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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 입주자프로젝트 - ‘진도믹스견’과 산책하는 여자들

안녕하세요? 저희는 국내 최초 ‘유기견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로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귤엔터’라고 합니다. 경향신문 ‘우당탕탕 귤엔터’라는 기획을 통해 시고르자브종의 반려견 데뷔 이야기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플랫 입주자 프로젝트’를 통해 반려동물을 사지 않고 입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해요.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반려견 인구가 천만 명인 시대에 살고 있는데요. 우리 사회의 다른 돌봄 영역처럼 반려견도 여성들이 돌보는 경우가 많아요. 산책을 가거나 반려견 교육 시설에 가 보면 여성 비율이 높습니다. 그래서 동물을 반려하는 이야기는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안 가족이기도 하고, 쌍방 구원물이기도 하고, 길거리 타깃이 되기도 하는 개와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 들어주시겠어요?

첫 번째 주자는 ‘애곰이 보호자’님의 이야기에요. 까만 개 내 동생 애곰이와 잘 살기 위해 강원도 영월로 이주해 사는 1인가구 여성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산책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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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와 산책한다는 건, 때론 ‘야구방망이’ 들 결심을 한다는 것 [플랫]

사실 처음엔 개를 반려할 생각은 없었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강아지를 펫숍에서 사는 줄 알았거든요. 어느 날 유기견 쉼터에 작고 어린 개들의 입양 홍보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됐어요. 왜 사람들이 펫숍에서 개를 사는지 의문이 들었죠. 당시 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제가 살고 있는 곳의 공고들도 살펴봤어요. 정말 많은 어린 강아지들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진짜 이 어린 애들도 공고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킬까?’라는 생각에 며칠 공고를 더 들여다봤어요. 정말 그 아이들이 다 안락사로 죽게 되는 거였어요. 그때 ‘이거 진짜 장난 아니구나. 심각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뒤 유기견 쉼터에 임시보호 신청을 해서 가족을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초반이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니 자신만만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신청할 때마다 늘 거절되는 거예요. 아무래도 1인가구에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었겠죠.

그러다 어플 속 안락사 명단에 올라와 있는 애곰이를 만나게 됐어요. 검정 물개같이 누워있는 애곰이 설명에는 3개월령으로 추정되며 같이 입소한 남매는 입양을 가고 혼자 남았다고 돼 있었어요. 보호소에 전화를 걸어 입양 문의가 있는지 물어봤죠. 이후 매일 그 검정 개가 입양을 갔는지 물어봤는데, 안락사를 코앞에 두고도 아무 문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느 날 전화를 끊고 아무 생각 없이 보호소로 향했고 덜컥 입양하게 됐죠. 이후 ‘애곰이’이는 제 반려견이자 동생이 되었어요.

한 유기견 어플리케이션에 올라온 애곰이와 새끼때 찍은 애곰이의 사진. 애곰이 보호자 제공

한 유기견 어플리케이션에 올라온 애곰이와 새끼때 찍은 애곰이의 사진. 애곰이 보호자 제공

애곰이와 함께 지내면서 검정색 개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경기도에 살 때 집 주변에 공사 현장이 많았거든요. 어느 날 애곰이와 공사 차량이 오가는 길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무리지어 가던 남자들이 “검정개가 정력에 진짜 좋은데”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몇 번 있었는데, 이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부터 애곰이와 나갈 때마다 야구 방망이를 들고 산책했어요. 전 키가 큰 편인데, 후드집업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머리카락을 감추고 산책을 했어요. 가끔 옷 틈으로 머리카락이 보이면 휘파람을 부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방망이 없이 걸을 때보단 나아졌어요.

애곰이를 보호소에서 데려왔던 날 친구는 “냄새나는 그 개를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했어요. 입양 사실을 알리자 친구는 “검정색 유기견이 말이 되느냐. 50만원이면 더 예쁜 개를 살 수 있는데”라고 했어요. 저는 애곰이를 정말 동생처럼 반려하기 위해서 데려온 것이라고 설명해봤지만 친구는 저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밖에도 여러 가지 말을 들었죠. “개가 일단 검정색이라 기분이 나쁘다”라거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섭다”라거나, “염소를 데리고 산책을 왜 나왔냐”는 말도 있었어요.

