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파파의 나라에서 띄우는 편지

(4)“여자가 결혼 때문에 일 그만 두는건, 이제 뉴스거리”

2018.04.09 06:00 입력 2018.04.09 06:02 수정 스톡홀름(스웨덴) | 송현숙 기자

30대 여성 안나 이야기

주부 단어 사전에만 있는 듯…엄마 때 생각하면 많은 변화

하지만 아직도 갈 길 멀었다

“주부라는 말은 이제 사전에만 있는 말 같아요. 옛날 느낌이 드는 말이죠. 한두 세대 전엔 대부분 주부였으니 직장에서 일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워킹 맘’이라는 말을 썼던 것 같은데, 이젠 모두가 일하고 있으니 워킹 대디가 없는 것처럼 워킹 맘이라는 말도 쓸 필요가 없죠.”

스웨덴의 소도시 에스킬스투나 교외에서 자란 안나 그란룬드 멜라달렌대학교 연구원(34·사진)은 “할머니, 어머니, 우리 때를 생각해보면 최근 40~50년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던 그란룬드의 어머니는 세 살 많은 그란룬드의 언니를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뒀다. 한참을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며 집에 있던 어머니는 그란룬드가 4~5학년 때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란룬드는 “대도시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내 친구들 대부분이 적어도 어렸을 땐 엄마가 집에 있었고, 좀 큰 후 일을 다시 시작한 엄마들이 60~70%가량 됐다”고 기억했다. 한 세대가 지난 자신의 세대엔 “여자들이 결혼하고 일을 그만둔다면 굉장히 놀라운 뉴스가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며 여성들만 바깥일과 집안일을 모두 도맡아 할 순 없다는 긴 사회적 토론 끝에 자신의 세대에 와선 가사를 반반씩 나눠 하는 분위기가 거의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14년간 남자친구와 같이 살며 두 살 반이 된 아들을 키우는 그란룬드 집에선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거의 모든 요리를 전담하고 있다. 대신 세탁은 그란룬드가 하고 청소나 페인트칠, 전구교체 등 대부분의 집안일은 같이한다고 했다.

한국에선 일·가정 양립이 어려워 고학력 여성들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얘기하자, 그란룬드는 “스웨덴은 그 반대”라며 깜짝 놀랐다. 고학력 커플들이 오히려 남녀 임금격차가 거의 없어 육아나 가사를 고르게 나누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똑같이 교육받고 같은 일을 하는 여성을 차별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며 “확실한 공보육 체계를 구축하고 일상에서의 남녀 차별을 없앤 스웨덴 정부가 평등한 사회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자라면서 불평등을 겪은 적은 없는지 물어보자, 한참을 생각하던 그란룬드는 “별로 없었다”고 했다. 남녀 모두 목공과 바느질, 요리를 배웠고 체육시간에도 선호대로 종목을 나눴지, 성별로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그란룬드는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교에 해당하는 3년간 축구팀 활동을 했고, 요즘도 아들과 틈날 때마다 축구를 같이하고 있다. 다만 학교에서 여자축구팀은 남자팀 용품과 유니폼을 물려받았던 것이 불평등했던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성평등한 스웨덴 사회가 부럽다고 하자 그란룬드는 “스웨덴 사회가 달라진 건 확실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 정도면 됐지 생각하면 아무 진전이 없다”며 정색을 했다. 아들 세대에는 천천히는 바뀌고 있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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