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사칭’ 일상화…피해자는 속수무책, 처벌법은 국회서 낮잠

2019.02.13 21:23 입력 2019.02.20 16:13 수정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프로필 사진부터 이름까지 특정인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칭 계정’
엄연한 불법이지만 대응 쉽지 않고 해외 서버 SNS는 폐쇄 어려워

우리나라에선 2016년 관련 처벌 법안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
미국의 상당수 주에선 독자적 범죄로 처벌하는 법 제정 활발
캐나다는 타인 사칭에 10년의 징역형 부과하는 중범죄로 규정

대학생 황민우씨(가명)는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맛집을 검색하다 깜짝 놀랐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SNS에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여자친구와 방문한 식당에서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홍대맛집#JMT#핫플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사진 속 황씨는 음식을 먹기 직전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이었습니다. 황씨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식당에서 밥 먹는 모습이 찍혀 모르는 사람의 SNS에 올라와 있다는 게 기분 나빴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어 게시하고 공유하는 SNS시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개인의 SNS에 ‘일상의 한순간’으로 기록되곤 하지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의 모습을 찍거나, 다른 사람의 사진에 찍히는 일이 발생합니다.

30대 주부 이유정씨(가명)는 지난달 가족 행사를 치르며 음식과 사진 촬영 일체를 제공하는 ㄱ서비스 업체를 이용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행사 중 업체 측이 ‘서비스’라며 찍어준 가족사진이 ㄱ업체 SNS에 홍보용으로 게시된 상태를 발견한 것입니다. 해당 게시물에는 두 살배기 딸 아이의 얼굴과 이름까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씨는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사진을 무단으로 게시한 것에 너무 화가 나 관련 게시물을 모두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초상권이란 자신의 모습이 동의 없이 촬영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촬영이 이루어진 경우, 동의를 얻었으나 그 이용이 동의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 비방·명예훼손적 표현과 결부되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되었을 경우 초상권이 침해된 것으로 봅니다. 초상권 침해가 성립되려면 제3자가 사진이나 영상에 드러난 인물이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얼굴이 아닌 신체의 일부만 촬영된 경우라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면 초상권 침해에 해당됩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르면 황민우씨와 이유정씨는 초상권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씨의 경우 자신이 사진 촬영을 허락한 적이 없음에도 촬영과 게시가 이루어졌고, 이씨는 촬영은 허가했으나 원치 않게 업체 홍보용으로 사진을 이용당했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초상권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은 없으나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제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근거하는 인격권의 일종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침해가 있을 경우 민법 제751조 제1항 ‘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의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 초상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요”입니다. 일상 속에서 초상권 침해는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배상이나 처벌이 뒤따르는 경우는 때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 초상권 침해됐지만 손해배상은 ‘글쎄’

초상권은 형법으로 보호하는 규정이나 법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처벌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모욕이나 명예훼손, 성희롱, 재산상 피해 등 형법적인 요소와 결부시켜 처벌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방할 목적으로 타인의 사진을 SNS에 게시하거나, 동의 없이 업체·상품 홍보에 이용했을 경우 초상권 침해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의도 없이 개인 SNS에 다른 사람의 사진을 게시했다면 배상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법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법률사무소 활의 윤예림 변호사는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고의와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하는데, 일상사진 공유 목적이 대부분인 SNS상에서는 이를 명확히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가게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사진이 찍혀 다른 사람의 SNS에 게시되었을 때,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이것이 나에게 어떠한 손해를 끼쳤는지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사진이 찍힌 황씨의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선 그로 인해 입은 피해를 따져봐야 합니다. 윤 변호사는 “SNS 게시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면 찍어서 게시한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배상을 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나빴다’는 감정을 피해사항으로 보고 정신적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해당 게시물이 황씨를 비방하는 목적으로 쓰였다거나 부정적인 의미로 명예를 훼손한 경우가 아니라면, 법률적 배상 기준이 되는 손해를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업체 홍보 SNS에 무단으로 사진을 이용당한 이유정씨의 경우 황씨에 비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큽니다. 업체 측이 이씨의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하여 영업활동에 사용한 정황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민사상으로 다뤄지는 초상권 침해 소송은 누구나 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피해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는 한 유의미한 배상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중론입니다. 최재용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장은 “국내 스마트폰 보급과 SNS 확산 속도에 비해 타인의 초상권에 대한 인식은 낮은 부분이 있다”며 “SNS상에서 개인 간 초상권 분쟁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조정할 기관이나 규정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당장은 사진을 찍고 찍히는 당사자들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진 중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도용금지’를 태그한 게시물들. 2만개 이상이 검색된다. ‘사칭주의’ ‘사칭금지’ 태그를 단 게시물도 상당수다.

사진 중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도용금지’를 태그한 게시물들. 2만개 이상이 검색된다. ‘사칭주의’ ‘사칭금지’ 태그를 단 게시물도 상당수다.

