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우리 모두의 책임: 내가 종북이다, 내가 메갈이다

2016.08.01 10:26 입력 2016.08.01 10:43 수정
김민재

‘메갈리아’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집니다. 작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티셔츠 사태와 웹툰 작가, 메갈리아와 미러링,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향이네에 보내왔습니다. 향이네는 기고를 1일부터 7회에 걸쳐 싣습니다. 토론을 위한 반론도 환영합니다. h2@khan.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최근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택적 정의와 진보의 가치…극단주의자들이 우리의 신념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글에서 르포작가 이선옥씨는 다음 주장을 펼쳤다.(▶이선옥 기고 바로가기)①메갈리아 지지 성우나 웹툰 작가에 대해 소비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각종 비판, 불매운동은 이전에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혐오 발언을 한 연예인 등에 대해 전개했던 비판, 불매운동과 다를 것이 없으므로 페미니스트들이 지금의 메갈리아 공격을 비판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고 ②지금 소비자들이 메갈리아와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여성혐오의 표출이 아니라 그러한 비일관성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보아야 하며 ③메갈리아에는 “성차별에 반대하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과 남성 일반과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표현이 공존”하는데 대중은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구분하지 않으며, 나쁜 혐오와 좋은 미러링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메갈리아는 대중에게 “정의로운 운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그러므로 진보정당들이 “메갈리아의 혐오를 옹호”한 것은 잘못되었다.

작가 이선옥씨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화면 갈무리

작가 이선옥씨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화면 갈무리

이선옥씨는 지금 ‘진보의 가치’를 위해 메갈리아라는 ‘극단주의자들’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보편적 인권, (이선옥씨가 말하는) 진보의 가치, 메갈리아보다 더 진전된 여성운동의 가능성은 모두가 “내가 메갈이다”라고 선언하며 대중을 설득하는 데 있다. 이선옥씨처럼 대중의 현 상태를 핑계 삼아 “나는 메갈리아와 다르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다.

전선은 성차별에 분노하는 이들과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하는 이들 사이에 있다

이선옥씨는 여성혐오 작가/연예인 등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과 불매운동, 메갈리아 웹툰 작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비판과 불매운동이 동일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신념을 표현할 권리를 근거로 후자에 항의하는 것이 일관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토대로 지금 소비자들이 그런 비일관성에 문제제기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둘 다 작가/예술가에 대한 작품 소비자의 비판이자 불매운동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정치적 내용이 다르다. 성차별 발언을 하는 연예인에게 퇴출 요구를 했던 페미니스트들이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우를 해고한 조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퇴출 요구는 정당하고 남이 하는 요구는 틀리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전자(성차별적 발언)는 퇴출 사유이고 후자(해고 조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마찬가지로, 성차별 발언은 퇴출 사유가 아니지만 메갈리아 지지 표현·행위는 퇴출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메갈리아 지지 웹툰 작가들을 색출해 불매운동을 벌이며 검열을 요구한다.

여기서 문제는 누가 일관성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성차별 발언이/메갈리아 지지 표명이 공론장에서 퇴출당해야 할 사유인가?’다.

이선옥씨는 성차별 발언과 메갈리아 지지 표명의 정치적 내용이 ‘혐오’로 동일하다고 믿으며 일관성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 정치적 내용도, 일베라는 커뮤니티와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도 다르다.

지금도 논쟁의 대상인 ‘미러링’은 아주 새롭고 독창적인 전술이라기보다는 ‘풍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을 하기 때문에 메갈리아는 일베와 동일한 존재’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우리 모두 ‘풍자’가 무엇인지는 다 안다. 미러링 전술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도 예컨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쓴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고 “이 책은 성차별주의자들에게 똑같이 보복하려는 ‘남성혐오’ 시도이므로 인권침해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러링 전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풍자 성격의 미러링으로 시도되었지만 말 그대로 의미를 담은 것처럼 읽히는 글과 표현에 대한 평가가 문제다.

