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김보름

김보름 선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정동의 한 야외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왕따 논란이 불거지면서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김보름 선수가 지난달 30일 서울 정동의 한 야외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왕따 논란이 불거지면서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김보름 선수(25·강원도청)가 ‘누명’을 벗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빙상경기연맹 특정감사 결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왕따’는 없었던 것으로 지난달 23일 밝혔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김보름 선수가 고의로 마지막 바퀴에서 속도를 냈거나 노선영 선수가 일부러 늦게 주행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문체부는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목표를 상향 조정했던 작전이 실패했다. 선수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던 경기로 판단된다”며 여러 근거를 제시했다.

당시 왕따 논란은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전(2월19일)에서 김보름 선수와 박지우 선수(20·한국체대)가 먼저 들어오고, 노선영 선수(29·콜핑팀)가 크게 뒤처져서 들어오면서 일었다. 선두로 들어온 김보름 선수를 노 선수에 대한 왕따 가해자로 지목하며 여론의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정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도 61만명에 달했다. 충격을 받은 김 선수는 올림픽이 끝난 후 심리치료를 위해 정신과에 2주간 입원해야 했다.

지난달 30일 김보름 선수를 만났다. 그가 왕따 논란 후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를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듯했다.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였던 노란색 머리칼은 그새 어두운 잿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 최근 문체부 발표로 ‘왕따 논란’에서 벗어났어요. 어떤 생각이 먼저 들던가요.

“올림픽이 끝나고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문체부 발표로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불안해요.”

- 어떤 점이 여전히 불안하게 하나요.

“제 의도와 다르게 일이 발생해서 너무 커졌고, 그러다보니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으니까요. 사람에 대한 일이…, 저한테는 올림픽 때 상처로 남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 올림픽 폐막 후 2주쯤 후인 3월12일 김 선수가 정신적 충격으로 어머니와 함께 대구의 정신의학건강과에 입원했다는 내·외신 보도가 있었어요. 심리치료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던데, 의사의 진단명은 뭐였나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라고 해요. 처음에는 춘천의 소속팀 지정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상태가)많이 안 좋다고 해서 엄마가 계신 대구로 내려가서 진료를 받고 입원하게 됐어요.”

- 당시 상태가 어땠는데요.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심리적인 불안과 초조한 증상이 계속됐어요.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검진 결과 불안감과 우울감 수치가 너무 높다고 했어요. 사실 2월19일 일이 생기고부터 잠도 잘 못 잤어요. 병원을 찾아갔을 때도 하루 2시간 정도 겨우 잤던 것 같아요.”

- 12일 동안 입원한 후 퇴원했던데, 치료 받고 이제 많이 좋아진 건가요.

“처음엔 의사선생님과도 대화를 잘 못했어요. 충격 때문에 제가 마음을 열지 못해서라고 해요. 의사선생님이 처방해준 약을 먹고 인지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좀 나아졌어요. 상태가 심했을 때 먹었던 약의 성분 함량이 높기 때문에 단번에 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조금씩 성분의 함량을 낮춰서 먹었고, 요즘엔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필요할 때만 비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요. 갑자기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 왕따 논란 이후 어떤 생각이 마음을 지배했나요.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스케이트는 당연히 못 탈 것이라고 생각했고, 죽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사람들이 저를 미워한다는 생각과 자책감…,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했어요.”

- 강원도청팀의 전지훈련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어젯밤 서울에 도착했던데 이제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한 건가요.

“제가 아직 체력훈련을 할 단계는 아니에요.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아직은 가벼운 운동만 하고 있어요. 제주도도 전문적인 훈련이 아닌, 유산소 훈련을 하러 간 거예요. 스케이트 선수들은 사이클을 많이 타요. 제주도는 해안도로가 잘돼 있어서 팀이 사이클 훈련을 하러 갔어요.”

왕따 논란의 빌미가 된 2월19일 팀추월 준준결승 상황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한국은 노선영 선수가 홀로 뒤처진 채 골인한 3분03초76의 기록으로 7위에 그쳐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팀워크가 깨져 김 선수와 박 선수가 마지막 주자인 노 선수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여기에 경기 후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 태도 논란이 더해지면서 두 선수가 고의로 노 선수를 따돌리려고 빨리 주행했다는 근거 없는 설이 난무했다. 이튿날인 20일 사과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김 선수는 악성 댓글과 도를 넘은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노선영 선수 따라오지 못한 것
결승선 통과할 때에야 알아
뒤돌아보지 못한 것 후회해

(위) 김보름 선수와 박지우 선수가 지난 2월19일 평창 동계올림픽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노선영 선수와 멀직이 떨어져 앞서 달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아래) 이튿날인 2월20일 저녁 김보름 선수가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감독과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위) 김보름 선수와 박지우 선수가 지난 2월19일 평창 동계올림픽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노선영 선수와 멀직이 떨어져 앞서 달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아래) 이튿날인 2월20일 저녁 김보름 선수가 백철기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감독과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노선영 선수가 3초 이상 크게 뒤떨어져 들어오면서 논란이 불거졌어요. 경기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에서 저나 팀의 1차 목표는 준결승 진출이었어요. 당시 저희의 상황으로 볼 때는 제가 마지막 바퀴에서 선두역할을 맡고 있으니까 저만 마지막에 잘 버티면 준결승에 무난히 진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빨리 타야 한다, 나만 잘하면 된다 하는 책임감이 있었고, 그것만 생각하며 탔어요.”

