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가정 “어떻게 지원 받는지 몰라요”…찾아가는 돌봄 절실

2019.05.04 06:00 입력 2019.05.04 06:03 수정

어린이날 앞두고 되짚어본 ‘조손가정’의 현주소

다운증후군 환자인 성찬이를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할머니가 지난 2일 인천 삼산동 자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다운증후군 환자인 성찬이를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할머니가 지난 2일 인천 삼산동 자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월평균 소득 88만원도 안되는
저소득 조부모들과 손자녀 생활
양육·빈곤·건강 문제 겹치고
아이들은 ‘심리적 타격’ 입어

정부 ‘행복e음’ 사회복지시스템
서류상 ‘부모’ 때문에 지원 불충분
현장선 지원 제도 있는지도 몰라
실태 파악 위한 조사 서둘러야

조손가정은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고령화와 가정해체, 이 두 가지 문제가 작용해 생겨난 가족 형태다. 노인들이 많아지고, 해체되는 가정이 증가하면서 그 수도 점점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조손가정은 11만3100여가구였으며, 고령인구 추세 등을 감안하면 2030년에는 27만가구, 2035년에는 32만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조손가정은 조부모가 근로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 문제를 겪을 때가 많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분위(소득 하위 20%) 조손가정의 월평균 총소득은 지난해 110만원가량으로 생계급여와 기초연금 등을 합친 규모였다. 성찬이(10·가명) 가족의 소득수준과 비슷한 가족들이 대다수인 것이다. 그나마 이는 나아진 것으로, 2017년까지만 해도 이들의 소득은 100만원도 안되는 97만원이었다.

특히 저소득 조손가정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문제다. 2017년 기준으로 월 88만원도 못 버는 조손가정은 전체 조손가정의 8.2%였으나 지난해 9.2%로 늘었다. 같은 기간 연 7000만원 이상 버는 고소득 조손가정도 7.2%에서 13%로 크게 증가했다. 조손가정의 평균 소득이 늘어난 것은 전체적인 생활의 개선이라기보다 고소득층에서도 가정해체가 가속화되며 조손가정이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손가정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손자녀들의 돌봄 문제로 고민할 때가 많다. 2017년 제주국제대 연구진이 조손가정 문제를 연구한 논문을 보면, 조부모들은 손자녀 양육에 따른 심리적 스트레스와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두고 압박감이 심했다. 심할 경우 비관이나 자살충동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반면 조부모들이 건강이 악화될 경우 돌봄 부담은 거꾸로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진은 “조부모의 건강 상태에 따라 손주들이 때로는 손과 발이 될 수 있으며 위험한 상황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도 이들의 몫이 된다”고 설명했다.

조손가정 아이들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고 또래와의 상호작용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 제주국제대 연구에 참여한 한 조손가정 출신 대학생은 “중·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며 “당시 할머니는 나를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씻겼고 옷 입는 것도 별로였다. 냄새도 나고 더러우니 친구들은 내가 이상해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례자는 “왕따를 당한 뒤 성격이 변했다. 외모콤플렉스와 대인기피증이 생겨 아이들을 피해 다녔다”고 회상했다.

조손가정이 늘어나고 이들의 고충이 알려지자 정부는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수시로 내놨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인 ‘행복e음’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조손가정을 발굴하고, 이들이 생계급여 등을 신청하면 특례를 적용해 문턱을 낮추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재도 대다수의 조손가정들은 ‘부양의무자’ 요건에 걸리거나 서류상 동거인으로 남아 있는 부모를 정리하지 못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 행정복지센터에서 직접 이들을 찾아나서 상황을 들어주면 좋지만 부족한 복지공무원 수는 가려진 조손가정을 발굴하는 데 현실적 제약이 되고 있다.

현재 조손가정 지원제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정작 필요한 지원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가족부의 경우 저소득 조손가정의 양육비나 교육지원비를 지원하고 각 지역의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돌봄을 지원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런 제도조차 모를 때가 많다. 반면 조손가정이 이용할 수 있는 돌봄이나 교육지원, 가족지원 제도는 부족해 당사자들은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조손가정 실태조사다. 조손가정은 급증하고 있지만 2010년 여가부의 실태조사 이후 공식적인 조사는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지난해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강신욱 통계청장을 찾아 실태조사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으나 해가 바뀐 현재까지 조사 시행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통계청이 승인하는 제대로 된 통계로 만들려면 표본의 규모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력이나 예산 등이 필요해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