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이동 없는 삶은 ‘고립된 생존’…박탈된 ‘속도’를 허하라

2017.11.12 21:51 입력 2017.11.14 20:55 수정
오영진 |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

인권으로서의 이동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겪어야 하는 이동의 어려움은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어려움’을 훨씬 넘어선다.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지’라고 할 만하다. 이제는 ‘교통약자법’의 전면 개정이 시급한 시점이다. 사진은 2014년 12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 이용권리를 요구하며 승차를 시도하는 장면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겪어야 하는 이동의 어려움은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어려움’을 훨씬 넘어선다.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지’라고 할 만하다. 이제는 ‘교통약자법’의 전면 개정이 시급한 시점이다. 사진은 2014년 12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 이용권리를 요구하며 승차를 시도하는 장면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이맘때쯤 일이다. 늦은 저녁,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시내버스의 기사는 화가 나 있었다. 장애인 승객을 버스에 태우기 위해 리프트를 꺼냈는데, 그 리프트가 다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로 차고 손으로 흔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10여분간 버스는 문이 열린 채 멈춰 있었다. 모두가 추웠다. 기사는 끝내 다음 버스에 옮겨 타야 하니 모두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해달라고 외쳤다. 눈에 띄게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만 휠체어에 탄 그, 중년을 훌쩍 넘어선 듯한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도 기사가 허공에 욕설을 하며 다음 버스를 잡는 동안 리프트가 갑자기 소리를 내며 접혀 들어갔다. 마침내 휠체어에 탄 그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그 미안함의 표시에는 그래도 이 차를 타고 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행복감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장애인 교육단체에서 대중인문학 강의를 할 때였다. 강의가 막바지에 이르자 수강생들이 웅성대며 너나없이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활동보조인들은 아예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강연자 입장에서 화가 날 정도였다. 그 소동은 이후 이해하게 됐다.

그들은 장애인 전용 콜택시를 불렀다고 한다. “얼마나 기다리면 도착하느냐”는 물음에 “1~2시간쯤”이라고 답했다. 두 가지 점에서 당혹스러웠다. 장애인을 태울 콜택시가 적어 매번 순번을 기다려야 하고, 그러다보니 이동을 하려면 긴 시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무려 1~2시간에 이르는 대기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1~2시간쯤이라고 말했다. 비장애인들의 경우 이동을 위한 대기시간을 1~2시간쯤이라고 표현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시간이 곧 돈인 시대 아닌가. 몇 분 몇 초를 아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대략의 시간관념을 요구하는 일 앞에 놓인다면 분명 분노했으리라. 당연히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 사이에 뒤풀이도, 선생과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었다.

■교통약자, ‘이동의 어려움’? 사실상 ‘이동의 금지’!

장애인들이 겪는 이동의 어려움은 달리 번역돼야 한다. 현재 저상버스는 배차 간격도 길고, 심지어 가장 가까운 차를 100% 탄다는 보장도 없다. 리프트는 고장이 잦고, 때로 버스는 장애인 승객을 외면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30분 퇴근길이 장애인에게는 1시간이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의 진짜 의미는 장애인의 삶을 불안한 통금 속에 시달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집 밖을 나오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콜택시를 예약·탑승하는 데 수시간이 걸리는 경험은 그들이 되도록 집 안에만 머물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삶이 감옥 속에 놓이게 된다. 이 점에서 장애인들은 ‘이동의 어려움’이 아니라 ‘이동의 금지’ 속에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동이 없는 삶은 고립된 생존이다. 인간은 이동을 통해서 세계를 펼치고 자아를 완성하는 동물이다. 이동권이 인권의 기본이 되는 이유다. 2005년 국회에서 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의 제3조는 다음과 같다.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한국에서 교통약자로서 장애인은 과연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매년 추석 연휴기간 전후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고향에 갈 자유를 달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명문화된 교통약자법이 있지만 고속버스에는 전혀 적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상버스 등은 그나마 수도권의 시내버스 노선에서나 조금 볼 수 있다. 현재 리프트 장치를 단 고속버스는 단 한 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휠체어를 타고 매표소 앞에 서면 승차권 자체를 살 수조차 없다. 타지의 장애인은 고속버스로는 고향에 돌아갈 방법이 없다. 대신 그들은 자가용을 운전하거나 KTX로 먼 주변 역까지 가 다시 콜택시를 불러야만 한다. KTX와 장애인 전용 콜택시 타기는 또 쉬운 일인가? 이동에 한계가 있는 한, 그들이 고향에 갈 수 있는 자유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 그 무엇도 시작되기 어렵다.