- 팀추월 종목은 마지막에 들어오는 선수의 기록으로 성적을 매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한국은 노선영 선수의 기록이 공식 기록이 됐고요.

“제일 앞에서 타는 선수는 바람의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커요. 제가 전체 6바퀴 중 3바퀴의 선두를 맡았기 때문에 당연히 저보다 다른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만 끝까지 잘 버티면 될 것으로 착각했어요.”

- 노선영 선수가 따라오지 못했다는 것은 언제 알았나요.

“결승선을 통과할 때 알았어요.”

- 노 선수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전날까지 2번째 주자로 들어가는 것이었으나 경기 당일 워밍업 시간에 3번째 주자로 들어가라고 처음 (작전에 대해)들었다”고 주장했어요.

“2번째 가는 게 좋은지, 3번째 가는 게 좋은지, 선수들끼리도, 코치 선생님하고도 상의를 많이 했었고, 사실 이 방법, 저 방법 모두 경기 때 저희가 다 타본 방식이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도 크게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하셨을 것으로 생각해요.”

실제로 문체부는 이번 감사결과 발표에서 “월드컵과 국가대표 강화훈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팀추월 훈련을 했기 때문에 훈련이 부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선영 선수가 마지막 바퀴를 돌 때 세번째로 경기한 것은 올림픽 이전에 두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다만 매스스타트를 함께 훈련해 팀추월이 부족했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만약 다시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아요.

“제가 뒤를 살피면서 경기를 해야죠.”

- 후회하나요.

“음…,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후회는 당연히…. 제가 뒤를 봤더라면…, 또 어떤 상황이 됐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 팀추월 준준결승전 직후 노선영 선수만 따로 떨어져 앉아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왕따 논란이 더 사실처럼 언론에 보도됐어요.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노 선수 인터뷰를 보면 노 선수도 조직적인 왕따를 당한 것으로 믿는 것처럼 보였고요.

“경기 전에 다같이 준비하면서 대화를 많이 했었고, 저희 입장에서는 당연히 왕따가 아니었어요. 왕따였다면 경기 전에도 서로 사이가 안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다만 경기 직후여서 서로 정신이 없었어요.”

- 노선영 선수와 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나요.

“없었어요.”

- 노 선수와 관련해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잠시 생각하더니)그 상황에서 언니도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좀 더 차분하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속상한 마음도,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다 이해해요.”

말할 때 입꼬리 올라가는 습관
공식적 자리서 조심하려고 노력

- 팀추월 준준결승 경기 직후 가진 방송 인터뷰에서 김보름 선수의 표정이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더 오해가 커진 측면이 있어요. 빙상인들이나 스포츠 기자들 사이에선 김 선수가 원래 이야기할 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습관이 있다고 하던데요.

“이 일이 있기 전부터 표정에 대한 지적을 주변분들로부터 많이 들었어요. 고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신 분들이 많아요. 쉽지 않지만 인터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선수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처음 올라온 것은 팀추월 준준결승이 끝난 당일이었어요. 사람들의 반응과 국민청원 소식을 김 선수도 당일에 알았나요.

“경기가 끝나자마다 바로 휴대폰을 통해 뉴스를 보고 알았어요.”

- 예상치 못했을 텐데 충격이 컸겠어요.

“그렇죠. 사실은…, 21일 순위결정전이 끝나고 나서 지도자분들께 매스스타트 경기를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짐까지 쌌었어요. 링크에 나서는 게 너무 두려웠거든요.”

당시 빙상인과 취재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김보름 선수는 충격으로 19일 이후 문을 걸어잠근 채 휴대폰도 끄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며 울기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24일 열린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일본의 다카기 나나(8분32초87)에 이어 2위(8분32초99)로 들어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개인적으로는 올림픽 첫 은메달 획득이었음에도 그는 기뻐하지 못했다. 울음을 터뜨리며 빙판 위에 태극기를 펼치고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하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체육인, 빙상인들은 “김보름 선수가 컨디션만 잘 갖추고 나갔더라면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24일 매스스타트 경기에 나설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어요.

