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돈 안되는 것에 빠지지 말라 하고 낯선 것에 꽂히면 공격·혐오하고

2017.10.29 20:58 입력 2017.10.29 21:05 수정
김성환 |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교수

즐거운 취미를 위하여

취미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자기만족의 즐거움을 주는 수단이다. 하지만 ‘취존’(취향존중)을 내세워 배타적이거나, 타인과 불화를 발생시킨다면 그것은 진정한 취미가 아닐 것이다. 사진은 최근 한국인 취미활동 1위에 오른 낚시 이미지.

취미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자기만족의 즐거움을 주는 수단이다. 하지만 ‘취존’(취향존중)을 내세워 배타적이거나, 타인과 불화를 발생시킨다면 그것은 진정한 취미가 아닐 것이다. 사진은 최근 한국인 취미활동 1위에 오른 낚시 이미지.

얼마 전 낚시가 등산을 제치고 취미활동 1위에 올랐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1위가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라 등산, 낚시처럼 오래된 취미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취미라는 말에 등산, 낚시 외에도 독서, 음악감상, 우표수집 같은 고전적(?)인 것들을 떠올린다면 분명 구세대다. 이번 순위 변동은 등산을 즐기는 세대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활동이 줄었기 때문이란다. 아닌 게 아니라 주말마다 근교 산들을 물들이는 원색의 등산복들 중에서 20~30대 청년 세대는 찾기 어렵다. 일상화된 등산복은 ‘아재’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최근 대통령 덕에 잠시 열풍이 불었지만, 사실 요즘 세상에 우표수집은 유통기한이 지난 취미 아닌가.

젊은 세대의 취미는 그보다 훨씬 다양하다. 다양하다 못해 극성스러울 정도로 취향의 만족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모습 앞에서 취미라는 말의 뉘앙스는 촌스러워 보인다. 여기에는 취미보다 ‘마니아’ 혹은 ‘오타쿠’라는,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이 단어는 게임 마니아, 애니메이션 오타쿠처럼 취향의 성격과 취미의 대상을 명확히 가리킬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일본어 ‘오타쿠’를 우리말로 음차한 ‘오덕’ ‘덕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일 정도이니, 낯선 취향과 취미의 세계는 이미 일상에 익숙히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취미활동은 그 자체로 무관심하게 종결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볼 때야 마니아니, 덕후니 하는 말이 다양성의 증거처럼 들리지만, 부정적 뉘앙스가 꽂힐 때는 인생을 낭비하는 죄인 취급받기 일쑤다. 온·오프라인의 커뮤니티에서 저마다 ‘덕력’과 ‘덕질’을 과시하면서 존재감을 뽐내지만, 자기만족이나 정체성 확인 정도에 그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다. ‘취존’(취향 존중)을 요구하는 쪽이 스스로를 고립시켜 취미가 또 다른 갈등의 매개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취미의 탄생과 소통 양식은 그것을 둘러싼 여러 힘들에 의해 이룩된 것이기에, 취미는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의 일부이다. 그래서 남들의 취미를 마냥 ‘취존’하고 말 것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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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경제와 함께한 취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취미는 맨 먼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로 정의돼 있다. 단순하게 말해 취미는 직업이 아니라 재미 삼아 하는 일이다. 직업이 돈을 버는 일이라면 취미는 돈을 쓰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취미의 뜻은 서구의 ‘테이스트’(taste) 개념의 번역에 기원을 둔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취미란 물질적 소비를 바탕으로 내면을 구성하는 생활양식을 가리킨다(진노 유키, <취미의 탄생>). 자본주의가 삶의 원리로 안착하는 과정에서 취미는 일상의 실천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따라서 취미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에 합당한 사회적 생산력이 요구된다. 한국에서 취미는 정체(政體)와 생산체제의 전환에 따라 롤러코스터 같은 모험을 겪었다. 식민 지배를 매개로 이 땅에 당도한 취미의 세계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화려하고 신기한 문물들을 선보이며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거대한 유행의 흐름을 경험시켰다. 그러나 그렇게 형성된 취미는 개별적인 내면을 형성하는 대신 일상의 감각을 통제하고 규율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취미를 통해 취미를 즐길 수 있는 대중이 계발된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취미의 설계는 식민 통치를 위한 ‘제국의 프로젝트’의 일부였다(이경돈, <문학 이후>).

