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인복’이라니까!

2024.05.26 20:32 입력 2024.05.26 20:33 수정

‘청년들의 무기력’ 두드러진 시대
가장 큰 원인은 친구가 없다는 것
자본은 광고로 ‘홀로이즘’을 전시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 생명 없어

고전평론가로 오랫동안 전국 곳곳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덕분에 시대의 변화상을 다방면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예컨대, 20세기엔 노동자들이 야학을 했지만, 요즘은 CEO들이 새벽에 인문학을 한다. 또 이전엔 남성들이 지식을 독점했지만 요즘 모든 인문학 강연장의 90%는 여성이다. 여성의 뇌는 감성편향이라 이성적 사유는 좀 어렵다고 했던 담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장 놀라운 변화는 청년들의 무기력이다. 중고생들은 허리를 곧추세우기가 어려울 지경이고, 대학생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에 짓눌려 있다. 이 청년들을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해온 부모와 교육당국자들은 이런 광경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좋은 나이에, 그 멋진 캠퍼스에서, 대체 왜?

하긴 안다고 한들 그다음에 나올 반응은 뻔하다. 과도한 경쟁과 개인주의, 제도와 시스템의 보완 등등. 이미 그런 진단하에 천문학적 자본과 공력을 들여왔건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출산율 세계 최하’ 등의 치명적인 타이틀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가히 시대적 이슈라 할 만하다.

무릇 모든 사건의 키는 현장에 있는 법, 난제일수록 현장을 주시해야 한다. 교실을 휘감고 있는 저 무기력, 무표정의 원인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친구가 없어서다. 친구랑 같이 있으면 누구든 생기발랄해진다. 소리, 눈빛, 손짓 등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여, 청춘과 우정은 그 자체로 동의어다. 읽고 쓰고 말하고, 만남과 이별, 동경과 추앙 등 성장에 필요한 모든 활동은 친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 시대 청년들은 친구가 거의 없다. 친구가 없는 청춘, 이게 가능한가? 아마 단군 이래 처음일 것이다.

그럼, 어쩌다 이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을까? 스마트폰 때문에? 코로나19 때문에? 역시 지루한 동어반복이다. 인터넷과 줌은 우리가 접속하고 교감할 공간을 대폭 확장해주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디지털 혁명의 핵심 아닌가. 한데 그 마법의 테크닉을 고립과 단절을 위해 쓴다고? 대체 왜?

자, 여기부터가 진짜다. 이 세대는 태어난 이래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산다는 건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임을. 운명의 키는 결국 ‘인복’에 달려 있음을. 집에서도 또 학교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대중문화야 말할 나위도 없다. 거기는 화폐의 제국 아닌가. 자본은 모든 존재들을 분절한다. 그래야 무한증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화려한 판타지물인 광고를 보라. 혼자 먹고, 혼자 춤추고, 혼자 여행 가고, 그야말로 ‘홀로이즘’의 극치다! 영끌의 대상인 아파트 광고는 더 심하다. 화려한 뷰와 인테리어, 온갖 쾌적함을 갖춘 그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건 역시 혼자다. 이건 개인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집단적 예속에서 벗어난 개체들의 자유로운 연대를 뜻하지만, ‘홀로이즘’은 세상의 좋은 건 오직 ‘나만’ 즐겨야 한다는 ‘전도망상’의 산물이다.

그게 다 자본 탓이라고? 맞다. 그렇다면 그 파상적 공세에 과감하게 맞서야 하지 않나? 왜 가정과 학교조차 열렬히 맞장구를 치고 있는가 말이다. 그러니 청년들은 일찌감치 ‘친구 따윈 필요 없다’고 굳게 믿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들은 민주화 세대의 후예들이다. 가장 역동적인 청년기를 보낸 5060세대의 후예들이 무기력의 블랙홀에 빠져 있다니, 참 기막힌 아이러니다. 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듣고 또 들었을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라니까!’라는 ‘흑마술’의 진언을. 이 대목에서 진짜 궁금해진다. 오직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그 험난한 시대를 통과해온 민주화 세대가 어쩌다 이렇게 ‘자본의 아바타’가 되었을까. 독재보다 더 무섭고 센 게 ‘돈맛’이라는 뜻인가. 아무튼 그 결과가 바로 ‘무기력한 청춘’의 탄생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우주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생명은 그 자체로 플랫폼이다. 간디의 표현을 빌리면 ‘영혼의 바다’다. 온갖 존재들이 쉼 없이 교차하는! 하여, 바다에서 떨어져 나간 물방울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다.

그러니 이제라도 청년들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 활기찬 신체와 명랑한 일상, 심오한 지혜와 멋들어진 유머,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오직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그렇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 인복이라니까!’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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