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학 녹취록’ 신빙성 인정 안 돼…대장동 수사·재판에 영향

2023.02.09 06:00

‘곽상도 무죄’ 판결 내용

법정 나오며… 대장동 특혜와 관련해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아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의원이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법정 나오며… 대장동 특혜와 관련해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아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의원이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녹취록 ‘아들 통해 돈 달라’
김만배 “허언 인한 오해”
법원은 김씨 주장 받아들여
“곽, 대장동 관여 증거 없어”

이재명 대표 수사에도 영향

대장동 ‘50억 클럽’으로 유일하게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의 뇌물 혐의에 대해 8일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곽 전 의원 아들 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받은 50억원을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검찰과 곽 전 의원 측은 징역 15년과 무죄를 각각 주장하며 첨예하게 다퉜는데, 재판부가 곽 전 의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검찰이 핵심 증거로 내세운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도 인정되지 않았다. ‘정영학 녹취록’은 대장동 비리 수사의 핵심 단서였는데, 대장동 비리와 관련한 법원의 첫 판단에서 신빙성이 탄핵된 것이다. 줄줄이 남아 있는 다른 수사·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곽 전 의원은 2015년 하나은행이 화천대유와 꾸린 성남의뜰 컨소시엄에서 빠지려 하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부탁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한 대가로 거액의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아들 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퇴직금·성과급 명목으로 받은 50억원이 곽 전 의원에게 건네진 뇌물이라고 봤다.

재판부도 병채씨가 받은 50억원이 사회통념상 적정한 수준을 웃돈다고 했다. 하지만 곽 전 의원이 대장동 민간업자들을 도와준 대가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2015년쯤부터 김씨의 지시를 받은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사업계획을 보고받거나 대장동 사업에 관여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김씨가 성남의뜰 컨소시엄 유지를 위해 곽 전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요청에 따라 실제로 하나은행 임직원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당시 곽 전 의원이 국민의힘 부동산투기특별조사위원회 위원으로서 한 활동은 대장동 개발사업과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병채씨가 받은 성과급 등을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없다”며 이 부분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들 병채씨가 대리인으로서 금품이나 뇌물을 받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드는 사정들은 존재한다”면서도 “병채씨의 급여 계좌에 입금된 성과급 중 일부라도 곽 전 의원에게 지급됐거나 곽 전 의원을 위해 사용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했다. 성인인 병채씨가 결혼 후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한 점, 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법인카드 등을 받았다고 해서 곽 전 의원이 지출할 비용을 면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경제적 이익을 받았다고 해서 그만큼 곽 전 의원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취지이다.

‘정영학 녹취록’ 신빙성 인정 안 돼…대장동 수사·재판에 영향

검찰이 곽 전 의원 혐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운 ‘정영학 녹취록’은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정영학 회계사가 김씨 등과 나눈 대화를 오랜 기간 녹음해온 녹취록에는 김씨가 ‘(곽 전 의원이) 아들 통해 돈 달라고 한다’고 말한 내용, 김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과 대화하면서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할 방법을 논의한 상황 등이 담겼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병채씨가 받은 50억원이 곽 전 의원에게 건네진 뇌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씨는 “허언이 낳은 끝없는 오해”라며 맞섰다. 정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에게 공통 사업비를 더 부담시켜 자신의 몫을 늘리려는 ‘허풍’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녹취록에 담긴 내용과 허언이라는 김씨 주장 중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지가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는데, 재판부가 김씨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정 회계사, 남 변호사에게 ‘곽 전 의원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해왔고, 정 회계사 등과 구체적 지급 방안에 관해 논의하는 대화를 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김씨는 정 회계사, 남 변호사 사이 공통 사업비 분담에 관한 분쟁이 발생한 이후 곽 전 의원을 포함해 이른바 ‘약속클럽’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각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곽 전 의원에게 줘야 하는 50억원 명목에 대해서도 성남의뜰 컨소시엄 와해 위기 무마와 연결지어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녹취록에 담긴)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이 이날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함에 따라 향후 다른 대장동 사건 수사·재판도 영향을 받게 됐다. 대장동 배임 혐의 재판에서도 검찰은 ‘정영학 녹취록’에 나온 김씨 발언 등을 혐의를 뒷받침하는 주된 근거로 제시해온 터다.

유 전 본부장에게 700억원을 주기로 약정했다는 김씨 발언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김씨는 이에 대해서도 “허언이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 의혹, 이 대표의 대장동 사업 배임 의혹, 나머지 ‘50억 클럽’ 의혹 등도 ‘정영학 녹취록’에 담긴 대장동 일당의 발언이 주된 근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기가 더 까다로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이 남은 수사와 재판에서 혐의를 입증하려면 녹취록에 담긴 발언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추가 증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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