그러다 보니 취미의 필요조건인 소비의 양상도 제국의 상황에 따라 급격히 변할 수밖에 없었다. 여가와 유흥을 위한 취미는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퇴폐의 원흉이자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 전쟁이 격화되고 총력전 체제로 전환되자, 취미는 황국신민 만들기의 기획으로 변질된다. 제국의 승리를 위해 고된 노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취미의 본질인 양 강조된 것이다. 전쟁 물자 부족을 메우기 위한 총력전 체제하에서 노동이 취미이자 오락이 되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는 결국 전면적인 전시 동원을 의미했다(문경연, ‘일제 말기 총력전과 취미의 재영토화’, <동악어문학>, 70집, 2017).

전쟁이 끝나도 생산력이 충분하지 않을 때 취미의 모험은 계속됐다. 해방된 한국의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인해 취미는 생산의 중요성에 밀려 부차적인 유흥으로 인식됐고, 생활양식으로서의 취미의 가치는 노동 다음으로 밀려났다. 1960년대 산업화 이전의 상황이 그러했다. 당시의 경제체제 속에서 취미에 대한 이해는 소박한 수준이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취미의 정의에는 소비 개념이 빠져 있었다. 1961년판 민중서관 국어대사전은 취미를 ‘미적 대상을 감상하고 비판하는 능력, 감흥을 일으키는 상태,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으로만 정의하고 있다. 취미는 교양 수준의 미적 인식을 가리키는 것이었기에, 여가와 유흥을 위한 소비활동은 취미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니 책과 음악을 접하거나 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는 일이 취미의 정수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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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1960년대 말, 산업화가 성과를 이루자 다시 취미의 길이 열렸다. 이때의 상황은 ‘소비는 미덕’이라는 말이 적실하게 보여준다. 이 말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소비하고 즐기는 취미도 가능하리라는 자신감이 배어난 표현이다. 매체마다 취미 관련 기사가 급증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는 취미 탐색의 시기였다. 경제발전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믿고 취미를 위해 소비를 늘여도 좋을 법했다. 당시 종합월간지 ‘세대’는 ‘취미칼럼’을 통해 취미의 범주화를 시도했다. 취미 항목에는 등산, 낚시, 독서 등이 으레 포함되었지만, 소비사회의 전망을 반영한 분류도 눈에 띈다. 사교, 주택, 수렵, 골동 등은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취미였다.

그렇지만 모든 범주가 곧이곧대로 취미로 정착한 것은 아니다. 기대를 바탕으로 제안한 것이다 보니 취미로서의 효용이나 매력이 떨어지는 것도 많았다. 예컨대, ‘사교 취미’ 기사는 각종 사교모임을 소개하며 사교계를 전망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그 사례로 제시된 대사관 초청 파티나 미술관 개관 기념 리셉션 등은 서구 사회를 지향한 것으로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반대로 ‘주택취미’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주택이 취미라고 한다면 인테리어나 정원 가꾸기를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기사는 주택자금, 주택부지, 주택설계, 주택단지 등 부동산 정보로만 채워졌다. 재테크를 취미라 부르기는 그 역시 곤란스러웠다.

이들 사례는 취미가 소비를 통해 내면과 생활양식의 형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경제의 범주 속에서 작동하는 기제임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취미는 미적 인식과 감상이라는 전통적인 기능과도 멀어진다. 저축 성향을 지니고 있고 거의 낭비 부분이 없으며, 반드시 많은 자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과연 ‘취미의 왕’이라 할 만하다는 우표수집 예찬(‘우표-우표와 이박사’, <세대>, 1968·5)은 취미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의 범주 내에서 생산에 버금가는 활동으로 이해되었음을 말해준다.