■ SNS세계의 또 다른 나 ‘사칭 계정’

SNS를 즐겨 사용하는 필라테스 강사 박은주씨(가명)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SNS에 자신의 사진이 다량으로 게시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프로필 사진부터 이름까지 박씨의 사진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고 댓글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사칭 계정’이었습니다. 놀란 박씨가 초상권 침해로 신고하겠다고 항의하자 해당 계정은 자취를 감추었고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다른 아이디로 또다시 사칭 계정이 만들어졌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박씨는 경찰에 이를 신고했지만 단순 사진 도용만으로는 처벌하기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박씨는 “연예인을 사칭하는 계정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일반인인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며 “계정이 삭제된다 하더라도 언제 또다시 사칭 계정이 만들어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러한 SNS 사칭은 엄연한 불법행위이지만 대응이 쉽지 않습니다. 이를 처벌할 명확한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당 SNS 사이트에 이를 알려도 계정 폐쇄 등의 실제적 조치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외국 SNS의 계정을 폐쇄하려면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 기간 동안 사칭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되는 것이지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국내 서버가 없는 다국적기업의 SNS의 경우 명예훼손 등 불법행위가 발생해도 경찰 수사와 행정 제재가 어렵습니다. 온라인 범죄를 다루는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홈페이지를 통해 텀블러,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트위터, 구글·유튜브 등 업체별 권리침해 신고 방법을 안내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사건에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사이버안전국 관계자는 “단순히 사칭을 해서 다른 사람 행세를 한 것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없다”며 “그로 인해 성희롱이나 모욕, 명예훼손, 금전적 피해 등 2차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야 수사기관이 개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 외 권리침해가 발생했을 시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사칭 범죄에 처벌 규정을 제정하는 추세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루이지애나, 와이오밍주 등 상당수의 주에서 온라인 타인 사칭을 독자적 범죄로 처벌하는 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법은 ‘다른 사람을 가해, 협박, 위력 또는 기망하기 위해 동의 없이 인터넷 웹사이트 또는 다른 전자적 수단에 의해 자신을 실존하는 다른 사람으로 신용할 정도로 사칭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1000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병과형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캐나다 연방법률은 타인 사칭에 장기 10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중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15년과 2016년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SNS상에서의 타인 사칭 방지법’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SNS 초상권 Q&A

지하철에서 여성을 도촬한 남성에 “특정부위 아닌 전신을 찍었다면 무죄” 판결도


SNS는 개인의 사적 공간임과 동시에 다수에게 공개된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당사자 동의 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거나 유포하는 것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하는 행위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요, 어떤 경우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할까요? SNS상에서 초상권을 침해당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문답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 나의 사진이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의 SNS에 게시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성희롱이나 비방,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과 함께 게시되었는지, 혹은 해당 게시물이 상업적 용도로 쓰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초상권 침해로 인해 내가 입은 피해를 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사상으로 다뤄지는 초상권 분쟁은 ‘어떤 손해가 발생했는가’를 기준으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 관광지에서 찍은 셀카에 지나가던 사람의 모습이 찍혔습니다. 뒷모습이 찍힌 사진 또는 모자이크 처리를 한 사진은 SNS에 게시해도 괜찮을까요.

“초상권 침해 기준은 제3자가 사진이나 영상에 드러난 인물이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얼굴이 아닌 뒷모습이나 신체의 일부만 촬영된 경우라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면 초상권 침해에 해당됩니다. 다만 사진 속 인물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2차 처리를 했다면 손해배상이 성립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몰카’나 ‘도촬’ 등으로 인한 노출사진도 일반 사진과 같이 다뤄지나요.

“몰래 타인의 노출사진을 찍거나 이를 배포했을 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더욱 엄격하게 처벌받습니다. 현행법상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허가받지 않고 촬영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노출사진을 다루는 현재의 규정이나 기준이 모호해 점차 다양화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15년 노출이 심한 여성을 몰래 촬영했더라도 특정부위가 아닌 전신을 찍었다면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온 바 있습니다. 피고 이모씨는 지하철 역사 등에서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을 뒤따라가며 몰래 사진을 찍다가 경찰에 붙잡혔는데요, 재판부는 이씨의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 중 여성의 다리를 찍은 사진에 대해서는 유죄를, 전신을 촬영한 사진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노출이 심하더라도 평상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전신까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해석하는 것은 비논리적 해석’이라는 것이 판결의 이유였습니다.”

- 최근 길거리에서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SNS나 유튜브에 공유하는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는데요, 이와 같은 동영상 콘텐츠에 찍혔을 경우도 초상권 침해에 해당되나요.

“개인 생방송의 경우 원치 않게 찍힌 사람의 모습이 생중계되는 등 초상권 침해에 더욱 취약합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찍히는 사람의 얼굴이 방송을 보는 불특정 다수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2016년 이른바 ‘헌팅방송’을 통해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 방송했던 20대 BJ가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초상권을 침해받기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누군가 본인의 사진을 찍는 것을 인지했다면 ‘찍지 말라’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을 명확하게 알면서도 제재하지 않았다면 상대방이 ‘찍어도 된다’는 표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역시 찍히는 사람의 의사를 묻고 촬영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 특별취재팀 노정연(모바일팀)·박순봉(정치부)·최미랑(전국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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