인권침해 및 언어폭력에 해당하는 글과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선옥씨뿐만 아니라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미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인권침해, 언어폭력이 메갈리아 커뮤니티 전체를 대표할 만큼 다수를 차지하는지 여부다. 하지율씨가 2016년 7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박가분은 과연 “메갈”을 성공적으로 “반사회적 혐오커뮤니티”로 낙인찍었나?>(하지율씨 페이스북 바로가기)에 따르면,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메갈리아 커뮤니티 전체의 정치적 경향에 대한 일반화는 일베에 대해서만큼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 남성 전체를 싸잡아 언어폭력을 저지르면서 다른 사회적 소수자를 비하한 이용자들이 ‘워마드’로 분리되어 나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율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박가분은 과연 “메갈”을 성공적으로 “반사회적 혐오커뮤니티”로 낙인찍었나?> 화면 갈무리

하지율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박가분은 과연 “메갈”을 성공적으로 “반사회적 혐오커뮤니티”로 낙인찍었나?> 화면 갈무리

이는 ‘메갈리아’가 대중이 거의 자생적으로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당연한 사실이다. 메갈리아에 모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에 분노한다’는 정도다. 그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한국 남성들의 외모를 비웃는 것부터 여성에 대한 몰카를 찍지 말자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까지) 제각기 다르다. 그들이 모두 ‘메갈리안’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실천한다 하더라도, 각자 생각하는 ‘메갈리안’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메갈리아’ 전체를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상정하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

‘언어폭력이나 인권침해에 대해 자정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집단 전체가 그런 실천을 승인한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메갈리아는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정치조직이 아니다. 같은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다른 이용자의 잘못된 실천을 두고 매번 문제제기·비판하면서 ‘자정작용’을 위해 노력할 책임을 평범한 메갈리아 이용자들에게 부과할 수는 없다. 여성운동가들은 메갈리안들의 실천 중에 지지하고 함께해야 할 것,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판하고 설득해야 할 것, 언어폭력이나 인권침해이기 때문에 당장 저지해야 할 것을 각각 구별해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메갈리아’가 단일하고 확고한 정치적 주체인 것처럼, 메갈리아 지지자들을 색출해 비난·공격하는 행위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메갈리안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에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메갈리아를 공격하는 행위의 정치적 의미 역시 명백하다. 한국 사회 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성차별에 분노해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동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주관적인 동기가 무엇이든 메갈리안을 색출하고 메갈리아를 공격한다는 행위가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낳는 실천적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다수의 여성들은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성차별 이데올로기는 계속 노동자민중 여성과 남성의 단결을 가로막을 것이다. 남성을 군대에 징집하는 국가, 여성노동자가 임신·출산을 하면 해고할 생각부터 하는 자본가는 남성들이 계속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해 여성을 차별하기 바랄 것이다. 그래야 여성과 남성이 단결하여 자기들에게 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선옥씨 주장과 달리, 전선은 일관성 없는 페미니스트와 일관성을 요구하는 대중 사이에 그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에 분노하는 이들과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하는 이들 사이에 그어지고 있다.

대중에게 우리가 ‘진짜’임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주의자들’과 선을 긋자?

이선옥씨는 메갈리아에 지지할 만한 실천과 그렇지 않은 실천이 공존한다는 사실과, ‘좋은 페미니즘’과 ‘좋은 미러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도 “그렇지만 대중은 그것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대중에게 메갈리아와 메갈리아가 아닌 세력이 ‘모두 하나로 인식되는 상황’을 강조한다. 그래서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진영 안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우리의 신념을 대표하는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자정 노력이 있었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좋은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극단적인 메갈리아와 선을 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조금도 새롭지 않다.

2013년 8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다. ‘국정원을 해체하라’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던 때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다음날인 8월 29일 국정원은 이석기가 RO 회합에서 내란을 계획한 녹취록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며칠 동안 ‘내란음모’ ‘전쟁’ ‘무기’ ‘혁명의 교두보’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신문을 뒤덮었다. 몇 년 전부터 내사 중이던 사건이라고 했다. 압수수색 이후 단 1주일 만인 9월 4일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틀 후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 여부를 검토할 TF를 설치했다. 11월 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심판 결과는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2013년 8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규탄’ 집회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지윤기자

2013년 8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규탄’ 집회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지윤기자

