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사업가 김호, 간첩일까 제2의 유우성일까

2018.09.08 14:09 입력 2018.09.08 18:53 수정
이하늬 기자

검찰이 ‘대남 스파이’를 잡아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양중진 부장검사)는 지난 5일 “북한 정보통신(IT) 조직으로부터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제공받아 마치 자체 개발한 것처럼 국내에 판매하는 한편, 그 과정에 북한에 개발비 등을 제공하고 군사상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김호씨(47)와 공범 이모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적시한 혐의는 국가보안법상 금품수수, 편의제공, 회합·통신 등이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주화가족실천협의회 목요집회에서 민가협 소속 어머니들과 비전향장기수 등 참석자들이 지난 7월 12일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주화가족실천협의회 목요집회에서 민가협 소속 어머니들과 비전향장기수 등 참석자들이 지난 7월 12일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김씨는 이로써 문재인 정권에서 제1호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이 됐다. 김씨는 2002년부터 대북 경협사업을 해온 ‘대북 사업가’다. 검찰 공소장에는 또 다른 인물도 등장한다. ‘재중 북한 공작원’ 양모씨다. 그런데 양씨는 한국 검찰로부터 단 한 차례 조사도 받지 않았다. 김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양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불가피하다. 검찰은 그런데 왜 기본적인 수사조차 하지 않고 김씨를 재판에 넘긴 것일까.

<주간경향>은 6일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씨가 변호인단에게 보낸 자필 편지를 입수했다. 해당 편지에 따르면 김씨는 2007년 통일부에 중국 중개인 양씨와 북한 개발자 박모씨와 거래를 한다는 접촉신고를 하고 승인을 받았다.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남한사람이 북한사람과 접촉할 때에는 통일부에 사전신고 및 승인을 받아야 한다. 김씨는 “그 이후 10년동안 중국법인을 통해 제3자 무역 형식으로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고 밝혔다. 이들 간의 거래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김씨는 지난 7월 북한 개발자 박씨와의 사업계획안을 한국의 한 시중은행에 접수했다. 사업계획안에는 경협 관련 내용이 전부 담겨 있었다. 비밀문건이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 첨단기술개발원 건물 8층과 9층에 남북 경제협력 사업으로 ‘코리아 인공지능센터’를 건립하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박씨와 나는 경제협력 관계일 뿐 (북한의) 지령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이 체포 위해 증거 조작’ 의혹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는 김씨의 주장과 다르다. 검찰은 조선족 중개업자 양씨를 공작원으로, 김씨와 거래해온 박씨를 북한의 지령을 내리는 관계로 봤다. 또 김씨가 자신의 편의제공을 목적으로 박씨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벌어졌다. 김씨는 지난 8월 9일 체포된 후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변호인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경찰 수사관의 휴대전화를 빌려 사용하고 돌려줬다. 그런데 경찰이 검찰에 제출한 구속영장 신청서에는 김씨가 작성한 적이 없는 영문의 문자 메시지가 증거인멸 지령으로 둔갑해 있었다. ‘Sorry room 205, To repaire the air conditioner 3pm on july 22. I am going to visit your house 4’(죄송합니다. 205호실 에어컨 수리를 위해 오후 3시쯤 방문할 예정입니다), ‘I am really sorry that the air coditioner techician could not visit yesterday.’(어제 에어컨 수리기사가 방문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해당 문자는 그러나 김씨가 체포되기 한참 전에 경찰 공용 수사폰으로 들어온 문자였다. 경찰은 그러나 “자신의 체포를 알리고 증거를 인멸하라는 듯한 알 수 없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하였습니다. 만약 피의자 김호의 인신을 구속하지 않는다면 피의자 이○○ 또는 또 다른 공범과 진술을 공모하여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구속사유를 기재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고 김씨는 구속됐다.

김씨의 변호인인 법무법인 상록의 장경욱 변호사는 “경찰은 단순 착오라고 하나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며 “그 문자들은 김씨가 체포되기 20일 전에 수신된 것이고 또 수신문자와 발신문자는 배경 색깔이 달라 한눈에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의 구속이 취소되지는 않았다. 검찰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자메시지가 전부가 아니다. 다른 혐의도 많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은 공소장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북한 공작원’ 양모씨에 대한 수사도 벌이지 않았다. 경찰이 작성한 범죄사실에 따르면 김씨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양씨를 통해 북한과 접촉한 인물로 등장한다. 당연히 신원확보 및 기초조사가 이뤄졌어야 하는 인물이다.

수감 중인 김호씨가 변호인단에 보낸 자필 편지 / 변호인단 제공

수감 중인 김호씨가 변호인단에 보낸 자필 편지 / 변호인단 제공

‘재중 북한 공작원’은 수사조차 안 해

양씨는 그러나 지난 5일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한국에서 연락이 온 건 기자 선생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양씨는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 인터뷰 역시 국제전화로 했다. 또 한국의 수사기관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대북공작원, 중간연락책으로 둔갑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양씨는 “무슨 근거로 저의 신분을 그렇게 엮는지 모르겠다.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김씨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된 계기도 설명했다. 그는 “김 선생이 통일부에서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북한의 개발자를 소개시켜줬다. 남한·중국·북한 법 어디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인이 북한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양씨는 어린 시절 중국으로 귀화했고 현재 중국 국적을 가진 ‘공민’이다.

검찰 입장에서 양씨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혐의와 배치되는 진술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검찰이 양씨에 대한 진술을 왜 확보하지 않았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김씨는 현재 우리 군(軍)이 휴전선 대북 감시장비 관련 입찰공고를 낼 때 북한이 개발한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납품하려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군사기밀을 북에 전달하려 한 인물로 구속수감돼 있다.

국정원이 김씨를 대북 스파이로 활용하려 했다는 주장도 현재 제기된 상태다. 그러나 검찰은 이부분에 대한 별도의 수사는 벌이지 않았다. 김씨는 자필 편지를 통해 국정원이 대북경협사업을 하는 자신을 정보원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진술을 했다. “북한 정보를 요구하며 2014년까지 저를 감시해 온 이 실장, 권 이사, 최 이사. 난 그들의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들은 자신들과의 관계를 비밀로 할 것을 협박했고, 누설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를 2014년 여름에 썼다.”

김씨의 진술은 그의 이메일 계정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김씨는 2012~2014년 국정원 직원으로 여겨지는 이들과 수시로 접촉했다. 김씨는 자신이 개발 중인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첨부해 이들에게 보내고, 북한 개발자 박씨와의 대화록을 통째로 넘기기도 했다. 대화록 분량만 A4용지 40장이 넘는다.

장경욱 변호사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통일부의 접촉승인 이후 국정원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김씨로부터) 들었다”면서 “김씨는 대북경협이라는 다소 위험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국정원의 요구를 들어줬고, 국정원을 일종의 ‘안전망’으로 여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김씨가 ‘제2의 유우성’이 될지, 검찰의 주장대로 대남 스파이인지 여부는 결국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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