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10) 태초의 창세신들 ‘경쟁과 협력’으로 인간세상을 다스리다

2018.01.24 21:33 입력

신들의 창세 올림픽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미륵님과 석가님, 대별왕과 소별왕, 윌겐과 에를릭은 쌍둥이 신이다. 빛과 어둠이, 이승과 저승이 둘이 아니듯 두 명의 창세신도 둘이면서 하나다. 둘일 때는 경쟁하고 협력하면 하나가 되는 관계, 이것이 신화가 말하는 세계의 운영 원리다.

참으로 오랜만에 남북이 함께 올림픽 경기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게 될 모양이다. 원산에서 가까운 마식령스키장에서 남북 선수들이 함께 연습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원산에서 해안을 따라 북으로 조금 더 가면 함흥, 홍원이 나온다. 이 지역은 한국 신화와 무속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 가장 이른 시기에 조사된 한국 창세신화가 이곳 태생이기 때문이다.

함흥의 큰 무당 김쌍돌이가 1923년에 구술한 <창세가>에는 두 신이 등장한다. 미륵님과 석가님, 마치 남과 북처럼 둘은 싸운다. 먼저 출연하는 창세신은 미륵님. 미륵님은 하늘과 땅을 나눈다. 이른바 천지개벽이다. 미륵님은 나뉜 천지가 다시 붙지 않도록 사방에 구리기둥을 세운다. 다음 순서는 일월 창조. 원래 해와 달이 둘씩이었는데, 하나씩 떼어내 별로 만듦으로써 천지일월성신이 자리를 잡는다. 다음은 인간 창조. 미륵님이 금쟁반·은쟁반을 양손에 들고 하늘에 축사를 하자 쟁반마다 다섯 마리씩 벌레가 떨어진다. 금쟁반의 금벌레는 사내가 되고 은쟁반의 은벌레는 계집으로 변신, 서로 부부가 되어 인류가 시작된다.

은진 미륵불상

문제는 다음이다. 이렇게 창조된 인간세상을 누가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 미륵님이 창조한 세계니 미륵님이 다스리면 될 테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석가님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 석가님이 ‘이제부터 내 세상’이라면서 도전했던 것. 바야흐로 저 유명한 미륵님과 석가님의 창세 올림픽 3종 경기가 펼쳐진다. 첫째는 동해에 줄을 맨 금은병을 내려 안 끊어지게 하기, 둘째는 함흥 성천강 강물을 여름에 얼리기, 셋째는 자면서 무릎에 모란꽃 피우기다. 모두 창세신의 신성한 능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종목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나 미륵님의 승리를 예견할 수 있다. 그가 세상을 만든 신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백전불패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것이다. 하지만 예견대로 되면 게임의 재미는 반감된다. 첫째, 둘째 경기에서 지자 석가님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이 마지막 게임에서 석가님은 부정을 저지른다. 온 잠을 자면서 무릎에서 피워 올린 미륵님의 꽃을 반 잠을 자면서 엿보다가 몰래 꺾어 제 무릎에 꽂았던 것. 승부조작을 통해 석가님은 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석가님이 인간 세상의 치리권을 획득한 것이다. 이 창세신화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승부조작자 석가님의 통치하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적지 않은 의문이 저절로 솟아난다.

왜 미륵님과 석가님이 창세신으로 등장하지? 석가님은 한 일도 없는데 창세신이라고? 어떻게 석가모니가 승부조작이나 하는 사기꾼일 수 있어? 경기 종목이 좀 이상하지 않아? 인간이 원래 벌레였다고? 해와 달을 떼어 별로 만들다니, 그렇다면 미륵님은 엄청난 우주 거인인가? 왜 여자는 은이고 남자는 금이야? 솟아나는 궁금증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평창 올림픽을 기념하여 미륵-석가의 3종 경기만 들여다보기로 한다.

중앙아시아 알타이산맥이나 사얀산맥 인근에 사는 튀르크족이나 몽골 부랴트족 사이에 전승되고 있는 창세신 윌겐과 에를릭.

