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간첩 몰려 사형된 지 49년…법원 “이수근, 간첩 아니다”

2018.10.11 21:39 입력 2018.10.11 21:40 수정

서울지법 재심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아니다” 무죄 판결

“유일한 증거인 자백, 중정 고문·폭행 과정서 나와 인정 안돼”

당시 항소도 없이 사형 집행…2007년 과거사위가 조작 밝혀

위장간첩 몰려 사형된 지 49년…법원 “이수근, 간첩 아니다”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씨(사진)가 반세기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김태업 부장판사)는 11일 열린 재심에서 이씨의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969년 7월 사형이 집행된 지 49년 만이다.

이씨는 1967년 3월 판문점으로 귀순해 남한에 정착했다. 대대적인 환영과 함께 정착금도 받았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는 1969년 1월 이씨가 홍콩으로 출국하자 북한 지령으로 간첩활동을 해 온 이씨가 북한에 가려고 외국으로 나간 것이라며 이씨를 체포했다.

검찰은 이씨를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1969년 5월 사형을 선고했다. 항소 절차도 진행되지 않은 채 사형이 그대로 집행됐다. 그 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로 2007년에서야 당시 중앙정보부가 이씨를 위장간첩으로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유죄로 인정되는 데 사용된 거의 유일한 증거인 이씨의 ‘자백’이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고문·폭행 등 가혹행위 과정에서 나왔다며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자백 외에 이씨가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서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수사관들의 가혹행위 외에는 이씨가 자백할 사정도 없다”고 밝혔다.

중앙정보부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씨를 구금해 조사를 계속했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부 진술은 법원에 아예 제출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씨는 애초에 체포될 당시 (북한으로 가려고 한 게 아니고) 중립국으로 가서 남북한에 대한 책을 쓰려고 했다고 진술했는데 이 같은 진술은 수사기록에 편철돼 있지 않다”며 “의도적으로 뺀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간첩이 필수적으로 소지하는 암호명이나 난수표가 이씨에게는 없었고, 이씨가 알던 정보들 중 특별히 의미가 있는 국가기밀도 없었다”며 “이씨는 출국해 북한영사관으로 가서 얼마든지 북한으로 가거나 북한 인사와 접촉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가 간첩이라고 볼 정황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씨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국가에 의해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낙인찍혔고 그러한 상태에서 사형이 집행돼 생명권까지 박탈당했다”며 “국가는 권위주의 시대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 이씨와 유족들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씨가 여권을 위조해 출국할 때 사용하고, 환전을 했는데도 신고하지 않은 혐의(공문서위조·외국환거래법 위반)는 유죄로 인정됐다. 결과적으로 재심에서 형량은 징역 2년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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