정국의 중심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서 이석기 내란 음모로 급격히 전환된 이 기간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9월 1일자 한겨레신문 사설 제목은 <진보당 내 합리적 목소리를 기대한다>였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우려하는 건 법적 논란이나 이 의원의 구속 여부가 아니다.…진위 논란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 의원과 진보당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시대착오적이고 상식과 동떨어진 데 대해 황당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 때문에 국기문란 행위를 저지른 국정원의 개혁마저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를 상황을 맞았다. 진보당 안에 정말로 ‘진보’의 미래를 걱정하는 합리적 인사들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은 길인지 심각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한겨레신문, 2013.9.1. 사설 <진보당 내 합리적 목소리를 기대한다>)


정의당 역시 9월 4일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대한 찬성 당론을 밝히면서 ‘국민 상식’을 이야기했다. “국정원의 여론몰이식 수사 역시 용납할 수 없”지만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이 헌법과 민주주의, 그리고 국민 상식으로부터 심각하게 일탈한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며 “정의당은 사법적 판단 이전에 정치적 책임을 누차 촉구하였고 스스로 수사에 임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른바 진보·중도·보수를 섞은 전문가 좌담회를 열어서 <‘진보가 나아갈 길’ 전문가 진단 “자유·정의·인권 등 진보적 가치에 충실했는지 성찰해야”>(▶기사보기)를 내보냈다. 이석기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이었다.

이석기로 대표되는 정치적 경향을 두고 “다른 진보세력과 달리 종북을 하는 진보다”(김형준 명지대 교수), “한반도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그에 매몰된 나머지 보편적 진보의 가치를 발굴해내는 데 실패했다”(이택광 경희대 교수), “이석기 세력은 진보가 아니다. 주사파, 종북주의자들이다”(전원책 자유경제원 원장) 같은 평가들이 실렸다. 이들은 또한 ‘진짜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북한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당연히 내야 한다. 진보의 가치 중 가장 소중한 게 인권 아닌가. …사실은 진보가 아닌데 진보라고 섞여 있는, 그래서 오히려 진정한 진보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나쁘게, 부정적으로 만든 그런 세력하고 결별을 하면 되는 거다”라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평가, “참진보는 진보적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자유, 정의, 연대. 이런 진보적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게 참진보다. 또 하나는 과정이든 결과든 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이 문제가 된 것도 과정으로서 민주주의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국민들로부터 거세게 비판받는 것도 민주주의를 넘어섰기 때문 아닌가”라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평가가 이어졌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자기들이 스스로의 비겁함을 가리기 위해 ‘대중’의 ‘상식’ 뒤에 숨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이 말하는 ‘자유’는 체제의 틀 밖을 꿈꾸고 표현할 자유여야 함을 깨닫지 못했다. ‘정의’는 바로 인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인 국정원을 해체하는 것이어야 하며, ‘연대’는 바로 ‘내가 종북이다’ ‘내가 이석기다’라고 말하며 마녀사냥에 맞서는 용기임을 알지 못했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진정한 진보’는 종북몰이에 맞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방어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혹은 알고 있었지만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같은 운명이 될까봐 두려워서 외면했던 것일까.

통진당에 문제가 생기면 노동당에 항의전화가 온다. 민주노동당에서 서로 갈라진지 몇 년이 지났고, 노동당과 민주당 사이에 실개천이 흐른다면 통진당과 노동당 사이에는 장강이 흐른다고 할 정도로 이질적인데, 대중에게는 모두 같은 진영일 뿐이다. 대중이 무지해서 그런다고 해봐야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중의 무지가 아니라 모두 하나로 인식되는 상황 자체에 있고 이는 진영이 자초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선옥,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에서)

맞는 말이다. “대중이 무지해서 그런다고 해봐야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 대중은 무지하지 않다. 2013년에 통합진보당을 공격하는 자들이 ‘자유’ ‘정의’ ‘연대’ ‘진정한 진보’로 치장함에 따라 정치사상의 자유를 둘러싼 전선은 은폐되었고 대중은 종북세력을 쫓아내야 한다는, 상식 아닌 상식만을 주장하는 존재로 표상되었다.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선옥씨처럼 성차별을 둘러싼 지금의 전선을 은폐하는 이들, ‘보편적 인권’, ‘진짜 페미니즘’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를 읽지 못하고 ‘왜 우리는 저 극단주의자들과 다른데 똑같이 취급되어야 하나’라고 초조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대중이 “무지”한 존재로 표상되는 것이다.

