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미·구의역 김군·이한빛·김용균에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었다면

2020.12.23 17:04 입력 2020.12.24 10:39 수정

중대재해법이 있었다면…

민중공동행동 회원들이 23일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을 하는 산업재해 유가족들과 동조 단식을 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민중공동행동 회원들이 23일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을 하는 산업재해 유가족들과 동조 단식을 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구의역 김군 사건, ‘꼬리 자르기’ 불가…권한 가진 원청 처벌
김용균씨 사건, 산안법에선 형량 낮아…처벌의 하한선 명시
황유미씨 산재, 질병 재해 포함…기업 ‘은폐 시도’ 책임 물어
이한빛 PD 죽음, 경영진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등 의무 부여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등 산재사망 노동자의 부모들이 23일에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갔다. 지난 11일 이후 13일째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은 지난달 24일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중대재해법을 당론으로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가족이 산재로 숨지기 전에 중대재해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구의역 김군, 김용균씨, 황유미씨, 이한빛 PD 사망 사건을 중심으로 중대재해법 조항이 갖는 의미를 살펴봤다.

■현장 바꾸려면 원청 책임 물어야

구의역 김군 사건은 거듭된 사고 뒤에도 ‘바뀌지 않은 현장’에서 일어난 죽음이었다. 서울교통공사(당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인 은성PSD 직원이었던 김군은 2016년 5월18일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던 중 열차에 치여 숨졌다. 그로부터 3년 전에는 성수역에서 심모씨가, 1년 전에는 강남역에서는 조모씨가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했다. 그러나 김군이 사망할 때까지 ‘2인1조’ 규정은 존재만 할 뿐 지켜지지 않았다. 권영국 변호사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몸으로 위험을 느낀다”며 “현장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해도 원청이 결정하지 않으면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당시 ‘꼬리 자르기’식 책임 전가가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심씨 사건으로 처벌받은 이는 아무도 없다. 조씨 사건에서는 용역업체 대표만 벌금을 냈다. 김군 때도 원청인 서울메트로 대표가 선고받은 벌금은 1000만원에 그쳤다.

권 변호사는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것은 현장관리자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인력이나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을 가진 원청이 계약을 하고, 용역 대금을 정할 때 결정하는 사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되면 실질적 결정 권한을 가진 원청, 발주처에 책임을 물어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노동계는 기대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중대재해법이 있었다면 당시 원청 대표이사 등을 처벌해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고 반복되는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우 변호사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현장 소장 등 말단 직원들만 처벌했다면, 중대재해법이 생기면 원청에 책임을 묻는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자의 권한과 책임 일치시켜야

2018년 12월10일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김용균씨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김씨와 관련해 지난 10월부터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하청업체는 물론 원청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까지 산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기존 산안법으로 원청 대표이사까지 기소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명선 실장은 “이전에도 태안화력에서 유사한 사망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관련 법으로 처벌받지 않아 결론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3~2017년 산안법을 위반한 법인에 선고된 평균 벌금은 약 448만원이다. 최 실장은 기존 산안법은 기소 대상이 제한적이고 실제 선고되는 형량이 낮다고 지적했다. 김씨 사망 이후 산안법이 개정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벌금’으로 상한선을 높였지만 여전히 하한선이 없다.

중대재해법은 발의한 의원에 따라 ‘3년 이상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상의 벌금’ 혹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상의 벌금’ 등 양형의 하한선을 명시했다. 중대재해법이 다룬 양형 절차에 관한 특례 조항도 적정한 양형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이용우 변호사는 해석했다. 그는 “전문가 의견 등을 반영해 양형심리를 하는 특별절차를 도입했기 때문에 책임에 부합하는 양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업병, 직장 내 괴롭힘 방지 포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는 산재 인정을 받는 데 7년이 걸렸다. 삼성 경영진 등 책임자 처벌은 없었다. 최명선 실장은 당시에는 사고성 재해가 아닌 질병 재해는 더 처벌이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중대재해법이 있었다면 경영진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은 ‘부상자·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도 중대재해로 명시했다. 기업의 산재 은폐 시도가 있을 때 책임을 묻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힘을 싣는다. 최 실장은 “삼성전자는 이전에 불산 유출과 다수의 직업병 사건과 관련해 자체 조사한다며 은폐 시도를 했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적용돼야 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한빛 PD의 죽음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이 PD는 CJ E&M에 입사해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하다 업무 과중과 비정규직 해고 담당 등 부당한 업무 강요, 인격 모독 등 직장 내 괴롭힘과 노동착취 관행을 고발하고 숨졌다. 노동계는 이 사건 역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이 법은 사업주나 경영진 등이 준수해야 할 의무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사항들을 포함한다. 이용우 변호사는 “자살의 경우 형사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묻는 것은 매우 엄격해 현실적 처벌 여부까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경영책임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책임을 물을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중대재해법이 있었다면’은 뒤늦은 가정에 불과하다. 유족들은 또 다른 사망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이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PD의 아버지 이용관 이사장이 23일 기자와 통화하며 말했다. “중대재해법안 조항 하나하나가 다 사람이 죽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기업 문화 정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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