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강남엔 택배원, 영등포엔 외국인…'서울 고시원 지도'

2020.10.07 06:00 입력 2020.10.07 08:18 수정

①살다, 누가·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고시원에서 만난 삶

빠듯한 삶의 종착지 苦시원
낡고 비어가는 공간 古시원
이곳에도 빈부 격차 高시원


2020년 서울, 사람은 많고 집은 모자란다. 벌써 찬바람이 분다. 집은커녕 원룸 한 칸도 얻지 못하는 이들은 겨울이 오기 전 값싼 고시원 방을 찾을 것이다.

경향신문은 서울에서 고시원이 밀집한 노원·중랑, 종로·서울역, 신촌, 이대, 영등포, 노량진, 관악, 강남 등 8개 지역을 찾았다.

이 지역의 15개 고시원을 방문해 운영자와 거주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시원은 ‘리빙텔’ ‘하우스’ 등 다양한 이름을 달고 운영 중이었다. 대학가와 노량진 등을 제외하면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없다. 고시원은 도시 노동자 등 저소득층이 몸을 누일 마지막 ‘정착지’였다.

서울시가 연구용역한 ‘서울시 고시원 보고서-거처 상태 및 거주 가구실태조사’를 보면 서울에는 총 5807개 고시원이 영업 중이다. 이 중 전용면적 7㎡(약 1~2평) 미만인 방의 비율은 57.7%다. 공용 주방과 화장실이 기본인 이곳에서는 평균 9명이 변기 하나를 사용한다.

문을 연 고시원의 호실 수를 계산해 추정하면 서울에서만 약 15만5379명이 고시원에 산다.

1980년대 도시 노동자, 대학생 인구의 증가와 맞물려 고시원은 호황을 맞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이 늘면서 저소득 노동자들은 한 푼이라도 아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연초부터 경제 한파가 몰아쳤다. 또 다시 입주자들이 늘어야 할 고시원이지만 이번엔 공실이 늘고 있다. 올 2월 이후, 서울지역 고시원 운영자들이 느끼는 체감 공실률은 50% 이상이다.

고시원 운영자들에게 ‘방을 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지’ 물었다. 10년 경력의 한 운영자는 “들어올 때도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사람들이다. 월세를 못 낼 때면 도망가듯 나간다”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영자는 “ ‘타다’ 기사를 하던 20대 친구가 있었는데, 타다가 없어지고 코로나19로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워 얼마 전 고향으로 간다며 떠났다”고 말했다.

누우면 발끝이 벽에 닿아도 밥과 김치, 라면이 제공되고 화장지 같은 생필품 값도 아낄 수 있다. 부족하나마 냉난방도 되는 이곳을 누군가는 ‘천국’이라 부른다. 화재, 고독사 같은 어둠도 늘 따라다닌다. 대도시에서 고시원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세 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2020 고시원 탐사기][단독]①강남엔 택배원, 영등포엔 외국인…'서울 고시원 지도' 이미지 크게 보기

“월 9만원. 식사 제공.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중략) 그것은, 단 한 푼의 보증금도 없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소설가 박민규가 단편 ‘갑을 고시원 체류기’에서 묘사한 1991년 한 고시원의 모습이다. 2020년 가을, 갈 곳 없는 이들에게 고시원은 여전히 ‘빛’이다. 지난 30년간 값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10만원대 중반의 값싼 고시원 방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 “코로나19에 공실률 80%”

서울 동북지역의 노원구와 중랑구 일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광운대역 1번 출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고시텔’. 온라인 고시원 검색 사이트 ‘고시원넷’ 기준 노원구에서 두 번째로 싼 고시원이다. 사이트에 안내된 월세는 방에 따라 15만원에서 28만원 사이다. 고시원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상가건물 4층에 있었다. 안내 데스크 왼쪽 벽에 걸린 게시판에는 ‘휴지는 개인 2롤씩 매달 공급받으세요’ ‘이불 필요한 분들 말씀하세요’ 등의 공지사항이 적혀 있었다.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던 지난 4일 찾은 이곳에는 명절 분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고시원 운영 경력이 10년을 넘었다는 주인 A씨는 “다들 고향에 안 가요. (연휴에도) 다 들어앉아 있어요. 가족들이랑 안 보는 사람들도 있고, 주머니가 있어야 가족들도 보는 거지…. 이곳에는 노숙인으로 가기 일보 직전인 사람들이 들어와. 월세가 14만~15만원인데 방값 못 내는 사람들이 줄줄이 사탕이야. 작년부터 경기 안 좋고 올해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아주 힘들어졌어”라고 말했다.

