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망치질 하는 사람’은 주 52시간을 지키고 있을까

2018.08.27 10:03 입력 2018.08.27 10:05 수정

서울 신문로 흥국빌딩 앞에 설치된 조너선 보롭스키 작품 ‘해머링맨’의 2009년 모습|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신문로 흥국빌딩 앞에 설치된 조너선 보롭스키 작품 ‘해머링맨’의 2009년 모습|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광화문 흥국빌딩 앞에는 느리게 꾸준히 망치질을 하는 커다란 사람 모양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미국 조각가 조너선 보롭스키가 만든 ‘해머링맨’입니다.

이 조각상은 ‘일하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인근 정동길의 경향신문사에서 일하는 저는 회사를 오갈 때 꼭 한 번씩은 이 작품을 보게 됩니다. 바쁘지 않은 날에 묵묵히 망치질하는 조각상을 만나면 좀 숙연해지고, 새벽 출근길이나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좀 서러운 기분이 되곤 합니다.

법이 정하는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든 지 이제 두 달 째 되었습니다. 혹시 해머링맨의 노동시간도 줄었을까요?

■ 해머링맨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지키고 있을까

해머링맨을 소장하고 있는 세화미술관에 물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알려왔습니다.

가동시간

- 동절기(11월~2월): 08:00~18:00

- 그 외(3월~10월): 08:00~19:00

가동일

- 평일에는 가동

- 토·일요일 및 공휴일, 근로자의날 가동중지

점심·저녁시간 없이 하루 11시간을 일을 하니, 해머링맨의 주당 노동시간은 55시간으로 법정 최대 시간을 넘습니다. 겨울에는 하루 한 시간 줄어든 10시간을 일하니, 주당 노동시간이 50시간으로 줄어들어 ‘법 위반’은 아슬아슬하게 피하게 됩니다.

휴가는 따로 없습니다. 3년 전 해머링맨이 두 달 간 ‘안식휴가’를 가진다는 기사가 나온 적 있습니다. 오래된 부품을 갈아 까우고 도색 작업을 하느라 가동을 멈춘 것이었다고 합니다. ‘휴가기간’동안 작품은 가림막으로 둘러 싸였습니다. 이후에는 청소나 보수 작업을 주말이나 공휴일에만 실시했다고 합니다.

▶ 13년간 망치질 340만번… 해머링 맨 ‘두 달 안식휴가’">" target=_blank>▶ 13년간 망치질 340만번… 해머링 맨 ‘두 달 안식휴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은행타워 앞에 있는 ‘해머링맨’ 2008년 모습|AP·연합뉴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은행타워 앞에 있는 ‘해머링맨’ 2008년 모습|AP·연합뉴스

■ 우리들 모두에 대한 찬사

조너선 보롭스키가 처음으로 만든 해머링맨은 나무로 만든 높이 3.4m의 조각상이었습니다. 처음에 ‘노동자’로 붙여 졌던 이 작품 이름은 철제 작품이 시리즈로 나오면서 ‘해머링맨’으로 바뀌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모양은 똑같고 크기는 다른 해머링맨이 여러 개 설치돼 있습니다. 미국과 스위스, 독일 등지에 이어 일곱 번째로 2002년에 세워진 서울의 해머링맨은 높이가 무려 22m이고 무게는 50t에 달합니다.

작품의도를 설명한 작가의 말을 일부 발췌해 전합니다.

해머링맨은 노동자입니다. 해머링맨은 노동자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 또는 그녀는 마을의 장인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석탄 광부이며,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이고, 농부일 수도 우주인일 수도 있는, 우리가 기대어 사는 온갖 물자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중략) 해머링맨은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노동자입니다.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다른 작품도 보러 가기

■ 작품도 사람도 쉬어야 하는 까닭

흥국빌딩 앞 해머링맨의 노동시간은 여러 차례 변했습니다. 미술관 관계자는 “따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오래 전 쉬는 날 없이 가동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언론 기사를 보면 2010년에는 해머링맨이 하루 17시간 동안 망치질을 했다고 돼 있습니다. 2년 전에는 해머링맨 노동시간이 14시간이라고 언급한 기사도 나왔습니다. 변천사가 뚜렷한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해머링맨이 일하는 시간도 우리의 노동시간처럼 줄어온 것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미술관 관계자는 해머링맨 가동 시간이 점차 줄어든 데 대해 “망치질을 하는 팔의 무게만 약 4t인데, 가동 시간이 길다 보니 무게감에 작품이 파손되는 경우가 잦아 작동 시간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현실 노동시간을 직접 반영한 것은 아니고, 작품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동 시간을 줄였다는 설명입니다.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막 준수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서 인간은 이 조각품과 얼마나 다른지 생각 해 보게 됩니다. 과로사가 흔한 나라에서, 사람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이제야 마련된 셈이니까요.

서울의 해머링맨은 마치 한국의 장시간 노동을 보여주는 듯 그 크기가 세계에서 가장 큽니다. 다만 작품 크기는 커미셔너(작품을 의뢰한 사람) 요청에 따라 정해진 것이지 작가의 작품의도와는 관련이 없다는 게 미술관 측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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