대중의 정치의식 수준은 결코 균등하지 않고 대중의 ‘상식’ 역시 하나가 아니다. ‘그래도 종북세력은 안 되지’가 대중의 상식일 수 있다. 하지만 ‘대선개입으로 먼저 민주주의를 파괴한 국정원이 내란음모를 운운할 자격이 있나?’라는 의문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로 대중의 상식일 수 있다. ‘요즘은 여자들이 설치고 남자들이 역차별 당하는 게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A도, ‘여성들이 차별받는 것은 알겠지만 좀 더 부드럽게 설득할 수 없나?’라고 생각하는 B도, ‘더 많은 여성들이 분노와 억울함을 표현하고, 남성에게도 페미니즘이 이익이 됨을 알려야 해’라고 생각하는 C도, ‘이제까지 남성들이 해온 범죄행각을 생각하면 페미니즘 운동에서 남성을 배제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D도 대중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일은 현재 전선을 명확히 인식하고 거기서 무엇을 하는 게 옳은지를 대중에게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이다. A, B, C, D의 생각 중에서 지금 당장 다수를 점하는 의견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는 모두 같은 진영일 뿐”이니까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종북이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 내가 메갈리아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 통합진보당과 이석기에 대한 정권의 공격을, 메갈리아에 대한 성차별주의자들의 공격을 내버려 두는 것은 더더욱 해선 안 된다.

더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책임

사회화된 모든 주장과 행동은 신념에서 시작하되 책임을 동반한다. 해야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까지는 신념의 차원이지만, 이를 추구하는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행위의 책임을 묻는 대중에게 신념의 당위를 주장하는 대응은 서로 만날 수 없기에 평행선을 달린다. (이선옥,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에서)

이선옥씨는 메갈리아나 메갈리아와 연대하는 이들이 책임은 지지 않고 대중에게 신념만 강요한다는 취지로 적고 있다. 하지만 지금 성차별·성폭력에 반대하며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모든 이들의 책임은 메갈리아에 대한 공격에 반대하며 “내가 메갈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메갈리안들의 미러링 전술에 대한 토론을 하지 말고 침묵하라거나, 그들의 실천 중 잘못된 부분에 대한 비판을 유예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미러링 전술이 <이갈리아의 딸들>처럼 누구든 문언 그대로가 아닌 풍자로 읽을 수 있는 한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사회주의자로서 노동자민중 여성과 남성이 연대하여 성차별 이데올로기와 이것을 유지·공고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남성 노동자민중을 우리의 적이 아니라 조직화해야 할 사람들로 본다. 지금 메갈리아를 통해 성차별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이들에게, 언젠가 이러한 기조의 운동이 메갈리아보다 더 나은 대안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메갈리아 1년을 짚은 <‘혐오’를 ‘혐오’로 지우려 한…그녀들은 유죄인가>(경향신문 7월9일자 12면 보도)

메갈리아 1년을 짚은 <‘혐오’를 ‘혐오’로 지우려 한…그녀들은 유죄인가>(경향신문 7월9일자 12면 보도)

지금 메갈리안들을 색출해 공격하는 이들이 말하는 메갈리아는 ‘종북’과 같다. 북한 지배세력을 적극 옹호하며 남한에서의 자기 정치도 북한 지배세력의 이해에 종속시키려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 노리는 ‘종북’은 그들이 아니라 불의한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 전부이다. 그런 점에서 ‘종북’은 실재하는 정치적 경향이 아니라, 일종의 허수아비이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차별에 분노하는 느슨한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를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호명하는 자체가 허수아비를 세워 공격하려는 시도다. 그들은 메갈리아 커뮤니티 이용자들만을 지목하지도 않고, 그곳의 인권침해·언어폭력 가해자들만을 지목하지도 않는다. 성차별과 성폭력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모든 이들에게 ‘메갈리아’라는 딱지를 붙인다. 지금 “내가 메갈이다”는 선언은 “내가 종북이다”와 마찬가지로, 불의에 저항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우익과 지배계급의 협박을 거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나는 메갈리아의 대안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내가 메갈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김민재 :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이고 성별은 여성입니다. 사회주의자로서 여성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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