“짐을 싼 게 매스스타트 경기를 사흘 앞두고서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스케이트를 15년 탔어요. 그 기간 동안 배운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제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것도 스케이트예요. 그런데 그 사흘을 남기고 포기하는 것은 15년간 노력한 제 자신에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인생을 포기하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사흘만 참고 힘들어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또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도 계셔서 버틸 수 있었고요.”

매스스타트 은메달 땄지만
사과 드리고 싶어서 큰절 올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심리 치료
지금도 비정기적으로 약 복용

- 결국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땄어요. 당일 경기하면서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너무 힘들지만 이것만 끝나고 힘들어하자는 생각만 했어요. 모든 선수들의 공통된 꿈이 그렇듯이 저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오랜 소망이었어요. 하지만 그날은 메달 욕심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 또 운이 따라주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은메달을 따놓고도, 태극기 앞에 큰절하고 울면서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했어요.

“음….”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양 입술을 꽉 물었다. 왕방울처럼 큰 그의 두 눈이 붉어지며 살짝 물기가 어렸다.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잠시 말이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저로 인해 그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든 사과를 드리고 풀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김보름 선수는 매스스타트 세계 랭킹 1위인데, 논란이 없었다면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없나요.

“운동선수는 누구나 가장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을 목표로 삼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b>은메달 땄지만…</b> 김보름 선수가 지난 2월24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은메달을 확정지은 후 태극기를 펼쳐놓고 관중들에게 큰절을 하며 울고 있다.(왼쪽) 김 선수는 시상대에서도 눈물을 훔쳤다. 이석우 기자 oto0307@kyunghyang.com

은메달 땄지만… 김보름 선수가 지난 2월24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은메달을 확정지은 후 태극기를 펼쳐놓고 관중들에게 큰절을 하며 울고 있다.(왼쪽) 김 선수는 시상대에서도 눈물을 훔쳤다. 이석우 기자 oto0307@kyunghyang.com

왕따 논란으로 인해 그가 입은 피해는 정신적인 충격 외에 물질적인 부분도 있다. 일단 후원사가 재계약을 포기했다. 팀추월 경기 직후 누리꾼들이 김 선수의 후원사였던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의 공식 SNS에 “김보름에 대한 후원을 중지해달라”는 글을 쏟아낸 결과다. 네파는 2월20일 “김보름 선수에 대한 후원계약을 이달 말까지만 하고, 재계약은 없다”고 밝혔다. 또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지만 올림픽 후 김 선수에게 광고 모델을 제안한 기업도 전혀 없다.

- 현재 후원사가 없는 건가요.

“네.”

- 2월28일 강원도청 행사에서 “이번 일로 많은 것을 배웠고 인생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뭘 배웠다고 생각해요.

“제 의도와는 달리 일이 벌어지고 또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스스로 좀 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과,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지나고 나면 또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 그런 걸 배웠어요.”

의도와 달리 상처 줄 수 있다는 것
스스로 더 조심해야겠다고 느껴

김보름 선수는 대구에서 1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고, 태권도, 수영 등 여러 가지 운동을 배웠다”고 말했다. 스케이트화를 처음 신은 것은 대구 문성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스케이트장에 갔다가 동급생이 멋지게 쇼트트랙을 타는 모습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날로 어머니를 졸라 쇼트트랙을 배웠다. 그는 “힘을 주는 대로 속도가 나는 게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이르면 5살, 늦어도 초등학교 저학년에 시작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출발 자체가 늦다보니, 또래와의 실력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대구 성화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쇼트트랙을 포기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다시 스케이트장으로 돌아왔다.

- 왜 돌아왔어요.

“자꾸 생각이 났고, 다시 스케이트를 타고 싶었어요.”

- 그런데 고3 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더라고요.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있기는 하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어요.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컸죠. 그러던 차에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중계화면에서 쇼트트랙 선수 출신인 이승훈 선배가 종목을 바꿔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봤어요. 저거다, 싶었어요.”

김 선수는 2010년 5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당장 지도자부터 찾아나서야 했다. 어머니와 상경해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인근에 방을 잡고 맹훈련에 들어갔다. 모친이 대구로 내려간 후부터는 혼자 지냈다. 한국체육대학 입학 직전에 열린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 처음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2011~2012 월드컵 2차 대회 매스스타트(시범경기)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따냈고 같은 해 3차 대회에서는 이주연·노선영 선수와 함께 최초로 팀추월 3위에 올랐다. 2013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따내 대회 최다 메달 획득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매스스타트가 ISU 월드컵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2014~2015시즌부터는 이 종목에서 메달을 휩쓸며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2016~2017 시즌에 금메달 3개와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세계랭킹 1위로 당당히 올라섰다.

- 쇼트트랙과 달리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저의 스케이팅 방식이 스피드스케이팅에 좀 더 적합했던 것 같아요. 지도자들 중에도 제가 스피드스케이팅에 너무 빨리 적응하고 단기간에 기량이 많이 좋아진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 분들이 많았어요.”

