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하면서 본 최악의 사례… 인간 이하의 경험, 씻지 못할 상처로”

2012.06.17 22:15 입력 2012.06.18 00:41 수정
이서화 기자

‘숨결보고서’ 집단상담 기획한 정혜신씨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을 집단 상담한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49·사진)는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본 집단 중 최악”이라고 밝혔다. 그는 “파업 후 구속당한 아픔보다 이후 쏟아지는 사회적인 거부감과 비난이 이들을 더 절망감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마인드프리즘 사무실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는 쌍용차 해직자와 그 가족들을 상담한 정 대표를 만났다.

“정신과 의사 하면서 본 최악의 사례… 인간 이하의 경험, 씻지 못할 상처로”

정 대표는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속엔 ‘두 가지 마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엔 이야기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누군가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치유자의 역할은 이렇게 간절히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도망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부터 자각하게 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초기 상담에 참여한 해직자들은 심리적으로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통제하면서 자기 상처를 드러낼 용기를 낸 이들에게서도 이미 자살충동이 너무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인구 10만명당 31명이 자살하는 최고 자살국이다. 그러나 해고노동자 2646명 중 22명이 사망한 쌍용차의 경우 자살자는 12명이다. 국내 자살률의 15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정 대표는 “일반적으로 정리해고는 한 인간이 무리에서 배제되는 치명적인 경험”이라며 “쌍용차 해고자들은 이에 더해 전쟁상황 같은 77일간의 옥쇄파업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 이하의 모습을 접한 뒤 본인이 직접 확인한, 바닥까지 갔던 경험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더 큰 상처는 그 이후에 벌어진다.

정 대표는 이를 고문 피해자에 빗대 “극한의 고문을 당했던 분들에게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웠느냐’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고문당했던 경험보다 감옥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상처가 가장 끔찍했다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해고자들 또한 옥쇄파업을 하고 구속당하는 것보다 그 다음 이어지는 삶이 이들에겐 더 큰 형벌이다.

그는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선 쌍용차 해직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여기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 마음이 있고, 이런 심리상태를 보이고, 삶이 이렇다는 것을 조금만 알면 ‘귀족노조다’ ‘극렬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삶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할 때 무수한 폭력이 저질러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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