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5세.
고인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더불어 숲> <처음처럼> 등 많은 스테디셀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기 성찰, 냉철한 사회 현실 분석과 세계인식에 관한 깊은 사유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던져주었는데요.
어릴 때 서예를 배운 고인은 학자이자 저술가로서뿐만 아니라 흔히 ‘어깨동무체’로 불린 독특한 글씨체로도 유명했습니다.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이 그의 글씨체를 사용한 것이었죠.
신 교수는 어려서 조부에게 붓글씨를 잠시 배웠고, 옥중 서도반에서 만당 성주표(晩堂 成柱杓), 정향 조병호(靜香 趙柄鎬)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과거 한글 글씨체는 정적이고 귀족적인 취향의 ‘궁체’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궁체로 운동현장의 뜨거운 목소리를 담아내기에는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고인은 어머니의 모필 서간체 글씨에서 착안해 궁체에 대비되는 ‘민체(民體)’ 또는 ‘연대체(連帶體)’ ‘어깨동무체’로 불리는 서체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획의 굵기와 리듬에 변화가 많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서민적 형식과 민중적 내용을 담은 독특한 서체가 탄생한 것입니다.
신영복 교수는 경향신문과 인연도 깊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모았습니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삭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경향신문과 신영복
■신영복과 한국사회
■‘색깔’ 공격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이 2014년 12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쓴 정문 현판을 교체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2008년 개관 때부터 사용해온 이 현판을 두고 한 보수단체가 “과거 간첩사건 연루자가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민원을 제기한 뒤 교체가 이뤄졌다. 신 교수는 1968년 7월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대규모 공안사건인 ‘통일혁명당(통혁당) 간첩단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년2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한 뒤 1988년 가석방됐다. ▶신영복 교수가 썼다고 현판까지 교체···아무데나 이념 잣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