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으로부터 마음을 풀어줘라

2013.11.07 22:28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목사님 ‘기도빨’도 다 떨어졌나봐요.”

한 중년 여성은 그동안 목사님의 특별기도 덕분인지 잠시 몸 아픈 게 덜했는데 최근에 다시 심해졌다면서 울상을 짓는다. “이젠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 거예요.”

월급 요리사이던 그는 1년 전 개인 식당을 열었다. 다행히 장사가 잘돼 개업할 때 진 빚도 다 갚아간다.

그런데 불면증과 불안장애가 생겼다. 손님이 밀려들어 요리를 서둘러야 할 때면, 오른손 힘이 빠지면서 조리도구를 놓쳐버린다. 더 이상 요리를 못해 손님을 돌려보내거나, 아예 문을 일찍 닫은 적도 많다.

불면증 때문에 낮에 체력이 떨어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손님이 밀려들어도 기쁘기보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더 열심히 해서 남은 빚도 빨리 갚고 집도 장만하고 싶다”는 그는 “모든 게 몸이 받쳐주질 못해서 엉망이 됐다”고 울먹인다. 그러나 내면에선 일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한 것이다.

직장인인 남편은 출퇴근길에 식당과 집까지 바래다주는 등 여러 모로 자상하다. 그런데 픽업이 조금만 늦어도 남편이 원망스러워 울컥 눈물이 난다.

귀가해서 아이들이 집 안을 어질러놓은 것을 보는 순간에도 기운이 쭉 빠진다. 따로 사는 시부모도 불편하다. 시집살이도 없다. 대신 당신들이 번 돈으로 여유를 즐기며 너무 잘산다는 게 이유의 전부다.

아무도 환자 속을 썩이는 이가 없다. 다만 환자가 자신의 내적 불만을 가족에게 투사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일하며 여유도 못 부리고 참고 산다. 그런데 당신들은? 남편이 돈을 더 잘 벌어왔더라면? 시부모가 재산이라도 뚝 떼어줬더라면?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무의식이다. 그래서 멀쩡한 가족들이 원망스럽고, 일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이를 덮어둔 채 가족들만 원망했다가 다시 용서했다가 혼자 기도만 반복했다. 자신이 왜 가족들을 원망하는지 원인은 모른 채 말이다.

“그동안 무수히 마음을 내려놓는 기도를 했다”지만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다시 몸이 말을 듣지 않자 기도빨이 떨어졌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가 기도하며 내려놓아야 할 마음은 따로 있다. 바로 미리 정한 집장만 목표다.

빨리 가게 빚을 갚고 2년 내 새 아파트 장만 목표까지 세웠다. 결과를 혼자 조급하게 미리 정해놓고, 그 결과대로 되지 않을까 혼자 전전긍긍했다. 모든 고통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지금은 지금대로 여유도 부리고 싶고, 집장만도 빨리 하고 싶다. 어느 한쪽을 흔쾌히 선택하면 나머지 고통은 즐거움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런데 두 마리 다 잡으려 하니 둘 다 고통으로 다가온다. 현재 다가온 행복조차 불행으로 치환된다.

한마디로 딜레마에 갇힌 것이다. 누가 가둔 것일까. 남편이? 시부모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검약하게 살면서 돈이 모이는 대로 집을 사겠다가 아니라, 2년 내에 무조건 사야 한다는 욕심이다.

이는 세상흐름에 적절히 맞춰 살기보다, 내 원칙과 결론에 세상을 꿰맞추려는 소음인의 ‘긍심(矜心)’에서 비롯된다. 그 본질은 ‘내가 옳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 정도는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 정도도 안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현실이 우울하게 여겨지고, 때로는 밑도 끝도 없이 콧대만 높아진다.

마음에도 분명 번지수가 있다. 마음 비우기가 잘 안되는 이유는 번지수를 모르기 때문이다. 정작 내려놓을 마음의 실체를 엉뚱한 데서 찾기 때문이다.

힐링은 고통이 터져나오는 정확한 번지수를 찾은 이후에 가능하다. 주변의 어설픈 위로나 동정, 남 탓 세상 탓하는 투사는 번지수를 헛짚게 만든다.

‘놀고는 싶은데 성적은 무조건 잘 나왔으면’ 하는 식의 내 욕심을 마주볼 때,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는 일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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