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민은 1058일째 “미군기지 반대”…지자체도 소송 불사

2017.10.16 22:12 입력 2017.10.17 15:17 수정

오키나와는 지금

지난 5월29일 일본 오키나와현 헤노코 인근 미군기지 캠프 슈와브 앞에서 미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에 참가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을 일본 경찰이 한 명씩 끌어내고 있다.

지난 5월29일 일본 오키나와현 헤노코 인근 미군기지 캠프 슈와브 앞에서 미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에 참가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을 일본 경찰이 한 명씩 끌어내고 있다.

여름으로 접어든 오키나와는 찌는 듯 무더웠다.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던 지난 5월29일 오전 11시, 나고시 헤노코 연안의 미군기지 캠프슈와브 게이트 앞에서 주민들의 노래가 시작됐다. “헤노코로 가자~ 신기지를 저지하자~.” 토시와 선글라스, 모자로 ‘완전무장’한 50여명이 노래 부르는 이곳은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농성장’이다. 미군기지 게이트 맞은편에 세워진 농성장에는 ‘국민 세금을 전쟁에 쓰지 마라’ ‘아름다운 바다에 기지는 필요 없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60~70대 이상의 고령자들이었다. 오쿠보 야스히로 오키나와평화위원회 사무국장은 “1950~1960년대 오키나와복귀투쟁에 참여했던 경험자들이 주로 기지반환운동에도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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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이 아닌 ‘퇴거’를 원한다

주민들과 헤코노 신기지의 부딪침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주일미군 3명이 초등학생을 납치해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키나와는 분노로 끓어올랐고, 이듬해 미·일 양국은 후텐마 기지를 반환하는 데 합의했다. 후텐마는 오키나와 남부 기노완시의 주거지역 내에 있으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기지’라는 악명을 지닌 곳이다. 이후 미군의 재배치 계획에 따라 헤노코 연안이 후텐마의 대체부지로 결정됐다. 미군은 헤노코 앞바다를 매립해 1800m 길이의 대형 활주로와 부두를 만드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맞서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기지의 ‘현내 이전’이 아닌 ‘완전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 오키나와 내 미군시설은 31곳으로, 오키나와 본섬 면적(1206㎢)의 15%가량인 186㎢에 달한다. 이 때문에 오키나와 주민들은 기지로 인한 경제적 손해, 범죄 및 사고위협, 환경오염 등 막대한 짐을 떠안아 왔다. 세계적인 산호서식지 중 하나인 헤노코 앞바다의 훼손 우려도 높은 상태다.

이날은 주민들이 ‘스와리코미’를 시작한 지 1058일째 되는 날이었다. 스와리코미란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공사장 출입구 앞에 앉아 기지 건설에 필요한 자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공사가 쉬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스와리코미가 이어지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막기 위해 농성 중인 경북 성주 소성리 주민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점심 무렵, 토사를 실은 트럭이 공사장을 향해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집회 참가자들은 식사도 미룬 채 길쭉한 나무 의자에 빈틈없이 채워 앉았다. 곧바로 서로 팔짱을 낀 채 대열을 정비했다. 집회 주최 측 대표인 세나가 가즈오 오키나와 통일련 사무국장(53)은 “반드시 비폭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30분 정도 후 자재를 실은 파란색 5t 트럭 4대가 공사장 출입구로 다가와 멈춰섰다. 현장에 배치돼 있던 경찰 30여명은 집회 참가자들이 앉은 나무 의자를 걷어내고 이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참가자 한 명당 경찰 4명이 달라붙었고, 두 팔과 다리를 붙잡힌 참가자들은 한 명씩 현장에서 ‘옮겨졌다’. 이들은 들려나가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외쳤다. “불법공사 중단하라!” “오키나와 산호 지키자!” “인권 유린 중단하라!”

주민 30여명이 끌려나간 뒤 게이트가 열렸고, 트럭들은 차례로 공사현장으로 들어갔다. 집회 참가자 가쿠타 요시미(65)는 “흙을 실은 트럭이 하루 4~5번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이런 ‘고보-누키(우엉을 뽑아내는 것처럼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참가자들을 한 명씩 잡아내는 것)’를 반복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평화 위한 투쟁 멈추지 않을 것”

오키나와 본섬을 달리는 동안 자동차 내비게이션 지도에는 군사지역임을 뜻하는 ‘회색 땅’이 끝없이 펼쳐졌다. 이는 충돌과 투쟁이 비단 헤노코만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섬 북부의 미군 헬기 헬리패드(이착륙장) 설치 반대 농성장에서는 주민들이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자리를 지켰다. 후텐마 기지에서 밤낮 없이 뜨는 비행기로 소음 피해를 입은 인근 주민 2200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으로 멸종위기에 놓인 해양포유류 듀공을 지키려는 이들도 해안 곳곳에 팻말을 세웠다. 각각의 투쟁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오키나와 기지반대 현민대회’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5월28일 캠프슈와브 앞에서 열린 현민대회에서는 정치인과 시민단체, 주민 등 2000여명이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는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주민들뿐 아니라 지자체도 미군기지 확대를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현은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행정적·법적 수단을 동원하면서 중앙정부와의 소송전도 불사하고 있다. 2013년 현지사였던 나카이 히로카즈가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기지건설을 위한 헤노코 연안 매립을 승인했지만, 2014년 당선된 오나가 다케시 지사는 이듬해 매립허가를 취소했다. 중앙정부는 이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냈고, 지난해 12월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나카이 전 지사의 매립 결정이 적법하다며 중앙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오키나와현은 지난 7월 정부가 비행장 이전 공사에 필요한 ‘암초 파쇄’ 작업을 시행하기 위한 현지사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은 불법이라며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현지에서 만난 오키나와 사람들은 ‘전쟁을 위한 땅’ ‘기지의 섬’이 되는 것에 반대했고, 자신들의 싸움이 평화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세나가 사무국장은 “설령 헤노코에 기지가 지어진다 해도 우리는 평화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불굴(不屈)’이다. 아주 끈질기다. 이길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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