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2018.08.17 14:50 강윤중 기자

지난 11일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하루짜리 휴가를 떠난 이주노동자들이 여름바다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있다. 왼쪽부터 하비(라이베리아), 비셋(캄보디아), 죠셉(나이지리아), 프린스(남아공). 행사는 ‘성공회 포천 나눔의 집’에서 지역 이주민들을 위해 마련했다./강윤중 기자

지난 11일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하루짜리 휴가를 떠난 이주노동자들이 여름바다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있다. 왼쪽부터 하비(라이베리아), 비셋(캄보디아), 죠셉(나이지리아), 프린스(남아공). 행사는 ‘성공회 포천 나눔의 집’에서 지역 이주민들을 위해 마련했다./강윤중 기자

이국의 청년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장난기 밴 웃음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 파도처럼 청량했다. 여름의 추억이 한 장의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겼다.

지난 11일 이주노동자들이 바닷가 나들이에 나섰다. 최악의 폭염에 변변한 휴가도 없이 공장과 일용직 일터에서 노동하는 이들이다. 애초 4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갑자기 잡힌 잔업과 야근으로 출발 전 대거 불참을 알려왔다. 행사를 마련한 ‘성공회 포천 나눔의 집’의 김두승 신부는 “하루 휴가도 쉽지 않은 영세한 공장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11일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11일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른 아침 포천을 떠난 버스는 휴가행렬에 밀려 오후가 돼서야 강릉 경포대해수욕장에 닿았다. 서둘러 수영복을 갈아입은 이주노동자들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피부색이 다른 20~30대의 청년들은 아이들처럼 신났다. 파도에 맡긴 몸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보였다. “너무 좋아요. 자주 오고 싶어요.” 캄보디아에서 온 비셋(25)이 한국어로 말했다. 죠셉(36·나이지리아)은 휴대폰 영상을 찍는 하비(27·라이베리아) 앞에서 흑인 특유의 동작과 표정으로 ‘이 순간’의 행복을 노래처럼 읊조렸다. 프린스(37·남아프리카공화국)는 모래사장 깊숙이 몸을 묻고 얼굴만 내민 채 익살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프린스와 죠셉이 물에 뛰어들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강윤중 기자

프린스와 죠셉이 물에 뛰어들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강윤중 기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비셋이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즐거워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비셋이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즐거워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달콤한 휴가를 휴대폰 영상에 담는 하비. /강윤중 기자

달콤한 휴가를 휴대폰 영상에 담는 하비. /강윤중 기자

프린스가 모래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강윤중 기자

프린스가 모래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다음날, 일상으로 돌아온 이주노동자들을 포천에서 다시 만났다. 프린스의 집은 공장이 모여 있는 신평공단에 있었다. 월세 13만원, 허름했다. 문을 여는 순간 습기를 머금은 열기가 훅 끼쳐왔다. 정리되지 않은 작은 방에 낡은 선풍기만이 달달거렸다. 일자리를 찾고 있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낸다. 침대 위 공책이 눈길을 끌었다. 노래가사라고 했다. 낯선 나라에서의 경험과 감정이 만들어낸 가사들이다. “(남아공에 있는)두 아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해요.” 마음은 급하지만 일용직 일자리도 흔치 않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전날 해변에서의 웃음은 그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포천 신평공단 내 13만원짜리 월세방 앞에 선 프린스. 그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포천 신평공단 내 13만원짜리 월세방 앞에 선 프린스. 그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프린스는 낯선 나라에서의 경험과 감정으로 틈틈이 노래가사를 쓴다. /강윤중 기자

프린스는 낯선 나라에서의 경험과 감정으로 틈틈이 노래가사를 쓴다. /강윤중 기자

죠셉은 공단 내 마트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였다. 마트는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유일한 곳으로, 노동자들이 모여 일자리를 찾고 정보를 나눈다. 죠셉은 오가는 이들과 인사하면서 수시로 휴대폰에 고개를 묻었다. 한국에 온 지 1년 반이 됐다는 그는 한때 콘크리트를 다루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손가락을 크게 다쳤다. “3개월 넘도록 일을 못하고 있다”는 죠셉은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버틴다고 했다. 전날 강릉행 버스 안에서 기자에게도 ‘좋은 일자리’ 소개를 부탁했다. 신평공단에 동행한 김두승 신부는 “이주노동자의 실업도 큰 문제”라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인도 출신 노동자가 며칠 전 비닐하우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평공단 내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한 마트 앞에서 죠셉을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고 정보를 교환한다. /강윤중 기자

신평공단 내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한 마트 앞에서 죠셉을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고 정보를 교환한다. /강윤중 기자

죠셉(왼쪽에서 두번째)와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공단 내 무료 와이파이존에서 일자리 정보 등을 검색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죠셉(왼쪽에서 두번째)와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공단 내 무료 와이파이존에서 일자리 정보 등을 검색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비셋은 일동면의 영세한 공장에 딸린 원룸에서 만났다. 그는 같은 캄보디아 출신 캄행(28), 캉수(25)와 함께 살고 있었다. 청년들은 의정부로 외출을 갔다가 막 돌아오던 참이었다. “저녁은 드셨어요”라고 묻더니, 사과와 우유를 내놓는다. 길쭉한 방에 이불 세 채가 나란히 펴져 있었다. 한쪽 벽에 또박또박 써서 붙여놓은 한글 단어장이 인상적이었다. “토픽(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해요.” 주 6일 고된 노동을 하지만 밤이면 피곤한 몸으로 한국어 교재를 펼친다. 캄행이 휴대폰에 저장된 한 살배기 아이 사진을 보여줬다. 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냥 참아야 돼요”라며 웃었다. 세 명의 선한 청년들은 밤길을 밝히며 5분 남짓 거리의 버스정류장까지 기자를 배웅했다. 비셋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말했다. “힘들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비셋(왼쪽)이 포천 일동면 공장 내 원룸에서 함께 사는 캄행(가운데), 캉수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비셋(왼쪽)이 포천 일동면 공장 내 원룸에서 함께 사는 캄행(가운데), 캉수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의정부 외출에서 돌아온 세 청년이 방을 치우는 등 각자 일을 나눠하고 있다. 비셋이 기자를 대접하려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의정부 외출에서 돌아온 세 청년이 방을 치우는 등 각자 일을 나눠하고 있다. 비셋이 기자를 대접하려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캄보디아 청년들의 방 한쪽 벽에 붙은 한국어 단어장. /강윤중 기자

캄보디아 청년들의 방 한쪽 벽에 붙은 한국어 단어장. /강윤중 기자

전날 해변에서 죠셉은 “엔조이 유어 라이프”를 거듭 외쳤다. 일상의 이주노동자들이 지금의 삶을 즐길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들은 2018년 한국의 무더웠던 여름을 어떤 장면으로 추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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