- 스피드스케이팅은 타는 자세를 봐도 그렇고,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경기를 할 때도 그렇고, 연습할 때도 그렇고 장거리 종목을 탈 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이 안돼요. 타다 보면 어느새 숨쉬기도 힘들고 부하가 많이 걸려서 다리도 잘 움직여지지 않거든요. 보통 다리가 굳어온다고 표현해요. 참자, 조금만 더 참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달려요.”

- 허리도 많이 아프겠던데요.

“허리도 많이 아프죠.”

그가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 웃었다. 그늘이 걷히니 표정이 환했다.

- 부상 위험도 클 것 같아요.

“아무래도 스피드를 내서 하는 운동이다 보니 많이 다쳐요. 제 경우는 특히 무릎과 허리가 많이 안 좋았어요. 대학 때 훈련하다가 무릎의 십자인대가 부분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몇년간 고생했고, 작년 월드컵 1차대회에서는 매스스타트 예선 경기를 치르다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쳤어요. 그 바람에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먼저 귀국해야 했고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 훈련할 때는 보통 하루일과가 어떻게 이뤄지나요.

“오전 4시50분에 일어나서 5시반부터 8시까지 새벽 훈련을 하고 오후 1시반부터 6시까지 또 훈련해요. 스케이트 훈련뿐 아니라 스케이트에 필요한 체력훈련을 병행하죠.”

- 그래도 스케이트가 마냥 좋나요.

“제 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애증의 대상이기도 해요. 훈련 자체가 너무 힘드니까 좀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이 가끔은 들거든요.”

- 지금 사는 곳은 어디예요.

“지금은 대구에도 자주 오가고 서울에도 엄마가 마련해주신 저 혼자 쓰는 숙소가 있어요. 태릉선수촌이 서울에 있으니까, 국가대표 소집 시즌이 아닐 때 서울에도 머물 곳이 필요하거든요.”

- 만 스물다섯살이면 한창 예쁜 옷 입고 꾸미고 싶은 나이인데, 운동하느라 그러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음…, 아쉬움이 많긴 많죠. 그래도 저는 스케이트가 더 좋았어요(웃음).”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선수가 지난달 30일 인터뷰에 앞서 서울 정동길에서 카메라를 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보름 선수가 지난달 30일 인터뷰에 앞서 서울 정동길에서 카메라를 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금메달 따고 싶어 금발로 염색
이젠 차분해지려 어두운 색으로
4년 후 베이징서 금 따고파요

- 김보름 선수 하면 노랗게 염색한 머리칼이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였는데, 오늘 보니 색을 어둡게 바꿨네요.

“탈색하고 노란색으로 염색한 것은 몇년 전부터였는데, 어떤 대회에서든 금메달을 따고 싶은 제 마음을 담아 황금색으로 물들인 거였어요(웃음). 올림픽 끝나고 나서는 좀 차분해지고 싶어서 어두운 색을 골라 염색했는데, 물이 빠지면서 예전 노란색이 군데군데 올라오는 바람에 좀 지저분해 보여요. 그래도 머리카락은 어차피 자라니까 신경 쓰지 않아요.”

실제로 김 선수는 외모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색 계열의 티셔츠와 면바지에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메이크업은 눈에만 살짝 한 듯했다.

- 취미는 뭐예요.

“레고 맞추는 것과, 운전하는 것 좋아해요.”

- 집에 레고가 많겠네요.

“많죠. 레고로 자동차, 비행기, 집, 건물 이런 거 만드는 거 특히 좋아해요.”

- 남자친구는 있나요.

“없어요. 몇년 전에는 있었지만….”

- 이상형은 어떤 타입인가요.

“제 직업이 운동선수이다 보니, 제가 운동하는 것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 같은 운동선수는 연애상대나 결혼상대로 어때요.

“둘 다 운동선수면 같이 힘들잖아요(웃음).”

- 다음에는 무슨 대회에 나가나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안 나와서 어떤 대회가 먼저 열릴지 지금으로선 몰라요. 대표 선발전이 보통 10월, 11월에 있는데, 선발된 선수들이 바로 월드컵에 나가요.”

- 김보름 선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손가락과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생각하더니)훗날 많은 분들이 성실하고 좋은 운동선수로 저를 기억해주시는 거요.”

- 당연히 올림픽 몇관왕이 되고 싶다던가, 뭐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어요.

“음…(웃음), 이제 또 4년 남았으니까 열심히 해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매스스타트 금메달을 꼭 따고 싶어요. 준비 잘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거예요. 많이 응원해주시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그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염색약이 빠지면서 생겼다는 얼룩덜룩한 자국이 긴 생머리에 무늬를 만들며 햇빛 아래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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