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지자체 무임승차 비용 갈등 언제까지

2023.02.19 08:30

국비 부담 담은 도시철도법 개정안 국회 계류 중…전문가들 “보편적 복지는 중앙정부가 지원해야”

2021년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무임수송으로 인한 재정 손실로 국비보전이 필요하다는 대시민 홍보행사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무임수송으로 인한 재정 손실로 국비보전이 필요하다는 대시민 홍보행사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주간경향] 무임승차제도에 따른 운임손실을 둘러싼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공방은 수년 동안 되풀이되는 논쟁이다. 무임승차제도는 1984년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시작해 이후 장애인, 유공자 등으로 확대됐다. 2019년 기준 무임승차자 대상 비율은 노인이 82%, 장애인이 17% 국가유공자가 1%다.

노인복지정책 중의 하나인 노인을 위한 할인 및 무임수송 교통제도는 노인복지법 제26조에 의해 시행 중이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65세 이상 자에 대하여 공공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서울시를 비롯해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6개 지자체는 무임승차 운영에 따른 손실을 국가가 지원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6개 지자체는 무임승차 운영 손실을 국비로 보전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철도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2017년 ‘전국 도시철도 운영 지자체장 간에 공동건의문’을, 2018년에는 ‘전국 운영기관의 공동건의문’을 채택했다. 2021년에도 도시철도 법정 무임승차 손실에 대한 국비 보전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 민홍철·조오섭 민주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의 정부 부담을 골자로 한다. 이은주 의원의 개정안은 2020년 국토위 법안심사소위 심사를 마쳤지만, 기재부의 반대로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는 무임승차 혜택이 해당지역 주민에 한정되며 이미 철도 건설비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운영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노인 기준 조정 및 일부 할인 등을 우선 검토한 이후에 국고 지원 여부를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등 지자체는 무임승차는 거주지와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하는 공익서비스이며 무임 손실 비용은 건설비와 별개 사항이므로 연령 상향은 지자체 권한이 아닌 정부 결정사항이라고 맞서고 있다.

복지제도 재원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은 과거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의 누리과정 예산 논란이다. 제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0~5세 보육 국가 완전 책임제’ 공약을 내세우며 누리과정 예산 100%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선 후 보육예산을 지자체와 교육청의 몫으로 넘겼다. 2015년 10월 박근혜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청이 의무 지출하도록 하고 2016년 누리과정 국고 예산안을 0원으로 책정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도 재정부담 능력이 없어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갈등은 극에 치달았다.

정부 수조원 복지공약…재원조달 언급 없어

윤석열 정부는 부모급여 100만원, 기초연금 40만원 인상, 생계급여 지급기준 확대, 상병수당 도입 등 수조원에 달하는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재원조달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향후 재원 부담을 지자체에 전가하면서 박근혜 정부 때처럼 중앙정부와 기재부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인구구조 변화와 기형적인 재정 구조도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령화·저출산으로 인구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향후 복지수요는 급증할 전망이다. 거기에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재정 관계가 불균형하다. 중앙과 지방의 세입은 80:20인데 세출은 40:60으로 지자체는 태생적으로 재정 여력이 열악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방소비세 14.3%p 인상, 지방소멸대응기금 확충 등을 통해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2023년 기준 72.6 대 27.4로 개선했지만, 근본적인 불균형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실장은 “앞으로 복지정책의 재원조달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갈등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고보조 사업의 경우 분란이 점점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가 수행해야 할 사무를 지자체에 위임하면서 국가는 지자체에 국가보조금을 준다. 국가가 전체 사업비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지자체가 일부 비용을 부담하면서 사업이 이루어진다. 최 연구위원은 “지자체가 자체 재정으로 추진하고 있던 사업을 중앙정부가 뒤늦게 전국으로 확산시키거나 중앙정부가 기획해서 하는 사업도 있다. 이런 사업도 국가가 절반도 부담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라며 “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역일수록 취약계층도 많은데 국고보조사업의 복지지출이 늘어나면서 여건이 더 어려워지게 된다. 지역 간에도 복지 수요에 대응하는 복지정책의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최저 생활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성격의 복지 사업만이라도 중앙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기초생활보장, 기초연금, 무상보육, 아동수당 등이 해당한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특색에 맞는 지역밀착형 복지제도는 중앙정부가 보편적으로 잘하기 어려우니 지자체에 맡기고 기초 복지이면서 보편적인 정책은 정부가 부담하는 식으로 정리를 해야 한다”라며 “지자체가 기초연금 등 국고보조 사업에 부담을 지다 보니 지역복지를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230여개 지자체 예산서를 매년 분석하지만 1억 이상 자체 사업을 하는 지자체가 10개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현수 실장은 “국가가 획일적으로 시행하면서 지자체에 재정부담이 큰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중앙정부의 부담을 전제로 가야 한다. 그래야 지방도 재정 여력이 생기고 지역의 인구구조 변화나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들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라며 “이런 것들이 선행돼 지역의 재정 여건이 개선되면 그때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지하철 적자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지역에 계신 어르신들의 무상버스 등의 제도도 만들 수 있다. 지방재정의 숨통이 트여야 기재부도 ‘지하철 적자 문제는 지자체가 알아서 해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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