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남편 질식 살해’ 모녀에 살인 무죄

2012.09.04 22:13 입력 2012.09.05 00:46 수정 수원 | 최인진 기자

법원, 과잉방어만 인정 집유

지난 4월11일 오후 8시. ㄱ씨(48)는 경기 성남시 중원구 자신의 집에서 여느 때처럼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술을 마셨다. ㄱ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뇌병변 1급 장애인인 큰딸(26)을 마구 때렸다. 아내인 ㄴ씨(48)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셋째딸(21)은 발길질을 피해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막내아들 ㄷ군(14·중학교 2학년)이 이를 막으면서 ㄱ씨가 쓰러졌다. ㄴ씨는 다급하게 옆에 있던 줄넘기 줄과 케이블로 남편 ㄱ씨의 손발을 묶고 “다 죽이겠다”며 고함을 치는 입에는 청테이프를 붙였다. ㄴ씨는 결박한 남편 ㄱ씨를 자식들과 함께 안방으로 옮긴 뒤 이불을 씌웠다. 이후 ㄱ씨는 6시간 동안 이불 속에 방치되는 과정에서 질식해 숨졌다. ㄴ씨는 경찰에 “내가 남편을 죽였다”고 자수해 현장에서 검거됐다.

경찰 조사에서 ㄱ씨의 폭력은 수십년간 계속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21살에 남편 ㄱ씨와 만나 동거생활을 시작한 ㄴ씨는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이유 없는 폭력에 시달렸다. 아이들도 폭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아들을 원했던 남편 ㄱ씨는 막내아들을 제외한 세 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검찰은 남편을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로 ㄴ씨를 구속 기소했다. 또 엄마를 도와 아버지를 숨지게 하는 데 동조한 둘째딸도 불구속 기소했다. 4일 수원지법은 살인 및 존속살해로 기소된 모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피해자가 질식해 숨졌지만 입만 막았을 뿐 코를 막지 않았고 피해자가 최소한 몇 시간 동안 살아있던 점에 비춰 살인의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폭행치사와 존속폭행치사 혐의는 자백과 여러 증거를 근거로 과잉방어가 인정된다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을 맡은 박준영 국선변호인은 “가정폭력의 악순환을 더 이상 사회와 법이 방조해서는 안된다”며 “장기간 인권유린을 당해 온 ㄴ씨 가정이 이제라도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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