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2021.02.21 14:30 입력 2021.02.21 15:54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낙태죄에 관한 정의당의 입장은 짧은 시간에 정반대로 바뀌었다.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제269조와 제270조로 이뤄져 있는데, 201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조항은 두 가지다. 낙태한 임부를 처벌하는 제269조 제1항과 임부의 촉탁 또는 승낙을 얻어 낙태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제270조 제1항이다. 이에 2019년 정의당이 낙태죄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당 대표이던 이정미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헌재가 지적한 두 조항은 폐지하지만, 나머지 부동의 낙태죄 처벌은 강화하겠다고 했다. 부동의 낙태죄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낙태하게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제270조 제2항 등에 있다. 부동의 낙태로 부녀가 상해에 이르면 징역 5년 이하, 숨지면 징역 10년 이하에 처한다. 정의당은 이를 7년 이하와 3년 이상으로 올리자고 했다.

[이범준의 저스티스] 정의당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20년 정의당은 이은주 의원을 대표로 세워 부동의 낙태죄 폐지안을 발의했다. 형법 제27장 전체를 없애겠다고 했다. 제27장을 없애자는 의견은 새로운 게 아니다. 2010년 낙태죄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시절에도 있었다. 부동의 낙태죄가 없어도 상해죄로 처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2005도3832 등)에 따르면 상해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제27장을 없애려면 부동의 낙태죄를 제25장 ‘상해와 폭행의 죄’로 옮겨야 한다고들 했다. 이런 논의가 있었지만 정의당은 2019년 부동의 낙태죄를 살리고 이에 더해 법정형을 높이기로 했다. 그러다 지난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부동의 낙태죄를 삭제하겠다고 당론을 바꿨다. 20대와 21대에 모두 당선한 유일한 정의당 소속인 심상정 의원은 두 법안에 모두 사인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성추행 가해자인 김종철 대표가 고발되자 “제3자의 고발을 통해 다시금 피해를 지난하게 상기하고 설명하며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2차 가해를 감당해야 합니까”라고 했다. 그의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지지를 밝혔다. 앞으로 장혜영 의원이 원하는 대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주요한 이유는 국회의원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있어서다. 하지만 비슷한 다른 사례에서는 그렇게 처리되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법 어느 재판장은 “일반적으로 친고죄가 아닌 중대 범죄에 제3자 고발이 있다면 수사기관은 반드시 수사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될 수 있다”고 했다. 단체 내부의 조사 기록은 압수 대상이라고 했다. 전직 대법관도 비슷하게 설명했다. 보편적 규범인 법률은 그렇게 작동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장혜영 의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중략)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가고, 마무리 짓는 방식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한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수긍하고 연대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이 문장을 형사사법 과정에 관여하는 대부분 법률가가 친고죄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 당사자이자 입법기관인 정의당 의원들은 형법의 미비나 흠결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성범죄가 친고죄에서 비친고죄로 개정된 취지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권리를 확장하자는 것이지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선언해서는, 제3자 고발로 시작되는 ‘부당한’ 형사절차를 막을 수가 없다. 친고죄로 되돌리기 어렵다면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류호정 의원은 비서 면직 문제로 정의당에서 경고를 받았다. 이에 자신의 비서가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어서 자른 게 아니며 오히려 배려한 것이라 거듭 해명했다. “국회 보좌진은 근로기준법, 국가공무원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중략) 노동 존중 사회를 지향하는 정의당의 강령에 비추어 면직 과정에 부당함이 있었는지 당의 징계 기관인 당기위원회의 판단을 받으려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류호정 의원의 비서는 정의당 강령에 따라 구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법기관인 정의당은 국회 보좌진을 어떻게 법으로 보호할지를 말했어야 한다. 그의 비서가 맞닥뜨린 면직 문제는 당원이어서가 아니라 보좌직원이라 생긴 것이다. 국회에는 당원이 아닌 보좌직원도 많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은 보좌직원 면직예고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지난해 21대 국회가 시작되자 발의했다. 사인한 의원 34명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이 가장 많고 민주당, 국민의당, 시대전환 의원이 있다. “보좌직원에 대한 직권면직 절차는 면직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려 보좌직원의 고용안정성을 낮추고, 재취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조차 확보할 수 없어 유능한 인재의 유입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제안이유를 밝혔다. 이런 내용을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제일 앞에 넣으면서 아예 법이름까지 바꿔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로 했다. 정의당이 노동자를 위한 좋은 강령을 자랑하고 있을 때, 정통 보수야당이라는 국민의힘은 이렇게 법을 바꾸고 있다. 지금 정의당은 입법기관으로서 정체성과 힘을 잃어가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