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주체’ 경찰은 업무량 늘자 처리 지연
지휘권 잃은 검찰은 ‘보완 수사’ 요구
사건 휘말린 시민들, 혼란·불편 ‘이중고’
지난해 1월 검찰권 견제를 위해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은 최소화하고 경찰의 권한과 책임은 확대하는 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다. 변화된 제도는 형사사건에 휘말린 시민들에게 높은 문턱으로 작용했다. 수사 책임자가 검사에서 경찰 수사관으로 바뀌는 커다란 변화였지만 일선에선 그에 걸맞은 수사력이 준비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건 처리는 지연됐고, 시민의 고소·고발은 까다로워졌다. 물론 개혁 직후의 시행착오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시간의 축적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수사권 조정 이후 주로 조명된 것은 부패범죄 수사의 향배였지만, 실상 더 큰 혼선은 민생사건에서 빚어졌다. 각종 사기 등 시민들 실생활과 밀접한 사건의 처리가 적지 않게 지연된 것이다. 종전에도 사건 처리 지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검사의 수사지휘가 제동장치 역할을 했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 검사가 사건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에 등록하고 ‘자기 사건’으로 관리했다. 사건 접수 후 3개월이 지나면 미제사건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검사가 실적 관리를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수사지휘를 했다. 경찰은 관행적으로 한두 달 이내에 수사 결과를 검찰로 보냈다. 수사가 미진하면 검사가 직접 수사하기도 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지휘권이 폐지된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만 요구할 수 있다. 사건은 오롯이 ‘1차 수사 종결권’을 가진 경찰의 사건이 됐다. 검사는 횟수 제한 없이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경찰은 마감시한 없이 보완수사를 할 수 있다. 자영업자 A씨가 디자인 도용으로 다른 자영업자를 고소한 사건이 그렇다. 검찰은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는데, 그 이후 수개월간 진전이 없다. 경찰은 수사 기밀 등을 이유로 어떤 부분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가 있었는지 함구 중이다. 신속한 사건 처리를 바라는 A씨가 증거 수집 등에 협조하려 해도 방법이 없다.
■고소·고발도 어려워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범죄가 부패범죄 등 6대 범죄로 한정되면서 사건은 경찰로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경찰 1인당 사건 보유 건수는 17.9건으로 전년 대비 19.4% 증가했다.
여기에 더해 과거 검찰이 직접 수사해 처리하던 부분도 이제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 경찰의 실질 업무량은 더 늘었다.
그러나 경찰의 준비는 충분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량 급증에 사기사건 등을 수사하는 부서를 기피하는 현상도 보인다. 서울지역 한 일선 경찰서는 수사과 인력의 절반가량이 지난해 교체됐다. 고참들이 일이 많은 수사부서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새로 충원된 인력도 수사경력 1년 미만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은 늘어났는데 수사역량은 떨어진 셈이다. 10년 이상 수사경력을 가진 경찰 수사관 B씨는 지난해 한때 사건 보유 건수가 40건을 넘었다.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B씨는 “예전 같으면 바쁠 때 적당히 사건을 정리해 보내도 검사가 사건을 법리에 맞게 정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은 경찰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수사에 대한 책임이 커지고 수사 총량이 늘어났다면 인력과 예산도 따라와야 하는데 뒷받침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업무 부담은 고소·고발 반려로 이어진다. 종전에도 경찰은 고소·고발 사건을 접수하는 데 까다로웠지만, 이 경우 민원인이 검찰에 사건을 낼 수 있었다. 검사는 킥스에 고소·고발 건을 ‘자기 사건’으로 입력하고 다시 경찰로 사건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검찰이 고소·고발 건을 접수해도 경찰로 단순 이첩한다. 경찰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자기 사건’ 사라진 검찰
검찰은 업무량이 대폭 줄었다. 과거 형사부 검사 업무의 60~70%를 차지하던 불기소 결정서 작성은 이제는 1차 수사 종결권을 가진 경찰의 업무가 됐다. 직접수사를 통한 보완수사나 수사지휘가 사라지고, 경찰에 맡기는 보완수사 요구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