성이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사카린 원료를 비롯해 공작기계와 건설용 기계에다 변기·냉장고·에어컨·전화기·스테인리스판 등을 밀수한 사실이 드러나자 나라가 온통 뒤집어질 지경이었다.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29) 재벌에 의한 필화 1호 : 정경·권언 유착의 심화

중앙일보를 라이벌로 인식한 동아일보가 앙분(怏憤)하여 연일 “밀수, 그것은 곧 망국이다”라며 기사와 사설로 삼성과 이를 비호하는 관료를 융단폭격했다. 견디다 못해 박정희가 전면 수사를 대검에 지시하자 국회까지 가세해 결국 이병철은 백기를 들었다. 그는 9월22일 오후 2시 한국비료를 국가에 바치는 동시에 자신이 대표로 있는 중앙매스컴(중앙일보, 동양라디오방송, 동양TV방송 및 학교법인)을 비롯한 모든 사업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제6대 국회 제58회 정기회(9월22일~10월6일)에서도 삼성 문제가 거론됐다. 발언자는 이만섭·김대중·김두한이었다.

김두한 의원은 파고다공원에서 채취한 인분을 “국민들이 주는 사카린이니 골고루 맛을 보라”며 국무위원들한테 뿌려 화제가 됐지만 바로 구속, 정계를 떠났다. 장준하 의원은 10월15일 대구 수성천변 연설에서 “박정희야말로 우리나라 밀수 왕초다”라고 했다가 2개월간 투옥당했다.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는 한국비료 상무로 옥고를 치렀고, 1968년 2월 이병철은 경영에 복귀하였다. 그는 맏아들에게 “정치하는 사람들 믿지 마라.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 정치하는 사람들은 아주 약고 의리가 없다”고 충고했다.

1993년 이병철의 맏아들 이맹희는 회상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밀수의 공범”은 박정희로, 그 진행상황도 뻔히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했다고 했다. 정치자금까지 계산된 이 밀수사건이 터진 건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쪽이 정보를 흘렸다고도 했다.

“만약 이맹희가 이런 고백을 1966년 당시에 했더라면 아무리 강력한 박정희 정권이라 하더라도 무너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고백도 건망증이 심한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조용하게 넘어갔다.”(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7권)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고루고루 맛을 봐야 알지” 박정희 정권에 오물 투척한 김두한

“5·16 군사혁명을 일으킨 현 정권이 (…) 전 국민의 대다수를 빈곤으로 몰아넣고 몇 놈에게만 특혜조치를 주고 있는 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나는 대통령이 여기 나왔다면 호되게 한 번 따지고 싶지만, 없으니 국무총리를 대통령 대리로 보고, 또한 총리와 장관들은 3년 몇 개월 동안 부정과 부패를 합리화한 피고로 오늘 이 시간부터 다루겠습니다.”(웃음)

“배운 게 없어서 말은 잘할 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할 줄 모르는 행동은 잘할 수 있습니다”라며 통을 들고 국무위원석으로 다가가, “이것이 도적질해 먹는, 국민의 모든 재산을 도적질해서 합리화하고 합리화시켜 주는 내각을 규탄하는 국민의, 국민의 사카린올시다. 그러니까 이 내각은 고루고루 맛을 보아야 알지…” 외치며 뿌림.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고루고루 맛을 봐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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