성견이 된 애곰이의 모습. 애곰이 보호자 제공

성견이 된 애곰이의 모습. 애곰이 보호자 제공

애곰이가 제 동생이 되었을 무렵, 애곰이는 한창 성장기였어요. 사회화에 중요한 시기라 저는 되도록이면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했어요. 하루는 산책하러 나갔는데, 멀리서 백구와 걸어오던 여성 두 분이 다가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젊은 여자 혼자 이 시간에 진돗개랑 산책하면 절대 안 된다”며 “사람들이 시비를 많이 걸 테니까 앞으로는 우리와 같이 다니자”고 했어요. 전 애곰이에게도 산책 모임이 생겨서 기뻤어요. 산책 모임을 통해 초보 보호자였던 저도 다양한 팁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카페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데, 지인이 강원도 영월에서 카페를 개업하니 일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영월에서 지내는 것이 애곰이에게 좋을 것 같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집을 구할 때부터 어려움이 많았어요. 부동산에서 개와 함께 살 수 있다고 해놓곤 막상 애곰이를 보면 “이렇게 큰 개를 데리고 올 줄 몰랐다”며 퇴짜를 놨거든요. “그렇게 큰 개는 마당에서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이사의 시작부터 쉽지 않았지만 개와 살기 위해 각오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진짜 어려웠던 건 화를 내는 사람들이었어요. 집 앞을 산책하는 것 뿐인데 쫓아 나와서 파리채를 흔들며 “여기는 내 땅이니 이 앞으로 지나가지 말라”고 언성을 높이는 사람, 느닷없이 나타나 저한테 개똥을 치우지 않는다며 화내는 사람들 말이에요.

더 화가 났던 건 저와 애곰이에게는 화를 내던 사람들이 다른 개를 산책시키는 아저씨들을 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영월은 춥다보니 작은 개도, 큰 개도 패딩을 많이 입었어요. 다른 남자들이 패딩을 입힌 개를 품에 안고 다닐 땐 아무 관심 없다가 제가 애곰이에게 옷을 입히고 산책하면 “개를 끌고 다니는 저 여자”라는 말로 시작해 한 마디씩 말을 보탰어요. 주민들끼리 “어제 개 끌고 다니는 그여자가 뭘 했다”며 말을 주고받은 것도 알게 됐어요. 이사 후 몇 달 동안 제가 동네에서 타깃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 했어요. 영월은 도시보다 개에게 호의적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완전히 반대였던 거죠. 오히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 감정을 숨김 없이 드러냈어요.

옷을 입은 애곰이의 모습. 애곰이 보호자 제공

옷을 입은 애곰이의 모습. 애곰이 보호자 제공

이사 후에는 한적한 동네라 야구 방망이를 들고 다니진 않았어요. 다만 멀리서 인상을 잔뜩 구기며 저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저씨를 보면 느낌이 딱 오잖아요? 그럼 저는 귀신들린 사람처럼 욕을 중얼중얼 크게 했어요. 신들린 연기를 하는거죠. 그럼 다가오던 아저씨들도 주춤주춤하다가 피해서 가요.

사실 제가 어린 여성이기 때문에 쉽게 말을 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항상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한번 더 배려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몸에 배인 거죠.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는 제게 트집을 잡거나 제가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뭐라 할 때마다 매번 설명하고 해명했어요. 사실 좋은 표현이든 아니든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례한 일이잖아요?

애곰이는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에요. 그래도 저는 애곰이 배변을 처리할 때도 줄을 짧게 잡고 제 옆에 바짝 앉혀요. 그런데 한 아저씨가 “개가 싸나워서 저렇게 조심하나보네”라고 말하며 지나가는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례한 사람들한테 제가 굳이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렸을 때 뉴질랜드에서 오래 유학 생활을 했어요. 당시 저는 개를 반려하지 않았지만 어딜 가나 개가 있는게 당연한 분위기였어요. 식당, 마켓, 쇼핑몰 등 늘 개들이 있었죠. 당연히 개를 데리고 온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걸지 않았고요.

산책을 하는 애곰이의 모습. 애곰이 보호자 제공

산책을 하는 애곰이의 모습. 애곰이 보호자 제공

한국에선 개를 산책시키는 여성은 쉽게 표적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랑 다니는 여성에게 쉽게 말을 걸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무도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제가 먼저 주눅이 들거나 눈치를 보고 있으면 애곰이가 같이 주눅 들곤 하더라고요. 저도 당당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습관적으로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우리에겐 강인함이 좀더 필요한 것 같아요.

▼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검은 개’와 산책한다는 건, 때론 ‘야구방망이’ 들 결심을 한다는 것 [플랫]

“애를 낳아서 데리고 다녀야지 개를 왜 그렇게 데리고 다니냐. ” “개가 일단 검정색이라 기분이 나쁘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겪어본 적 있다는 ‘산책 시비’ 플랫 입주자님도 혹시 경험하신 적 있으신가요? 개를 반려하며 겪게 되는 불편함이나 불합리함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플랫팀이 기록하겠습니다.

구글 폼 링크 ( https://forms.gle/61yEqmoqZuRbWcRE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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