경찰이 장애인의날을 맞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에서 고속버스 탑승을 시도하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에게 최루액을 쏘고 있다(2014년 4월20일).  연합뉴스

경찰이 장애인의날을 맞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에서 고속버스 탑승을 시도하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에게 최루액을 쏘고 있다(2014년 4월20일). 연합뉴스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

1998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이 시행되었을 때, 그것은 시민들의 보행권 보장이나 노인·어린이들의 안전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동권이 비장애인에게는 삶의 쾌적함 문제이고, 노인이나 아동에게는 안전 문제이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삶 자체가 성립하는 문제라는 사실이 공유되지 못했다. 이동권에서 소외된 장애인들의 입장을 일부 대변하게 되기까지는 무려 10년이 흘러야 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의투쟁이 2001년부터 시작되었고 그 투쟁의 결실로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서는 저상버스 등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실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제1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 따르면 저상버스의 경우 2011년까지 31.5% 도입을 계획했으나, 실제로는 12% 도입에 그쳤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때는 단계별 계획 구간에서 91% 이행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구간에서는 이행률이 33%에 그친 결과다(www.sadd.or.kr,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분석자료).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은 도리어 개악이 돼버렸다. 1차 계획에서 전국 모든 버스의 저상버스화를 50%로 잡은 반면, 2차 계획에서는 41.5%로 축소됐다. 결과적으로 2차 계획의 결과는 전체 버스의 19% 도입(목표 달성률 37.7%)에 그쳤다.

1차에서 2차로 넘어가는 5년간 겨우 7%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일부 폐차된 저상버스는 새 저상버스가 아니라 일반버스로 대체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어 일부 지역에서는 저상버스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민간업자들에게 압력과 권고를 하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역시 예산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문제보다 ‘4대강 개발’ 같은 사업에 예산을 쏟아부었다.

한국의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한 법률안은 그 권리의 내용만큼은 선진국 언저리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현실이 전혀 따라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법률적 선언만 한 셈이다. 아이들은 줄고 노인은 많아지는 고령화시대, 장애인을 위한 이동권 보장은 자연스럽게 그 기준을 장애인에게 맞추고 노인과 아이들 이동권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교통약자 이동권은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가올 세대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명 ‘교통약자법’이 전면 개정돼야 한다. 교통수단·여객시설·보행환경·시설접근권 등 이동권 전반에 걸친 실질적인 정책 이행을 추진할 수 있는 개편이 필요하다. 현재는 권고와 의무 사이에 해석이 불분명한 채 방치된 상황이다. 또 지자체에 위임한 특별교통수단 등 장애인 이동권 보장 정책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지원이 요구된다. 문재인 정부의 2018년 복지예산은 146조2000억원이다. 그 증가율이 2008년 이후 최고치로 12.9%라고 한다. 그동안 보듬어주지 못한 복지 사각지대에 관심을 주겠다는 신호로 보인다.

이동권 보장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로 장애인 문제에서부터 현실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 문제가 국토교통부만의 소관이 아니라는 인식과 더불어 아주 기초적인 복지의 하나로 이해돼야 한다. 지난 2월 국토부는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2021)을 공표했다. 이 계획을 보면, 2018년에 저상버스 도입 대수를 전년 대비 1200여대 늘리겠다는 내용도 있다. 계획대로 실행이 돼야 하겠지만, 우선 환영하면서 지켜볼 일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 3월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시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폐차할 경우 저상버스 교체 의무화, 장거리 노선에 저상버스 도입, 전세버스에 이동편의시설 설치 시 지원, 교통약자들을 위한 지자체의 이동편의센터 신설 등 구체적인 방법들을 담고 있다. 아직 상정조차 되지 못했지만 이런 시도는 이어져야 한다.

제도를 만들고 이에 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많다. 저상버스는 일반버스에 비해 운영비가 많이 들어가고, 고장이 잦아 꺼리는 형편이다. 기술적으로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자동차 기업이 교통약자들을 위한 복지카 모델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응원하고 요구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 신규 버스업체 사업자 선정 시 저상버스를 일정 비율로 도입하고자 하는 업체를 우대하고, 일반버스 폐차 시 저상버스를 필수 도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자체 조례 제정이 시급하다. 물론 교통약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속도가 요구된다. 앞에서 언급한 버스 기사가 욕설을 한 것은 개인적 인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강요받은 배차의 압박이 없었다면 그도 급히 서두를 필요도, 성을 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일은 실제로 돈을 들이고, 적당한 모델을 발명하고, 같이 보폭을 맞춰줄 시민윤리를 훈련하는 전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직 우리 사회는 갈 길이 멀다.

■나보다 더 빠른 그이

지난해 가을, 필자는 의정부의 한 장애인 교육단체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학생 중 한 명이 전철역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단체의 교장선생님이 장애인도 이런저런 사회화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 그에게 낯선 사람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전동 휠체어를 탄 학생과 강의장까지 함께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필자는 학생이 걱정되어 내 우산을 씌워주려고 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보다 제가 빨라요. 먼저 갈 테니 따라오세요.”

과연 전동 휠체어는 나보다 빨랐다. 손쉽게 멀리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서, 그 학생이 자신이 사는 마을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그 어느 곳으로도 빠르고 자유롭게 떠나는 상상을 했다. 그 학생의 속도가 곧 우리들의 속도다. 이제 그들에게만 금지돼온 속도를 그들에게 주기 위해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오영진

[금지를 금지하라](24)이동 없는 삶은 ‘고립된 생존’…박탈된 ‘속도’를 허하라


한국 기술문화와 서브컬처를 연구한다. 주요 평론으로 <컴퓨터게임과 유희자본주의> <인디의 추억> 등이 있고, 공저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2014),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2017) 등이 있다. 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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