경제적 효용에 방점이 찍힌 취미론은 국가의 경제기획과 연동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노동을 취미로 즐기자던 식민지 말기의 취미론과 다를 바 없었다. 취미의 사회적 효용은 경제 사정에 따라 요동쳤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은 이후 소비사회의 꿈을 겨냥한 취미는 힘을 잃는다. ‘소비는 미덕’ 대신 내핍의 요구가 다시 등장했고, ‘건전’ ‘선용(善用)’ 등의 윤리적 태도가 취미의 조건으로 내걸렸다. 제 돈 써가면서 즐기는 취미는 등산, 낚시, 독서 정도면 충분했다.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주부, 청소년이라면 양재(洋裁)·양조(養鳥)·수예처럼 돈 버는 일을 취미로 삼는 게 좋겠고, 더 여유가 된다면 불우이웃 돕기나 봉사활동으로 여가를 선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권장됐다(경향신문, 1976·12·6). 취미는 국가와 사회의 요구 속에서 경제적 소득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옳은 일이어야만 했다. 오로지 낭비적인 취미는 술, 담배 정도만 남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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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과 고립을 부르는 취미

취미가 ‘건전’과 ‘선용’의 요구로부터 벗어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사상 최대의 호황기를 맞아 돈 안되는 취향과 높은 비용을 들여서 획득하는 감각들이 취미로서 해방되기 시작한다. 경제적 생산과는 무관한 취미 콘텐츠들이 본격적으로 생산됐으며, 이를 집단적으로 소비함으로써 동질성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곳곳에 생겨났다. 취미의 공동체는 PC통신에서 인터넷에 이르는 정보기술(IT) 발전의 혜택을 가장 톡톡히 본 분야였다.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수입된 일본 문화, 그중에서도 1990년대에 본격화한 일본의 오타쿠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를 맞아 ‘제3의 물결’ 속에서 프로슈머(prosumer)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바야흐로 취미의 대폭발 시대를 맞이한다. 극히 세분화된 취향은 일상의 거의 모든 분야를 취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취미가 세분화될수록 고립과 갈등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프로슈머의 활동이나 오타쿠들의 전문화된 문화능력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처럼 보였지만 그 증거가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 예전의 일본 드라마 <전차남>의 낭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다. 취미는 다양해졌지만, 취미로써 소통하고 관계 맺는 일은 더욱 힘들어졌다. 대신 배타적인 취향과 취미를 과시하며, 타인과의 차이를 무의미한 공격이나 혐오의 근거로 삼는 일이 흔해졌다.

한국의 오타쿠, 오덕 문화는 일본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같은 외양만을 차용, 성찰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들의 이미지는 소수의 취향, 취미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유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극렬한 오타쿠 문화를 가리켜 ‘오덕+오덕’이라는 뜻에서 ‘십덕’이라 부른 방송을 보자. 사람들은 그 말을 함부로 쓰면서도 그 말이 가진 분명한 욕설의 뉘앙스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취향의 차이는 이유야 어떻든 그저 단절적인 유희 속에서 소진될 뿐이다. 취향과 취미가 맞부딪치는 개별적 공간에서 이런 양상은 더 치열하다. 어떤 경우는 취미의 차이를 무기로 휘두르며 갈등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한다. 갈등이 무의미할수록 내면은 고립되고 관계는 파편화될 것이다.

■ 취미를 넘어 공동체로

문화평론가 서동진은 취향, 취미의 개별화 현상에 분노를 표했다. ‘취존’의 태도가 얼핏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에는 극단적인 배타적 태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취향을 핑계로 타인에게 절대적으로 무관심하며, 규범적 인식마저 방기할 뿐만 아니라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포기한 것이 요즘 취미의 진면목이라 진단한다(서동진, ‘이토록 아둔한 취미의 인간을 보라’, <문학과 사회>, 2014, 여름).

충분히 공감한다. 저들의 취미가 만든 ‘반(反)공동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취미를 불화의 장으로 남겨둘 수만도 없다. 취미의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에 취미는 여전히 소중하고 또 즐겁기 때문이다. 취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그 성찰의 깊이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취미를 통해 타인과 성찰을 나누는 즐거움이 지속되어야 진정한 취미의 공동체가 아니겠는가.

▶필자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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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을 전공했으며, 비교문화학의 관점에서 한국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교수로 다양한 문화현상 속에서 현재 우리 삶의 기원과 미래를 발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논문으로 ‘1960~70년대 노동과 소비의 주체화 연구’ 등이, 함께 쓴 책으로 <1970 박정희 모더니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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