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없다’는 착각

2014.04.10 20:48 입력 2014.09.29 12:45 수정
강용혁 분당마음자리한의원장

주사위를 던져 1이 나오면 행운이고 6이 나오면 불행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약 6번의 시도 후 내게 행운이 올 확률은? 한 번은 나올 것이다. 수학적으로도 분명 그렇다. 합격, 승진, 성공에 대해서도 우리는 보통 이런 기대를 한다. 이만큼 노력했으면 이 정도 결과는 나와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기대가 어긋나면 ‘나는 불운하고 해도 안된다’며 포기하고 싶어진다.

강박증으로 내원한 한 20대 남성을 보자. 직장에서 회의만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 낮술 한 거냐는 오해까지 받는다. 더욱 큰 고민은 성충동과 관련된 강박사고다.

환자는 진로 고민과 좌절감이 심했다. 비슷한 성적의 대학동기는 더 좋은 데 취직했고, 현 직장 동기들은 자기보다 스펙이 좋지 않았다. 손해 본 것 같아 더 좋은 기업으로 옮기려 했지만 이마저 실패했다. 대신 자신보다 못하다 여기던 동료는 성공했다. 내겐 운이 오지 않고, 주변엔 온통 운이 따라준다고 여겨졌다. 현실에서 좌절된 욕구를 보상받으려는 무의식이, 금지된 것을 상징하는 성충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다시 주사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실제 6번 던지면 1, 2, 3, 4, 5, 6이 골고루 한 번씩 나올까. 그래야 공평한 것일까. 누구는 1이 서너번씩, 누구는 6만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 6번의 과정만 딱 떼어놓고 보면, 다른 이는 운이 매우 좋고, 나는 불운하고 억울하다.

이런 예는 너무 많다. 대입전형이 다양해지다 보니, 같은 반에서 성적이 떨어지던 친구가 더 좋은 대학을 갔다며 우울증이 온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시류와 맞지 않아 사업에 실패한 이들도 많다. 직장에선 나보다 능력 없는 사람도 윗자리를 차지한다.

TV만 봐도 그렇다. 십수년 무명 가수가 본업과 전혀 상관없는 예능프로 출연 후 벼락스타가 된다. 실력보단 운 때문에 세상이 불공평하게 돌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계속 감당할 실력이 없다면? 세상은 금방 그를 외면한다. 마치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공중으로 순식간에 솟구쳤다가, 안전장치도 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과 고통이 기다린다. 이게 과연 행운일까. 대신 쌓아둔 탄탄한 실력이 있다면 이제야 운이 따라준 것이다. 결국 운은 이리저리 불공평한 듯 옮겨다니지만, 길게 보면 결과는 노력에 좌우된다.

그러나 실력 있고 노력했다고 반드시 ‘당장’ 성공한 성적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이런 착각이 우리를 빨리 지치게 만든다. 주사위 6번 던지면 꼭 한 번은 1이 나와야 한다는 착각이다. 그러나 60번 아니 600번을 던지면 어떨까. 누구는 초반에, 누구는 후반에 1이 몰려 나올 순 있다. 그러나 1이 나오는 횟수는 많이 던질수록 편차가 크지 않다. 행운인지 아닌지는 당장 6번 뒤가 아니라 60번, 600번을 더 던져야 결정된다.

법구경에 ‘악의 열매가 맺히기 전에는 악한 자도 복을 만난다. 선의 열매가 맺히기 전에는 선한 이도 이따금 화를 만난다’고 했다. 이제 고작 6번 던지고 ‘나는 운이 없다’ 포기하면 영영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60번, 600번 던지려는 시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기에 더욱 앞서가게 되고, 부족한 사람은 남이 잘된 것만 부러워하기에 더욱 뒤처지기 쉽다. 운이 아니라 내 시선의 문제다.

☞ ‘한의사 강용혁의 심통부리기’ 팟캐스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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