주변 고시원 두 곳도 사정이 비슷했다. ‘○○고시텔’ 운영자는 “방이 모두 90개인데 지금 20개도 안 찼다”며 “주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일용직들이 많이 산다. 원래도 사정이 안 좋았지만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심해졌다”고 말했다. ‘○○고시원’ 역시 올해 2월부터 입주자들이 빠지기 시작했고, “월세가 서너 달씩 밀린 이들이 많다”고 했다.

최근엔 방에 화장실이나 샤워룸이 붙어 있는 고시원 방들도 많아졌지만, 이 지역에는 그저 방뿐인 속칭 ‘미니룸’이 다수를 이룬다. 미니룸에는 텔레비전, 작은 침대, 수납장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방뿐인 만큼 값이 싸다. 주로 남성 저소득 노동자들이 거주한다.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50~60대 이상 고령자가 많다. 노인들 상당수는 일을 하지 않고 정부에서 나오는 수급비로 고시원 월세를 감당하기도 한다.

도심인 종로 쪽으로 넘어가면 연령대가 좀 더 낮아진다. 이곳에는 20대 후반에서 30~40대 입주자도 흔하다. 종로의 일부 고시원은 입주자 관리를 위해 일부러 나이 많은 사람은 받지 않기도 한다.

학원가 근처에 위치한 ‘○○○원룸텔’ 주인 B씨는 “난 일반인은 안 받아. 일반인 받으면 집집마다 할아버지들 엄청 많아”라고 했다. 고시원 주인 입장에서 노인 입주자는 관리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곳 역시 코로나 이후 각종 학원들이 휴업해 공실이 발생했다. B씨는 최근 “어떡하냐”는 말을 달고 산다. B씨와 얘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방을 빼려는 남성 입주자가 인사하러 왔다. B씨는 이 남성에게 “큰일났네요. 그동안 고마웠어요”라고 말했다. 남성이 떠난 뒤 B씨는 “쟤도 빼고 저 여자애도 빼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요. 방값도 싸게 주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서울 하늘 아래 몇 천원으로
하루를 누일 수 있는 곳”
더 싼 곳으로 혹은 친구네로
잘돼서 방 빼는 경우 별로 없어

■ “방 뺀 학생들은 친구 집으로”

대학이 몰려 있는 이대역과 신촌역 일대. 이 지역 고시원에는 주로 20대 전후의 학생들과 한국어를 배우러 온 외국인 유학생들이 머문다. 부모에게 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이 많아 가격은 30만~40만원대로 노원·중랑 쪽보다 비싸다. 시설도 더 좋은 편이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의 특성을 반영해 방에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딸린 속칭 ‘샤워룸’도 많다. 이대 쪽으로 가면 55만원 이상 ‘고급형’ 고시원도 있다.

이대역 근처에서 방 30개로 구성된 고시원을 운영하는 C씨는 “가격은 45만~56만원 선이다. 유학생들을 주로 받는데, 중국인 유학생들이 특히 돈이 많아서 비싼 방도 잘 나간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 이후 유학생들의 발길이 끊어지며 공실이 늘었다. C씨는 “이대 일대는 난리”라고 말했다.

신촌역 8번 출구 뒷길. 젊은이들이 바삐 오가는 이곳에도 고시원이 많다. 한 골목에서 고개를 들면 각기 다른 이름을 한 고시원 서너 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문 연 지 2년6개월이 지났다는 ‘○○○○리빙텔’. 외국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고시원을 오갔다. 입구에는 영어로 된 안내판에 주의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주인 D씨는 “고시원 업주 대부분이 임차인이다. 건물 빌려서 장사하는 건데 코로나19 이후 학생들도 사정이 안 좋으니 방을 빼고, 우리도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D씨는 서울에 돈 벌러 왔다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학생을 떠올렸다. 그는 돈이 없어 방을 빼는 친구들이 “어디어디에서 잠시 얹혀 살겠다”는 얘기를 남기고 나간다고 말했다. 고시원에서 방을 비운 이들은 좀 더 저렴한 고시원을 찾아 뱅뱅 돈다. 이 고시원, 저 고시원 전전하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만나는 입주자들도 있다. 오랫동안 고시원에서 살았던 한 남성은 “일용직 해서 돈 벌면 그걸로 고시원을 또 들어갔다. 돈 벌면 들어가고 없으면 나오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2020 고시원 탐사기][단독]①강남엔 택배원, 영등포엔 외국인…'서울 고시원 지도'

■ 고시생 떠난 자리에 노동자·외국인

고시생 떠난 자리 노동자들이
불황 한파에 공실률 부쩍 늘어
대학 근처는 외국인 유학생들
다른 곳은 일용직 노동자 다수

노량진역 학원가에서 골목으로 약 10분 걸으면 ‘○○하우스고시원’이 나온다. 역에서 이곳으로 향하는 10여분간 눈에 띈 고시원만 해도 30개가 넘는다. 리빙텔, 하우스, 원룸텔…,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1층에 카페와 스터디룸을 운영하는 이 고시원은 노량진에서 시설 면에서 ‘중급’에 속한다. 1991년 처음 고시원 사업을 시작했다는 주인 E씨는 지난 30년 동안 방이 없는 독서실, 1m짜리 합판을 대 만든 칸막이룸 고시원을 모두 겪었다. 지금은 고시원의 ‘끝물’ 혹은 ‘황혼기’라고 했다.

