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뒤에 감춰진 ‘마음’을 읽어라

2014.03.20 20:55 입력 2014.09.29 12:46 수정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우리말도 참 어렵다. 한국어가 어렵다기보다 사람간의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도 번역과정이 필요하다. 때로는 돌려서 말한 걸 돌려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병으로 내원한 A씨는 남편 때문에 부아가 치민다. 남편이 사업 실패를 한 후 야간 편의점 일을 시작한 뒤부터다. 새벽 2시에 귀가해 꼭 따뜻한 밥상을 차려달라고 한다. A씨 또한 낮에 일하는 터라 그때까지 잠을 안 자면 다음날 너무 피곤하다. A씨는 비효율적이라며 밖에서 사먹길 바랐지만 남편은 막무가내다. 이 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남편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가부장적이라서 그럴까. 남편에게 ‘밥’은 단순히 밥이 아니라 ‘자존심’이자 ‘권위’다. 사업이 잘 될 때는 상관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초라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불안해진 것이다. 남편도 비효율적이란 건 잘 알지만, 밖에서 초라해진 자신을 안에서라도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밥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 요구를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인 것이다. 아내가 남편 말 이면의 마음을 읽지 못했기에, 남편 또한 고집을 계속 부린 것이다.

퇴직한 남성들이 집안에 머물며 가사일 간섭이 지나쳐 아내가 화병이나 불면증을 호소하는 경우들도 마찬가지다. 정년퇴직이 아내에겐 ‘남편 시집살이’의 시작이 되곤 한다. 그러나 그런 간섭 이면에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를 간파해야 한다. 표면적인 시시비비만 따져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상대가 진짜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황장애로 내원한 B씨를 보자. 시댁 가던 길에 처음 발작이 나타났다. B씨는 평소 시어머니가 아들 자랑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 “우리 아들이 서울대 나왔다”는 말을 며느리에게 무한 반복한다. B씨는 “나도 명문대 나왔고, 우리 집에선 귀한 딸”이라며 “서울대 나온 게 뭐 그리 대단해서 저리 유세를 떠실까 싶었다”며 울컥한다.

시어머니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랑을 반복한 이유가 뭘까. B씨는 액면 그대로 아들 자랑으로만 여겼다. 또 아들을 높이고 며느리는 낮추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이런 거부감이 공황장애의 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결국 ‘나한테 좀 잘 하라’는 뜻을 돌려 말한 것뿐이다. 차라리 “어머니 덕에 좋은 남편 만났으니 어머니한테도 더 잘할게요”라며 용돈이나 선물이라도 챙겨드렸다면 아들 자랑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상대는 언제나 내 행동이나 말보다 속마음을 봐주길 바란다. 반면, 내가 상대를 볼 때는 상대 진심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언행만 보고 속단하려 들기가 쉽다. 그게 훨씬 더 간편하기 때문이다. 사람간의 오해와 갈등은 이런 모순에서 시작된다. 상대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는 우리말도 번역기가 필요하다. 번역과정은 외국어 독해처럼 수고로움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상대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고, 상대는 언제나 내 언행 이면의 속마음까지 알아주길 기다린다.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하나’ 싶을 때는 화만 내기보다 우리말 번역기를 돌려봐야 한다. 내가 편한 방식대로만 해석하거나, 모호하게 돌려 말해놓고도 상대가 다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내 게으름을 함께 봐야 소통의 실마리가 열린다.

☞ ‘한의사 강용혁의 심통부리기’ 팟캐스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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