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안 남는다는 카드 리볼빙, 알고보면…

2020.08.23 23:01
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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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용카드 내역을 확인한 이모씨는 깜짝 놀랐다. 한 번도 카드 대금을 연체한 적이 없는데, 내역서에 이월잔액과 그에 따른 이자 및 수수료가 쓰여 있었다. 이자율은 17.7%. 카드 대금이 빠져나가는 통장을 확인해보니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통장에는 예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 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씨가 납부해야 할 카드 대금보다 적은 금액이 결제돼서다.

카드사에 연락해보니 ‘리볼빙’ 서비스에 가입돼 있어 매달 50%만 출금되고 나머지 50%는 자동으로 이월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리볼빙은 카드 및 현금서비스 대금을 전액 납부할 형편이 어려울 경우 일부만 먼저 결제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리볼빙 결제비율이 50%라면 절반만 이달에 결제되고 나머지는 수수료와 함께 다음 달에 결제된다.

리볼빙 서비스 가입 사실도 몰라
하지만 이씨는 자신이 리볼빙 서비스에 가입된 사실조차 몰랐다. 그는 리볼빙이라는 단어도 카드사 상담사를 통해 처음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몇 달 동안 17.7%라는 높은 이자율의 수수료를 신용카드 회사에 납부한 것이다. 이씨는 카드사에 리볼빙 서비스 가입 당시 이뤄진 통화내용 녹취파일을 요청한 상황이다.

이런 ‘불완전 판매’는 이씨만 겪는 일이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등록된 사례를 보면 A씨는 “우수고객 대상으로 행사를 하고 있는데 서비스에 가입하면 5000원 캐시백을 해준다”는 말에 리볼빙 서비스에 가입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야 A씨는 자신의 리볼빙 결제비율이 10%로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매달 10%만 결제되고 90%는 자동으로 이월돼 높은 이율의 수수료가 부과된 것이다.

A씨는 신용카드사에 수수료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카드사는 녹취파일을 제시하며 A씨가 가입에 동의했다는 입장을 펼쳤다. 하지만 소비자원은 녹취파일을 확인한 결과 카드사가 캐시백 혜택만 강조할 뿐 통장에 잔액이 있더라도 90% 금액은 저절로 이월돼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점, 원치 않을 경우 결제비율 변경이 가능하다는 안내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불완전 판매’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리볼빙에 대해 ‘자금사정에 맞게’ ‘스마트하게 결제’하라고 홍보한다. 리볼빙 수수료 역시 5%부터 시작한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실제 신용 1등급도 5%대 이자는 적용받기 어렵다. 리볼빙 이자율은 보통 15~20%대로 시중은행 신용대출은 물론 제2금융권 신용대출 이자율보다 높다.

또 신용카드사들은 최소 10~30%만 납부하면 연체 기록이 쌓이지 않는다고 홍보하지만 신용에 아예 영향을 주지 않는 건 아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리볼빙 가입 자체(결제비율 100%)는 괜찮으나 실제로 금액을 이월하기 시작하면 신용도에 영향을 미친다”며 “금액 이월은 현금유동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한도 하향이 일어날 수 있고 다른 대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체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것과 신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도 “이자율이 높기 때문에 한번 이용하기 시작하면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달 카드대금은 이자까지 포함해서 더 높아지니까 악순환으로 들어서는 것”이라며 “지금의 홍보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연체 안 남는다는 카드 리볼빙, 알고보면…

리볼빙, 카드사에 좋은 수익원
카드사가 이렇게 리볼빙 서비스를 홍보하는 이유는 카드사에는 리볼빙이 좋은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가 낮아지면서 카드사들이 리볼빙 같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카드 설계사는 “리볼빙 서비스에 가입시켜야 실적이 좋아진다. 리볼빙에 가입하면 연회비를 대신 내주거나 상품권을 준다”고 말했다.

실제 여신금융협회에서 각 카드사의 올해 2분기 수수료 등 수입비율을 보면 리볼빙 결제성 수수료는 롯데카드 18.52%, 신한카드 17.82%, 삼성카드 14.77%, 우리카드 16.59%, 하나카드 17.06%, 국민카드 18.57%, 현대카드 20.12%에 이른다. 리볼빙은 결제성(카드 대금)과 대출성(현금서비스 대금)으로 나뉘는데 대출성 리볼빙 수수료는 이보다 더 높다.

문제는 금융상품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나 신용등급이 낮아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이런 홍보를 보고 리볼빙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전지예 사무국장은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고 나눠서 낼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신용카드를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거나 경제여력이 안 좋은 사람들은 혹할 수 있는데 불완전 판매나 이자율 등을 봤을 때 리볼빙은 좋은 금융서비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20대의 리볼빙 비율이 급증하기도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4대 신용카드사(신한·삼성·현대·국민카드)의 리볼빙 현황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20대의 리볼빙 잔액 증가폭은 87%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리볼빙 잔액 규모 역시 지난해 8월부터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잔액 규모를 넘어섰다.

이에 대해 장혜영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을 통해 리볼빙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다”며 “수수료를 낮추는 노력을 하는 동시에 리볼빙 사용 시 유의할 점 등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지예 사무국장도 “리볼빙 서비스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갚을 능력이 있는 소비자로 대상을 한정한다거나 이자율을 조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이전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불완전 판매에 대해서도 금감원에서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드사 관계자는 “금감원 시정 지시 이후, 불완전 판매는 많이 줄었다. 리볼빙 사용 자체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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