그런데 세 종목 가운데 메인이벤트는 ‘자면서 꽃피우기’다. 왜냐하면 석가와 미륵, 혹은 그와 유사한 두 신의 경쟁담이 제주도, 오키나와(류큐), 몽골, 중국(도교 문헌, 구전신화), 알타이산맥 등지에서 발견되는데, ‘꽃피우기’가 공통 화소(話素)이기 때문이다. 함흥의 세 종목 가운데 앞의 두 종목은 한국신화에만 보이는 일종의 예선전이다. 따라서 미륵님과 석가님의 태초의 내기, 그 비밀을 밝히려면 꽃피우기의 신화적 본질을 탐색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가장 먼저 소환해야 할 신화가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다. 윌겐(Ulgen)과 에를릭(Erlik) 신화가 그것. 주로 알타이(Altai) 산맥과 사얀(Sayan) 산맥 인근에 살고 있는 튀르크족이나 몽골 부랴트족 사이에 전승되고 있는 신화이다. 이 지역에 전해지는 윌겐과 에를릭의 이미지는 하나가 아니다. 에를릭은 창세신 윌겐의 첫 피조물인데, 때로 둘은 형제 관계로 나타나기도 한다. 에를릭은 피조물이면서도 윌겐과 더불어 인류의 창조 과정에 동참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구전 과정을 거치면서 관계가 복잡해진 탓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둘이 ‘꽃피우기’를 두고 경쟁한다는 사실이다.

윌겐은 주술을 써서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금그릇·은그릇에 파란 꽃을 피워낸다. 그러나 에를릭은 꽃을 피울 수가 없다. 꽃을 피울 수 있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를릭은 윌겐의 꽃을 훔쳐 다른 사람을 만들어낸다. 화가 난 윌겐은 이렇게 예언한다.

“네가 만든 사람은 흑인이 되어 서쪽에 살 것이요, 내가 만든 사람은 백인이 되어 동쪽으로 가서 살리라.”

이 신화가 전승되는 지역의 세계관에 따르면 윌겐은 선한 신이고, 에를릭은 악한 신이다. 윌겐은 생명의 창조자이고 선한 영혼과 이승의 주인인 반면 에를릭은 악령과 저승의 주인이다. 당연하게도 한쪽이 빛을 상징한다면 다른 한쪽은 어둠을 상징한다. 이들이 만든 인간도 이들의 성격에 조응한다. 윌겐이 만든 사람은 빛이 오는 동쪽에서 살면서 빛의 빛깔인 흰색을 지니게 되었고, 에를릭이 만든 사람은 서쪽에 살면서 어둠의 빛깔인 검은색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함흥 무속신화에서 인간의 창조자는 미륵님 혼자여서 알타이-사얀 지역 신화와는 다르지만 꽃피우기를 하여 세계의 판도를 정하는 방식은 혹사(酷似)하다. 그런데 함흥 신화의 경우, 석가님은 에를릭처럼 꽃을 훔쳐 인간세상의 주인이 되지만 패배한 미륵님의 위치는 모호하다. 그러나 다른 유사 신화를 비교해보면 미륵의 행방이 금방 드러난다.

특히 제주도의 ‘천지왕본풀이’라는 무속신화가 행방을 잘 알려준다. ‘천지왕본풀이’의 창세신 대별왕과 소별왕도 꽃피우기 경쟁을 통해 마지막 승부를 겨룬다. 형 대별왕을 속여 승리를 거둔 소별왕은 이승을 차지하고, 패한 대별왕은 저승의 왕이 된다. 대별왕과 마찬가지로 미륵님도 사실은 저승을 다스리는 신으로 좌정했다. 윌겐과 에를릭이 이승과 저승의 주인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태초의 두 신은 싸우기만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알타이-사얀 지역 신화에 따르면 저승의 지배자 에를릭이 부정적이기만 한 신이 아니다. 에를릭은 인간에게 쇠를 불리는 기술을 전해준 존재이고 최초의 악기를 만든 존재이기도 하다. 또 에를릭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기술, 다시 말해 샤먼의 능력을 전수한 신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에를릭은 유용한 기술을 전해준 좋은 신이기도 하다. 에를릭이 인류 창조과정에 동참했다는 전승을 고려하면 윌겐과 에를릭은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는 신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윌겐-에를릭의 관계에서 보면 미륵님-석가님의 관계도 잘 보인다. 석가님은 미륵님이 다 만들어 놓은 세상에 갑자기 나타나 피조물을 강탈하는 나쁜 신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함흥의 또 다른 무당 강춘옥이 구연한 ‘셍굿’이라는 무속신화를 보면 패배한 미륵님이 석가 때문에 이 세상에 도둑과 사기꾼이 넘쳐나리라는 예언을 남기고 떠나자 이승의 일월도 사라진다. 석가님은 일월 없는 세계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미륵을 찾아 저승행에 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씹던 고기를 뱉어 하늘과 땅과 물에 사는 짐승들을 창조하는 기술을 보여준다. 석가님 역시 에를릭처럼 인간의 편에 서서 창조과정에 동참한 신인 것이다.

