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재난시대 ‘빈익빈 부익부’

2020.03.21 06:00
이인규

코로나19 버텨낼 피난처 ‘집’개인 처지 따라 안전도 ‘격차’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5)재난시대 ‘빈익빈 부익부’

흔히 ‘재난’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태풍, 지진, 전쟁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집을 잠시 떠나야 하거나 집을 아예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감염병이라는 재난이 퍼지고 있는 지금은 어찌 보면 반대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최대한 집에 가둬야 한다. 일상을 완전히 잃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버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사람과 집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밀접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에는 모처럼 집에만 붙어 있으니 편하고 좋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괴로움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글도 보인다. 자녀들의 학교와 유치원의 개학이 연기되면서 살림과 육아 심지어 재택근무까지 병행하게 된 이들은 집에서 삼시세끼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그래도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다른 고통에 비하면 그들의 사정은 나아 보인다. 자가격리를 홀로 버텨야 했던 중증장애인의 사연을 다룬 기사도 보았다. 자신을 돕던 활동지원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있던 곳은 분명 그의 집이었지만,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그에게 그곳은 살아남기 위해 11일간 홀로 싸운 전쟁터였을 것이다.

재난 상황을 버텨내야 하는 현장인 집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말에서 당연히 전제하는 ‘다른 이들과 떨어져 있을 수 있고, 위생적이며 안전한 집’에 살고 있지 않은 이들도 있다. 쪽방촌, 고시원처럼 주택법상 집으로도 분류되지 못하는 ‘집이 아닌 집’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너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는다. 최소한의 활동도 할 수 없는 비좁은 방, 개인위생과 직결되는 채광과 환기, 단열, 방음이 안되는 그곳이 그들이 지금을 버텨내야 하는 집인 것이다.

전 세계로 감염병이 퍼지는 재난 상황을 겪으며 집의 가장 기초적인 기능이 ‘보호’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집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가족을 보호하는 최소 단위의 피난처이자 끝까지 지켜져야 할 마지막 보루이다. 우리 사회에서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지나치게 비대했던 부동산 가치나 계층적 구별짓기의 상징이라는 허울을 벗어놓고 모처럼 가장 원초적인 집의 기본 역할에 대해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우리 인간에게 집은 무엇일까.

개인·가족 보호받을 마지막 보루
그래서 인간에게 집은 당연한 권리

■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종, 인간

집을 ‘인류의 진화’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신경인류학자 존 S 앨런은 <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라는 책을 통해 인간과 집의 길고 긴 관계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우리 인간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종(Homebodies)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더 정확히는 건축물로서의 주택(house)과는 구별되는 ‘집(Home)의 느낌’을 좋아하는 종이라고 한다. ‘집의 느낌’이라는, 막연히 알 것도 같지만 뾰족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몸과 마음이 만들어 내는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집은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먹고 자는 행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집에 가면 지친 몸의 항상성을 회복시켜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집의 느낌은 강력한 인지적 힘이 될 수 있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은 몸뿐 아니라 뇌를 쉬게 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 간의 공감과 동기화가 쌓이면서 그 공간을 우리 자신이 속한 장소로 느끼게 한다. 이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집의 느낌’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집의 느낌’은 신체와 정신의 항상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소속과 관계에 대한 자각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질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앨런은 ‘집의 느낌’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유인원과 우리를 구분해준 중요 요인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집은 우리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에서 생활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인지적 세계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둘 곳이 되어주었다. 즉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집이 필요하며, 집에 있을 때 계속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집이 있기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 바로 ‘집의 느낌’이다. 이러한 권리는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과도 맥이 닿아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여기에는 음식과 옷, 주택, 의료와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가 포함된다. 또 실업이나 질병, 장애, 배우자와의 사별, 고령, 혹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서 생계를 꾸릴 수 없을 때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누구라도 재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읽으니 더욱 구구절절 공감하게 되는 듯하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덕이 되며 우리의 일상도 달라지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덕이 되며 우리의 일상도 달라지고 있다. 연합뉴스

재택근무로 위험 피한 사람보다
생계 위해 바깥 나서는 사람 많아

■ 코로나19가 깨닫게 해준 것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새삼스럽지만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그 모습은 다 다르다는 것이다. 감염병은 ‘누구라도’ 걸릴 수 있다. 하지만 감염 위험도는 각자의 피난처인 집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면 감염 위험은 낮아진다. 그야말로 집이 ‘보호’의 최전선이 되어주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거나 혹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경우, 생존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집 안에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경우, 그리하여 자신의 일상을 외부에 의지하는 비율이 낮을수록 감염 위험은 낮아진다. 각자 누리는 생활 수준의 차이에 따라 재난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장 약한 취약계층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찾아온다. 이러한 차이는 재난이 장기화될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사회와 거리를 두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상상하면 매번 놀랍다. 내 가족, 동료, 이웃처럼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저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할 뿐인 스치는 이들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었다.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심지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지구 반대편의 그 누군가의 안녕도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나의 안녕을 위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노력을 했음에도 확진자가 된 경우를 보면서 이건 개개인의 노력에 걸린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 이웃들에게도 필요한 물품이 제대로 배분되고 있는지 걱정하게 되었고, 사회의 취약계층이나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집 등에 우선 배부된다는 소식에 조금 마음을 놓기도 했다. 재난 상황에서 단지 폭리를 취하기 위해 사람들의 생존과 안전을 위한 필수품을 독점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의 반사회적인 행동은 처벌받아 마땅하며, 사회 전체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정부에 문제 해결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는 것도 이번 마스크 대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만이 우리 사회가 진정 안전한 집이 될 수 있음을 모두가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탄탄한 사회안전망 서둘러 구축
‘집이 아닌 집’ 쪽방촌·고시원도
진정 ‘안전한 집’으로 거듭났으면

■ 재난 이후, 집은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지금의 감염병 확산이 사그라든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집 문제로 고통받을 것이다. ‘집 문제’를 마스크 대란과 비슷한 관점으로 바라보면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집 문제는 재난에 가깝다. 그동안 우리가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은 누군가의 고통을 그 사람의 능력 부족이나 불운한 운명 탓으로만 쉽게 생각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집은 생물학적, 사회학적 심지어는 유전학적으로도 인간에게 필수적이다. 이러한 필수재인 집이 우리 사회에 적절히 배분되어 있는지,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집을 누군가 폭리를 취하기 위해 독점하고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확인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내가 보다 안전하고 온전하게 ‘집의 느낌’을 누릴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에서 집을 바라보는 방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팬데믹 상황에서 벌써 재난의 교훈과 이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 재난을 이겨낼 것이고, 어쩌면 함께 겪은 이 재난의 경험이 우리 사회를 바꿔 놓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2018년 일본 디자인계의 거장 하라 겐야를 인터뷰한 한 매체의 기사에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발하면서 집의 개념이 바뀌었다”며 이제 집을 “자산이 아니라, 살기 위한 곳”으로 생각하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전환되었다고 말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위기를 무사히 끝냈을 때, 우리 사회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필자 이인규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5)재난시대 ‘빈익빈 부익부’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에서의 좋았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을 공동기획했다.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집에 대한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냈다는 것에 작은 의미를 느끼며, 이제는 비슷하게 ‘작은 균열’을 내는 이들을 찾아가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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