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그 후, 손배폭탄이 남았다

안전 위한 권리인데···‘작업중지권’도 위협하는 손배 소송

2022.09.01 17:42

④이런 나라 없다-왜 노란봉투법인가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에 마련한 시민 분향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에 마련한 시민 분향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6월19일 아침 5시40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김용성 한국타이어 지회장은 트럭 타이어 형태를 만드는 기계 설비 가동을 정지시켰다. 기계가 평소보다 빠르게 회전하는 데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서면 저절로 멈추는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2년 전 같은 종류의 기계에서 센서 고장으로 한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10일 김 지회장과 노조 간부 2명을 상대로 약 9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기계에 큰 문제가 없는데 무리하게 작업을 중지시켜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였다. 앞서 노동청은 작업환경 점검 후 센서 변경 등 시정을 지시한 터였다. 김 지회장은 “안전을 위해 법에 명시된 작업중지권을 요구했는데, 1년 반 연봉을 뛰어넘는 금액을 배상하라고 했다”며 “어떤 노동자가 이런 큰 금액을 감내하면서 안전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비단 파업 뿐 아니라 노동자의 안전 문제와 직결된 작업중지권 행사에 대해서도 기업이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노동자가 생명과 안전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작업중지권’이다. 산안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때는 작업을 중지해야 하며, 그와 관련해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가 지난7월 1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타이어지회 제공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가 지난7월 1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타이어지회 제공

현실은 다르다. 노동자가 ‘급박한 위험’이라고 판단해 작업중지를 했더라도, 회사는 급박한 위험이라고 판단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나아가 징계를 하고 손배 소송을 제기한다. 법원에선 작업중지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 사측 주장을 받아들이곤 한다. 현대자동차는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법 조항이 시행된 2015년 이후 작업중지를 한 노조를 상대로 5건 이상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그 중 3건은 1심에서 노동자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2015년 현대차 울산공장의 경우 용접 부실로 엔진을 고정시키는 장비가 작업 중인 노동자를 향해 기울어지는 사고가 발생해 생산라인이 정지됐다. 노조는 사람이 다칠 수 있었던 ‘안전사고’에 해당한다며 적절한 조치 후 재가동을 하라고 요구했다. 사측은 다친 사람이 없는 ‘장비고장사고’여서 즉시 라인을 재가동해야 하는데 노조가 방해했다며 2억원의 손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이 없다”며 노조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사내하청 노동자 등 상대적으로 위험한 일을 맡기 쉬운 비정규직 노동자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가 더 어렵다. 작업중지권 행사로 계약해지 등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정규직보다 크기 때문이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1일 “위험한 상황에 안전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데도, 손배 소송이 뒤따르면 현장의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데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노동자가 악의적 의도로 작업중지를 한 게 아니라면 사측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