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뒷돈 받고 고 염호석씨 시신 탈취’ 정보경찰들 2심도 유죄

2021.05.27 19:43 입력 2021.05.27 21:50 수정 유설희 기자

‘노조가 승리하는 날 나를 뿌려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염호석씨의 영결식이 2014년6월30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려 참석한 동료들이 염씨를 추모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고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에서 삼성을 도운 대가로 현금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찰들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최수환)는 27일 부정처사후 수뢰 등 혐의로 기소된 전직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 하모씨(59)에게 1심과 같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전직 양산서 정보계장 김모씨(63)에게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각각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하고, 추징금 500만원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정보경찰관으로서 공정·중립을 지키고 부당하게 타인의 민사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될 직무상 의무가 있음에도 삼성전자서비스 측이 염호석씨의 유족을 회유해 장례 절차를 가족장으로 진행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각종 조력행위를 했다”며 “삼성전자서비스 측의 편향된 이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직무권한을 행사했고, 삼성전자서비스 측으로부터 1000만원에 이르는 뇌물을 수수하기까지 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1심의 형은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고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은 삼성의 노조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한 노조원의 장례 절차에 정보경찰들이 삼성의 뒷돈을 받고 개입한 사건이다. 삼성이 노조가 생긴 협력사를 폐업시키는 등 노조 탄압의 강도를 높이자 삼성전자서비스 양산 협력사 노조 분회장 염호석씨(당시 34세)는 2014년 5월15일 “노조가 승리하는 날 나를 화장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염씨 죽음을 계기로 노조가 강경투쟁을 벌일 것을 우려한 삼성은 장례를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바꾸려고 염씨의 부친에게 합의금 6억원을 주고, 노조원들 몰래 시신을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 화장했다.

서울의 장례식장에서 부산으로 시신이 ‘탈취’됐던 현장에 240여명의 경찰이 투입돼 ‘윗선’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삼성에서 뒷돈을 받은 하씨와 김씨만 재판에 넘겨졌다. 하씨와 김씨는 염씨 부친을 회유할 수 있는 브로커 이모씨를 삼성에 소개하고, 장례식장에 경찰력이 투입될 수 있도록 이씨에게 허위 112 신고를 시키는 등 삼성에 적극적으로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1000만원을 받은 혐의(부정처사후수뢰) 등을 받는다. 양산서 정보과 경찰관들은 이 돈으로 회식을 하고, 양복을 맞춰 입었다.

1심 재판부는 이러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고 하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김씨에게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하씨가 김씨 등 부하직원들을 염씨 장례 절차에 부당하게 개입시켜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나머지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1심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밝히면서 “피고인들이 독자적으로 부정행위의 방향을 정한 게 아니라 그 윗선까지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보임에도 윗선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며 “경찰조직은 상명하복이 강해 피고인들로서는 상부 지시를 거스르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사정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씨와 김씨, 검사 모두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들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며 기각했다.

원문기사 보기
상단으로 이동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