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나 메갈이나”를 말하는 당신은 정말로 ‘순진한 일반인’인 걸까

2016.08.02 10:20 입력 2016.08.02 10:36 수정
김유리

">" target=_blank>‘메갈리아’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집니다. 작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티셔츠 사태와 웹툰 작가, 메갈리아와 미러링,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향이네에 보내왔습니다. 향이네는 기고를 1일부터 7회에 걸쳐 싣습니다. 토론을 위한 반론도 환영합니다. h2@khan.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target=_blank>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지 10여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렇게 페미니즘 지지 선언이 숱하게 쏟아지는 시기를 본 적이 없다. “페미니즘은 인정하지만……”으로 시작하는 저 문장들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페미니즘과 가부장제 사이 어디쯤 위치한 회색 지대에 있다며 자신을 ‘순진한 일반인’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여성혐오가 뚜렷한 한국 사회에 사는 여성으로서 매우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 선언들을 ‘페미니스트 선언’이나 ‘일반인 선언’으로 볼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페미니즘은 인정하지만 메갈리아는 없어져야 한다”, “일베(일간베스트)나 메갈(메갈리아)나”라는 주장은 사실 “나는 성차별주의자요.”, “나는 여성혐오자다.”라는 말을 만천하에 떠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와 반(反) 여성혐오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존재와, 이들에 대한 공격 방법의 차이다. 둘은 서로 닮은 점이 한끝도 없다. 일간베스트가 커뮤니티의 존재 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상은 극우 쇼비니즘이다. 일간베스트는 국가의 권위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국가주의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다원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현대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이 극우 쇼비니즘이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사회·정치 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를 배척하는 극우 쇼비니즘과 같은 사상을 엄격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1987년 민주화를 통해 합의된 한국의 정치·사회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주장 역시 일간베스트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일간베스트는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회귀하자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1987년 체제를 이끌어내기 위해 산화한 광주의 피눈물도 계속 모욕하고 있다. 다만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일간베스트와 같은 극단적인 사상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견이 있기는 하다. 이들은 마리 르펜, 도널드 트럼프 등 극우 정치인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기존 비판이 존재하므로, 구태여 사족을 붙이지는 않겠다.

메갈리안를 나타내는 로고

메갈리안를 나타내는 로고

반면, 메갈리아가 존재 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상은 반 여성혐오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여성혐오’ 개념은 여성에 대한 멸시에서부터 여성차별, 여성숭배까지 폭넓은 영역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개념만 놓고 보더라도, 반 여성혐오는 다원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오히려 환영받는 주장이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사회·정치 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은 가장 대표적인 소수자 세력이다. 다만, 메갈리아에 대해서는 이 주장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남성이 여성에게 퍼붓는 폭언을 거꾸로 돌려준다거나,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형태의 시위를 주최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메갈리아를 없애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반 여성혐오라는 주장 자체는 문제삼지 않고 미러링 발화, 생리대 시위 등 실천 방법을 문제 삼고 있다. 어떤 대학원생은 미러링 발화를 놓고 “국제사회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제노사이드 선동 행위”라며 준엄하게 훈계하기도 했다.

메갈리아의 실천 방법이 옳으냐 그르냐 여부를 이 글에서 따질 생각은 없다. 실천 방법에 대한 논쟁은 운동의 효율성을 따지는 문제로, 이 글을 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논할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이 옳다고 가정한다 해도, 일간베스트와 메갈리아의 문제는 여전히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홍익대 정문 근처에 설치됐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상징하는 손모양 조형물

홍익대 정문 근처에 설치됐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상징하는 손모양 조형물

일간베스트는 그 근간이 되는 사상과 실천 방법 모두가, 메갈리아는 그 실천 방법만이 문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천 방법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룰 때, ‘어떤 방법으로 주장을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올바르다고 평가받는 대안이 된다. 폭탄 테러, 살인, 집단강간 등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범행을 저질렀다면 집단 자체를 없애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메갈리아는 아직까지 폭탄 테러와 살인, 집단 강간 같은 극단적인 범행을 집단 차원에서 공모하고 실행한 적이 전혀 없다. 반면 집단의 근간이 되는 사상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룰 때에는 ‘이 집단의 주장은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집단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올바르다고 평가받는 대안이 된다. 일간베스트에 대한 논쟁은 이 층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일베나 메갈이나.”를 말하는 목소리는 이 차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비판의 지점과 그 대안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일간베스트와 메갈리아 모두에 ‘없애야 할 집단’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베나 메갈이나.”를 말하는 사람들은 왜 이 차이를 무시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여성혐오자이자 성차별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단체들은 이런 류의 공격을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낀다. 유사 이래 모든 소수자 단체들은 도덕적인 완전무결함을 요구받아 왔기 때문이다. 도덕에 한 치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기득권층은 이를 빌미로 삼아 즉각 소수자 단체를 해체하려고 덤빈다. ‘내가 보기에 싫은 주장’을 하는 단체를 없애기 위해, “그 주장이 옳지 않다.”라는 낯부끄러운 말을 꺼내기보다는, 단체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치졸한 수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득권층의 이 치졸한 수법은 메갈리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법과 한점의 오차도 없을 만큼 똑 닮았다. 반 여성혐오는 ‘내가 보기에 싫은 주장’이어서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여성혐오를 계속 하고 싶다.”라는 낯부끄러운 말을 꺼낼 수는 없으니, 단체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셈이다. 비도덕성의 화신인 일간베스트라는 존재는 양념으로 사용된다. 특히 이런 추세는 넥슨 사태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상의 많은 여성혐오자들은 웹툰 작가, 가수, 지식인의 목소리를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해, 그 주장의 당위를 살펴보는 대신 도덕성을 지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메갈리아가 걸어온 길 중 한 가지 굉장히 지지하고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순진한 일반인’ 혹은 ‘진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낯두껍게 태연히 앉아 있던 성차별주의자와 여성혐오자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바로 그 부분이다. 스스로가 ‘순진한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지금 메갈리아의 지적에 “그게 무슨 여성혐오냐.”라며 펄펄 뛴다. 그 와중에도 메퇘지, 뚱뚱한 여성, “강간해버리고 싶다.” 등 노골적인 여성혐오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스스로 커밍아웃해주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선정성’ ‘여혐’ 논란 일었던 넥슨의 ‘서든어택2’

‘선정성’ ‘여혐’ 논란 일었던 넥슨의 ‘서든어택2’

넥슨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성차별주의자들과 여성혐오자들이 “나의 기분이 나쁘다.”라는 이유로 성우의 교체를 요구했고 웹툰 작가들을 상대로 보이콧을 하고 있다. 남자의 기분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것, 이만큼 뚜렷한 여성혐오의 징표가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이 많은 성차별주의자들과 여성혐오자들에게 크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단지 자신이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사실만은 인지했으면 한다. 넥슨 사태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은 인정하지만…….”, “일베나 메갈이나.” 같은 치졸한 변명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이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가 되겠다.”는 선언, 왠지 이 글의 아래에서도 이어질 것 같지 않은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이는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모든 변화는 자기객관화에서 출발한다.

※김유리 : 직업적 글쟁이. 월급의 대가로 글을 쓰지만, 가끔은 금전적인 대가가 없는 글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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