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양육, 사회가 함께…“경단녀가 뭐예요?”

2018.04.04 06:00 입력 2018.04.05 15:26 수정

‘맘고리즘’은 없다

부부가 평등하게 ‘출산·육아휴직’

[라테파파의 나라에서 띄우는 편지](2)양육, 사회가 함께…“경단녀가 뭐예요?”

한국은 엄마에게 부담 전가

‘워라밸’ 중시한 스웨덴은

공보육·교육 기반 잘 갖춰

출퇴근길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폭설이 쏟아지는 눈길에서도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흔했다. 유모차를 밀며 조깅하는 여성도 있고,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남성들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퇴근길 카페 내 유모차 주차장에 유모차를 세워둔 채 부모들은 차를 마시며 담소한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한쪽에 마련된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논다. 그렇다고 아이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주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카페의 손님들도 아이를 데려온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온 사회가 두 팔 벌려 아이들을 환영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임신부터 출산, 육아, 교육, 손자 돌보기까지 모든 과정이 엄마들의 힘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름 붙인 ‘맘고리즘’(맘+알고리즘)을 스웨덴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스톡홀름 근교 후딩예의 카롤린스카 대학병원 간호사인 에스더 김 에발드손(52)은 막 두 돌이 지난 쌍둥이 딸을 키우며 야간근무를 전담하고 있다. 육아의 어려움으로 얘기하자면 이런 고난도가 없지만, 에스더는 아이를 키우면서 평소 하고 싶던 추가 공부와 직장생활까지 병행하고 있다.

야간근무는 본인이 자원했다. 낮에는 주 40시간 근무가 풀타임이지만, 밤에는 주 32.2시간만 일하면 된다. 하루에 10여시간씩 일주일에 3일 일한다. 은행원인 남편이 유모차를 밀고 25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출근하면 에스더가 오후에 아이들을 픽업하고 근무일엔 오후 9시에 출근해 아침까지 일한다.

“내가 아이들 돌볼 테니 그동안 당신은 공부를 해요.” 직장 동료들이 아빠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너무 부러웠던 남편은 자청해서 9개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한술 더 떠 에스더에게 공부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1년 코스의 중환자실 공부를 시작한 에스더는 이제 논문작성과 실습만 남겨두고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두 명이 야간에 근무해야 하는 경우라면 대개 한 명이 다른 일을 찾지요. 부부가 직장 때문에 아이들을 너무 오래 다른 사람 손에 맡기면 여기선 욕먹어요.”

아이가 아프면 유급으로 결근할 수 있다. 공보육 시스템이 잘돼 있는 스웨덴에서는 부모가 아이 키우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고 당연한 문화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일부 병원에서 간호사들의 ‘임신순번제’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하자, 에스더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노조가 허용하느냐”며 놀라워했다. 에스더의 병원에서도 한 부서에 임신이 몰린 적이 있었지만, 당연히 인력송출회사를 통해 추가 인력을 고용했다.

연중무휴 방과후 시스템

자녀 돌봄 부담감 없어

아빠들 학교행사에 적극

학생들 스스로 진로 결정

입시 스트레스도 안 받아

아이 아프면 유급 결근 등

사회가 아이들 함께 돌봐

누구나 일·가정 균형 맞춰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학교에서 토요일 오후 학교 공개수업 이후 열린 바자회. 올해 졸업하는 학생들이 수학여행비를 모으기 위해 연 바자회에는 아버지들이 많이 참가한다(왼쪽). 스웨덴에서는 유모차를 버스에 싣고 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오른쪽).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학교에서 토요일 오후 학교 공개수업 이후 열린 바자회. 올해 졸업하는 학생들이 수학여행비를 모으기 위해 연 바자회에는 아버지들이 많이 참가한다(왼쪽). 스웨덴에서는 유모차를 버스에 싣고 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오른쪽).

■ 경단녀는 없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왜 엄마가 퇴직을 고민하죠?”

많은 한국 엄마들이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때 퇴직의 기로에 선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스웨덴 직장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국에선 수업이 일찍 끝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들을 맡길 곳이 없어 3월만 되면 돌봄교실 부족과 워킹맘 몇 명이 직장을 떠났다는 기사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된다. 스웨덴에선 학교 안의 방과후 ‘여가활동센터’(Fritidshem·프리티스) 참여가 일반적이다. 80%를 웃도는 맞벌이 비중은 자녀의 학령기에도 거의 줄지 않는다.

프리티스 제공과 운영은 코뮨(기초자치단체) 책임으로, 만 6~12세 아동을 대상으로 오후 5~6시까지 연중무휴 운영된다.