이제 두 신의 경쟁과 협력 관계를 좀 더 흥미롭게 보여주는 신화를 만나볼 필요가 있겠다. 제주 박봉춘 심방(무당을 가리키는 제주도 말)이 구연한 ‘천지왕본풀이’(<朝鮮巫俗の硏究>, 1937)다. 이 자료가 주목되는 것은 수명장자라는 지상의 악인을 천상의 천지왕이 이기지 못하자 에를릭·석가님과 닮은 소별왕이 대신 싸워 이긴다는 점이다. 아비의 한을 자식이 푸는 셈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소별왕의 형상이다.

은대야에 꽃을 둘을 심어 꽃이 잘 장성하는 사람은 인간세상을 차지하고 꽃이 잘 되지 아니하는 사람은 지옥을 차지하라. 은대야에 꽃을 심어 소별왕이 차지한 꽃은 잘 아니 피고 대별왕이 차지한 꽃은 잘 되니 천지왕이 ‘너희들이 차지한 대로 인간 세상에 나아가라’ 하였다. 소별왕이 인간 세상에 나오며 근심하기를 ‘내가 이승을 차지하고 형이 저승을 차지하면 수명장자의 행실을 가르치겠지만 우리 형은 못하리라’ 생각하고 ‘형님 잠이나 잡시다’ 하고 누워 자는 체한다. 형의 꽃은 자기 앞에 놓고 자기 꽃은 형 앞에 놓고 형을 깨워 말하기를 ‘어쩐 일로 형의 꽃은 지고 내 꽃은 무성한가’ 하자 형이 동생의 꾀를 알고 ‘네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을 아버지가 알면 죽으리라’ 하였다.

천상으로 찾아온 쌍둥이가 친자임을 확인한 천지왕은 이승 차지, 저승 차지를 두고 둘에게 경쟁을 시킨다. 대별왕이 당연히 이기는 형국이지만 동생은 형을 걱정한다. 사악한 수명장자를 제압해야 하는데, 착한 형이 이승으로 나가면 아버지의 여한을 풀지 못하리라는 염려다. 소별왕을, 형을 속인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자료가 대부분인데, 이 구연본은 소별왕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소별왕은 꽃 바꿔치기에 대해 즉시 사죄한다. 그리고는 형한테 수수께끼 내기나 하자고 제안한다. 동백나무 잎은 왜 겨울에도 안 떨어지는가? 동산의 곡식은 잘 안 되는데 동산 아래 곡식은 왜 잘 되는가? 동생의 물음에 형은 대답을 잘 하다가 마지막 수수께끼 앞에서 머뭇거린다. 대답을 안 해서 진다. 대답 못할 수수께끼가 아니었는데도 대별왕은 ‘너한테 졌노라’고 포기한다. 동생이 ‘형님은 안 되어도 아우가 잘 되어야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러면 네가 인간세상을 차지해라. 내가 지옥을 차지하겠노라’고 양보하기까지 한다. 대별왕은 소별왕이 이승을 다스리는 신이 되는 일에 ‘너그러운 형처럼’ 협력한다.

윌겐과 에를릭, 미륵님과 석가님, 대별왕과 소별왕은 창세 올림픽에서 서로 경쟁한다. 그러나 경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실 약간씩 양상은 다르지만 논리적으로 두 신이 쌍둥이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이미 양자의 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빛과 어둠이, 이승과 저승이 둘이 아니듯이 두 명의 창세신도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둘일 때는 경쟁하고 협력하면 하나가 되는 관계, 이것이 신화가 말하는 세계의 운영 원리이다. 그런 점에서 ‘음양론’은 지극히 신화적이다.

수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마틴 노왁은 <초협력자>에서 “밤과 낮처럼, 선과 악처럼, 협력과 경쟁은 언제나 서로 꽉 껴안은 채 공존할 것”이라고 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것은 협력’이라고도 했다. 과학과 철학이 신화에 내장되어 있던 아이디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강조한 것이다.

남과 북은 한국전쟁 이후 끊임없이 경쟁해 왔다. 둘은 태초의 창세신들처럼 앞으로도 경쟁하겠지만 경쟁의 뒷면에 협력이 공생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번 평창 올림픽이 ‘협력적 경쟁’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원문기사 보기
상단으로 이동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