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나팔수’ 공영방송을 국민 품으로, 해직언론인 제자리로

2017.05.18 22:29 입력 2017.05.18 22:55 수정

이사회 구성비 조정 통해 정권의 방송 장악 원천 차단

종편 의무재송신 등 특혜 손질…대대적 조직 개편 관측

지난해 12월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대치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사무실 앞에서 청와대의 언론 장악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특검에 고발하고 있다.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정권의 방송 사유화와 언론 통제의 정황이 잇달아 드러났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해 12월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대치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사무실 앞에서 청와대의 언론 장악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특검에 고발하고 있다.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정권의 방송 사유화와 언론 통제의 정황이 잇달아 드러났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중 공영방송과 해직언론인 문제에 누구보다도 많은 의견을 냈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를 찾아가 해직언론인 전원 복직과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지난 3월 MBC가 주재한 더불어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일대일 토론시간을 할애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공영방송을 장악해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었다”며 앞으로는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겨울 촛불광장에서는 언론도 개혁 대상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9년간 정권은 낙하산 인사로 공영방송을 장악했고, 경영진은 권력 눈치보기, 비판 최소화로 정권에 보은했다. 언론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방송의 공공성과 공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공영방송 개혁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 인사권 내려놓기로 정상화 첫발

문 대통령의 미디어 관련 공약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과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다. KBS와 MBC, EBS 등 공영방송 사장을 사실상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로 임명할 수 있는 현 구조를 바꾸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KBS 이사회는 여당 추천 7명·야당 추천 4명,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는 여당 추천 6명·야당 추천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는 다수결로 사장을 임명한다. 문 대통령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성비를 여야 추천 7 대 6으로 바꾸고, 사장 선출 시에는 이사회 3분의 2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방송법 등 관계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국회의 역할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집권여당과 정권의 의지와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 여야가 바뀐 만큼 현 정부도 공영방송 사장에 자기 인사를 앉힐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법률 개정은 국회에서 다뤄질 일이지만, 정부와 여당이 ‘우리가 공영방송 사장을 결정할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언론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수차례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를 밝혀온 만큼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언론장악방지법’이라고 불리는 방송법, 방문진법 등 관계법률 개정안도 지난해 이미 국회에 제출된 상태지만 자유한국당 반대로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보도·제작·편성권과 경영을 분리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

해직언론인 복직과 진상 규명도 주요 공약 중 하나지만 법안을 마련해 풀어야 하는 만큼 행정부보다는 집권여당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해직언론인 등의 복직 및 명예회복 등에 대한 특별법안’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 종편 특혜 손질, 미디어산업 진흥

출범 7년차를 맞은 종합편성채널은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지상파와 동일규제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2011년 12월 출범한 종편은 의무재송신 채널 지정, 10번대 황금채널 배정, 중간광고 허용, 자사 미디어렙을 통한 직접광고 등 온갖 특혜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당선 전 “이제 종편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종편과 지상파 간 차별은 없앨 때가 됐다”고 말했다.

케이블·IPTV 등 유료방송 플랫폼이 종편 채널을 무조건 내보내게 했던 ‘종편 의무재송신’은 새 정부에서 사라질 대표적 특혜로 꼽힌다. 의무재전송 대상 지상파에는 KBS1과 EBS 등 공영방송만이 포함돼 있고 SBS, MBC조차 빠져있는데, 종편은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의무재송신 대상에 들어있으면서도 프로그램 재송신료로 매출까지 올리고 있어 종편 출범 당시부터 지나친 특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상파에는 허용되지 않았고 종편에는 허용됐던 중간광고 규정도 어떤 방식으로든 손질될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동안 경영악화를 이유로 중간광고를 허용해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지만 “신문과 중소 지역방송 등 타 매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반발이 거셌다.

이 밖에 문 대통령은 이용자 중심 미디어 복지를 위해 종편과 보도전문채널, 유료방송채널에도 시청자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상을 강화하며 미디어 교육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공영방송 수신료 역시 시청자 참여 ‘수신료위원회’를 설치해 공정하고 투명한 수신료 징수, 배분 등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지역방송 및 신문 지원, 미디어산업 성장을 위한 다양한 전문편성 PP 및 온라인 동영상·개인방송 활성화 추진, 중소제작자 콘텐츠 제작 장려를 위한 공적기금 확충 등 다양한 미디어 진흥 공약도 나왔다.

■ 미디어조직 개편 방안은 안갯속

미디어 관련 정부조직을 어떤 방식으로 개편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대적 개편이 예상된다. 그간 언론계와 정치권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흩어진 미디어 관련 기능을 통합하거나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수차례 나왔다. 민주당 대선 공약집에는 미디어 관련 정부조직의 개편과 관련된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민주당 측은 대선 기간 언론단체들이 각 당 대선후보들에게 보냈던 미디어 정책질의 중 방송통신규제기구 개편 방안에 대해 ‘확정안 없음’이라고 답변해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방안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미디어 관련 정부조직을 재조정할 필요성을 꾸준히 지적해온 만큼 새 정부가 대대적 조직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도 가칭 ‘미디어위원회’를 신설해 각 부처에 흩어진 미디어 관련 기능을 통합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대선캠프의 한 관계자는 “확정된 안은 아니지만 미디어위원회가 규제와 진흥을 총괄하는 방안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구체적 조직개편 방안은 청와대가 마련해서 발표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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