2016년 기준으로 만 6~9세의 경우 학생 대부분(이용률 평균 84.3%)이 이용한다. 만 10세부터는 아이들이 머물기 싫어해 이용률이 급격히 떨어지지만,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발을 구르는 상황은 없다.

직원 60여명의 건축디자인업체 CEO인 스티나, 스톡홀름 시장 보좌관인 매그너스 융크피스트 부부. 업무량으로 말하자면 누구 못지않게 바쁜 직업이지만, 스웨덴 일반 가정의 모습대로 공보육의 틀 안에서 한국에서 입양한 초등 1·2학년, 여섯 살인 3남매를 키우며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있다. 퇴근시간은 오후 5~6시이고 회식이나 야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렸을 때 언니와 함께 프리티스를 다녔던 스티나는 “부모 모두가 일하는 스웨덴에선 아이들 대부분이 프리티스에 간다. 즐거운 추억이 많다”고 말했다.

스티나는 “현재도 여성 직원이 60% 정도로 많은데, 여성들이 성적도 좋고 일도 잘해 비율이 계속 늘어날 것 같다”며 웃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전혀 직장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여성들이 안정된 자리를 잡은 후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출산이 늦다 보니 요즘 다들 원하는 3명까지 낳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사치스러운’ 스웨덴의 고민을 전했다.

■ 장래는 학생 자신이 결정한다

한국에서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엄마들은 심리적 갈등기에 접어든다. 워킹맘은 상대적으로 자녀를 위한 입시정보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박탈감에, 전업주부들은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엄마 책임이라는 자책에 시달린다.

스웨덴에선 기본적으로 중·고등학생 스스로가 진로를 결정하고 교육은 학교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스웨덴 부모들은 아무도 입시 결과, 자녀의 진로를 엄마 책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스웨덴의 ‘엄마 역할’과 관련해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평일 낮에 학교 갈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또 아이들 교육에 아빠가 엄마들만큼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부모참여 행사 대부분은 저녁에 열렸다. 새 학년 초 저녁에 개최된 학부모 모임에 참석한 모두들 “나는 누구의 아빠와 엄마”라며 저마다 직업을 밝혔다. e메일 연락을 위한 부모 대표를 뽑는 시간엔 아빠, 엄마 한 명씩 자원해서 맡았다. 뮤지컬 발표회와 인터내셔널 데이, 디스코, 핼러윈 데이 등 모든 행사는 평일 저녁에 열리고, 학교 공개수업은 토요일에 교사, 학생들이 모두 나와 진행했다.

중3 학생들을 위한 학교설명회 성격의 고교 오픈하우스도 모두 평일 저녁에 열렸다. 퇴근한 부모들이 함께 참석하기도 하지만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교실을 돌며 상담하는 건 9학년(한국의 중3) 학생들 자신이다.

아들 3명을 키우며 스웨덴에 9년째 살고 있는 <스웨덴 일기>의 저자 나승위씨는 “한국에선 고3 엄마들이 고3병을 앓는다는데, 이곳에선 학생도, 엄마도 입시 부담이 거의 없다. 학벌이나 직업 간 격차가 별로 없고, 어렸을 때부터 남과 비교하지 않는 교육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1등을 우대하지 않고, 꼴찌를 차별하지 않는’이란 제 책의 부제대로, 스웨덴은 국회의원이든, 총리든, 돈 많은 CEO든 지위가 별 의미 없다.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간 수입차도 크지 않지만, 심정적으로까지 차별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30대나 40대나 인생의 아무 때나 원하는 공부가 있다면 대학진학을 하는 것도 한국과의 차이점이라고 했다.

■ ‘독박 육아’는 없다

스웨덴의 왕위계승서열 1위인 빅토리아 왕세녀는 에스텔 공주와 오스카 왕자가 태어났을 때 부부가 번갈아 출산·육아휴직을 썼다. 스웨덴의 젊은 장관들은 아이 픽업을 위해, 아이의 학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자리를 뜨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스웨덴 남부 말뫼시의 프리다 트롤미르 부시장은 지난해 12월 육아휴직에 들어가 5월에 복귀할 예정이다.

스웨덴의 재외공관 대사 중 40%가 여성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자녀를 남편에게 맡기고 기러기 엄마 생활을 한다. 학교 행사에서 만난 한 아빠는 어느 브랜드의 파니니 기계가 빵도 타지 않고 정말 맛있게 잘 구워진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아이가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도 친구 여러 명을 맞아 식사를 차려준 사람은 아빠였다. CEO도 말단사원도, 파트타이머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육아휴직을 하고 자녀를 함께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스웨덴에 맘고리즘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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