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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이후에도 여전했던 솜방망이···작년 디지털성범죄 1800건 넘게 ‘약식기소’

2022.09.22 16:46 입력 2022.09.22 19:28 수정

진보당 당원들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최근 불거진 ‘제2의 N번방’ 사태와 관련해 성착취물 제작·유통·소지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진보당 당원들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최근 불거진 ‘제2의 N번방’ 사태와 관련해 성착취물 제작·유통·소지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n번방 사건’ 이후 법무부가 디지털성범죄 사건에 대한 약식기소를 줄여야 한다는 지침을 검찰에 하달했지만 사건처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약식기소는 검찰이 피고인의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보고, 법원에 벌금형 수준의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법원은 정식 재판 절차 대신 서면으로 심리를 진행한다.

전·현직 법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법무부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는 디지털성범죄 사건의 구약식(약식명령 청구) 처분 등 기계적인 솜방망이 처벌을 지양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당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유통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을 비롯해 유사 범행을 저지른 성착취범들이 차례로 검거된 이후였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회의에서 법무부 양성평등정책특별자문관과 디지털성범죄 대응 태스크포스(TF) 팀장이던 서지현 전 검사가 이 같은 문제 의식을 제기했고 참석자들도 공감했다고 전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최근 통화에서 “서 검사의 건의사항을 기억하고 있다”며 “구약식 처분을 줄이자는 것만이 아니라 디지털성범죄의 구형량이 너무 약해 이걸 높이는 등 종합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고위관계자도 “2020년 무렵 구약식 처분율 감소를 비롯해 디지털성범죄 사건 처리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간부회의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다”고 밝혔다.

법무부 TF의 활동 보고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보고서에는 “디지털 성범죄 가운데 강간, 추행 등 전통적인 성폭력 범죄와 결부되지 않거나 재범 이상 전력이 없는 단순 소비형 범행, 일회성 유포형 범행이 빈번하다”며 “이들 가해자에 대해 약식명령이 청구되는 경우 피해자들이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이후 법무부는 디지털성범죄 사건에 대한 약식기소를 줄이라는 지침을 검찰에 내려보냈다. 하지만 검찰의 디지털성범죄 사건 처분 현황을 보면 지침은 사건 처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최근 5년간 디지털성범죄 사범 접수 및 처분 현황’에 따르면 검찰의 구약식 처분 비율은 2019년 11.6%(1672건), 2020년 9.8%(1550건), 2021년 10.7%(1875건)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오히려 n번방 사건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뤄지기 시작한 2020년보다 이듬해인 2021년에 구약식 건수가 325건 증가했다.

법무부는 2020년 ‘솜방망이 처벌 지양’외에도 부처 내 여성청소년국 신설, 판사 대상 디지털성범죄 판결 세미나 등의 디지털성범죄 대응 정책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추 전 장관은 “여성청소년국 신설은 코로나19, 론스타 이슈 등 현안에 밀렸다”며 “(상대적으로) 주요 의제로 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22일 “디지털성범죄 사건 접수가 늘어난 만큼 정식 공판 회부가 증가했을 뿐, 전반적인 검찰의 처분 방향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면서 “통계만 봐도 디지털성범죄 사범 수사와 처분에 유의미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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