2000년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의 증가와 함께 호황을 맞았던 노량진 고시원은 약 3년 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화상강의 등장 등으로 학생이 크게 줄었고 올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고시원이 난립한 것도 이유다. 최근엔 매물로 나오는 고시원도 많다. 노량진에는 타 지역에 비해 고시원 용도로 건물을 지어 운영하는 이들이 많다. E씨 역시 건물주이면서 고시원 운영자다. 그래도 걱정이 많다. E씨는 “최근 바로 뒤 고시원이 경영 악화로 건물을 내놨다. 25억원에 팔았으니, 시세보다 낮게 팔았다”며 “나도 상황이 어렵지만, 쉬는 것보다는 낫겠거니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지나오며 고시원에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목격한 E씨는 노량진 고시원의 미래를 어둡게만 보지는 않는다. “쉬운 말로 월세 20만~30만원, 하루 1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곳이 고시원”이라며 “(시험 준비하는) 학생들이 줄어든다면 직장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받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최근 노량진에도 중국인들이 주로 사는 고시원이 하나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격이 더 내려가면서 시설도 낙후된 그런 곳으로 정착하겠지만, 고시원이 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30만~35만원대 방 26개를 운영하는 고시원 업주 F씨 역시 “서울의 이 많은 사람들 주거를 누가 다 책임지겠느냐”며 “상황이 어렵지만, 고시원이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외국인들이 주된 거주자로 자리 잡은 곳도 있다. 영등포구 대림동과 신길동 일대다. 대림동 차이나타운 내의 사거리에 위치한 ‘○○리빙텔’. 고시원이 있는 건물 아래층에는 중국 식품점과 환전소, 작업복을 판매하는 매장 등이 들어서 있다. 월세 30만~37만원 사이의 중저가 고시원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해서인지 들고남이 잦다. 주인 G씨는 “조금 머물다가 ‘저 중국 가요’ 하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일거리에 따라 사람이 자주 바뀐다. ‘철새’라고 보면 된다”며 “고시원이라는 게 짐이 한 트렁크면 되니까 쉽게 나간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자의 경우 한국 정부에서 나오는 수급비 같은 것도 없기 때문에 일거리가 없으면 돈이 쉽게 막히기도 한다.

고독사나 거주자의 외로움에 대한 걱정은 덜한 편이다. 교포사회가 잘 형성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돈을 벌러 한국에 왔다는 목적 의식이 강한 입주자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G씨는 “내가 보기에 교포들은 자살하고 이런 사람 없다. 한국 사람들이 하지. 여기는 교포들이라 돈을 벌러 왔다는 게 명확해서 자살하고 그러지 않는다”고 말했다.

■ 라이더부터 고소득 직장인까지 생활

대기업 등 직장이 몰려 있고, 판교 등 신기술 산업단지와 근접해 있는 강남에는 고소득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70만원 이상 고가 고시원도 종종 눈에 띈다. 주로 압구정이나 대치동 근처에 비싼 고시원이 몰려 있다.

역삼역 근처 골목에 위치한 ‘○○리빙텔’. 월세는 29만원에서 40만원으로 강남이라는 위치를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다. 주인 H씨는 새벽 5시부터 고시원 청소에 열을 올렸다. 이곳엔 유흥업소 종사자, 배달 라이더나 택배노동자들이 주로 입주해 있다. 주로 도심에서 일해야 하고 밤이나 새벽시간대에 혹은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면 잠잘 시간도 부족한 이들이다. 방은 싼 것이 선호된다. 도시 노동자가 많다 보니 입주자 연령은 대개 30~40대다. 현 입주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53세다.

시설은 약간 낙후한 편이다. 입구에는 조명이 없어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고시원 입구를 찾았다. 방이 있는 내부 복도는 사람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다. 방은 총 25개, 공실은 12개 정도다. 이곳도 코로나19 이후 공실이 늘었다고 했다. H씨는 “대개 5~6개 정도 공실이 나오는데, 이렇게까지 비었던 적은 내가 운영한 3년 내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방을 비운 이들에 대해 그는 “서울을 떠나지는 않는 것 같고, 조금 더 싼 방을 찾아 나가는 것 같다. 월세 한 달치 낼 돈만 갖고 있어도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고시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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