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1인가구, ‘청년‘과 ‘신혼부부‘ 사이 사라진 보금자리

2019.10.16 20:52 입력 2019.10.17 16:30 수정

[공공임대주택-구멍뚫린 복지(3)]비혼 1인가구, ‘청년‘과 ‘신혼부부‘ 사이 사라진 보금자리

생애주기별 임대주택 공급
청년·신혼부부·유자녀 위주
1인 가구는 대출 조건 더 열악
여성은 안전비용도 감수해야
“비혼, 지속적 형태로 보고 지원”

‘아이는 자라서 청년이 된다. 청년은 취직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운다.’

정부는 2017년 11월 이러한 생애주기에 맞춰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며 ‘사회통합형 주거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로드맵’(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했다. 주요 정책 대상으로 호명된 것은 청년·신혼부부였다. 정부는 5년간 청년주택 30만실,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20만가구 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정부는 신혼부부를 위한 전세임대 대출 상한액은 높이고, 보금자리론의 소득 제한은 낮췄다.

정책이 담은 메시지는 간명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최저소득계층이 아닌 신혼부부에게도 주거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주거복지로드맵에는 ‘청년-신혼부부-유자녀가구’, 즉 정부가 정한 ‘정상가족’ 울타리를 벗어난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울타리 밖 그들을 위한 주거사다리는 없다. 끊긴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에는 여성 1인 비혼가구가 있다.

■ ‘정상가족’만을 위한 사다리

비혼을 선언한 김경희씨(24·이하 가명)는 “비혼으로 평생 산다고 했을 때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것이 가장 막막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집에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정기적으로 공공임대주택 공고를 살피고 있지만 그에겐 공공임대가 최선의 선택지가 되지 않는다. 청년대상 공공임대는 ‘함께 사는 사람’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아 작은 평수 위주다. 당첨된다고 해도 동생과 함께 지내기에는 턱없이 좁을 게 분명하다.

설사 동생이 독립해 혼자 산다고 해도 청년 1인 가구에 주어진 ‘5평 남짓’에서 평생을 계획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정부 정책에서 ‘청년’은 단지 정해진 생애주기에서 ‘지나가는 단계’일 뿐이다. 김씨는 “현재 청년을 위한 정책은 특정 나이(만 39세)가 되면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평생 5평에서 살 수는 없으니 거기서 돈을 모아 나가 결혼을 하라는 것”이라며 “정부의 장기 정책엔 ‘결혼하지 않고 청년도 아닌’ 가구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비혼 여성 최현서씨(39)는 “결혼한 친구들은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일단 주거는 안정되는 것 같다”며 “전·월세에 살던 친구도 결혼 후엔 빚을 내서라도 자가를 갖는데 내 상황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주거사다리에 대한 기대를 품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운 좋게’ 올해 초 서울 은평구 국민임대아파트(보증금 5200만원·월세 9만8000원)에 들어가긴 했지만 벌써 10년 기한을 다 채운 뒤가 걱정스럽다.

최씨는 “1인 가구인 데다 프리랜서이기에 대출을 많이 받을 수가 없어서 이전에는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로 1000만원을 빌려 6000만원 전세에 살았다”며 “공공임대뿐 아니라 대출 조건에서도 1인 가구는 훨씬 열악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의 ‘주거 사다리’서 소외된 비혼가구

이는 대출 기준이 결혼을 매개로 한 정상가족 위주이기 때문이다. 1명의 소득으로는 많은 대출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결혼으로 2명의 소득이 합쳐지면 많은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지난해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가 마련 과정에서 금융기관 대출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복수응답)은 49.3%였다. 반면 1인 가구가 자가 마련 과정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4.8%에 그쳤다. 목돈이 들어가는 부동산의 특성상 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가 곧 주거 수준을 결정한다. 다른 통계를 보면, 2015년 기준 비혼 1인 가구의 49.9%는 ‘보증금 있는 월세’에 거주한다고 답했다. 자가 보유율은 13.9%에 불과했다. 일반 가구의 자가 보유율은 56.8%, 월세 거주율은 20.3%로 정반대였다.

■ 비혼·여성·1인 가구라는 ‘삼중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곽지영씨(31)는 올 초부터 서울에 있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원짜리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월세가 다소 비싸 고민했지만 경비원이 있는 등 보안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기 때문에 선택했다. 곽씨는 과거 다세대주택에 살 때, 한 남성이 대문 안까지 따라들어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가까스로 집에 들어와 문을 잠갔지만 2주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내게는 과분한 집 같지만 안전한 주거에 드는 돈은 단순히 ‘안전비용’이 아니라 ‘생존비용’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언젠가는 혼자서도 안전한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주거침입 성범죄는 2015년 이후 매년 3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2016년 12월 발표한 가구별 서울시 여성 1인 가구 조사 보고서를 보면 40대 이상 여성 1인 가구도 치안 문제로 고민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안전비용’이 소득 수준이 낮은 여성 1인 가구에 고스란히 경제적 부담으로 얹힌다는 것이다. 실제로 1인 여성가구는 연령대와 무관하게 높은 주거비 부담을 진다. 한국도시연구소가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성 1인 임차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월 임대료 및 관리비에 전·월세보증금 전환비 6%를 더한 값) 비율은 31.9%로 전체 가구 평균인 10.2%의 3.1배로 나타났다. 남성 1인 임차가구의 22.1%와 비교해도 44% 높은 수준이다.

불안정한 주거지에 살고 있는 비혼 1인 가구원들은 “정부가 ‘1인 가구’를 일시적인 형태가 아닌 지속적인 삶의 형태로 바라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곽씨는 “최근 역세권 청년주택 ‘5평 논란’의 핵심은 당장 5평을 감당할 수 있느냐보다는 그 이후를 상상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청년 1인 가구를 ‘결혼 전’의 일시적인 존재로 보는 한 1인 가구는 주거정책에서 계속 소외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이유나 연구원은 “정부가 비혼 동거 가구를 지원하겠다며 내놓은 1호 정책이 사실혼 부부의 난임시술 지원인 것을 봐도 정부의 포커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면서 “1인 가구를 ‘출산예비군’이 아닌 하나의 정책 대상으로 보고, 결혼 바깥의 다양한 형태의 관계맺음, 연대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비혼가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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