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저임금 업종에 몰려 있는 여성
콜센터 상담사, 학교 초등돌봄전담사·청소노동자
5년치 임금명세서 분석해보니 ‘최저임금 수준’
평가절하된 ‘재생산 노동’, 여성의 지위를 묻는다
경향신문 특별기획팀은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데이터로 뜯어보고자 했다. 4회는 ‘저임금에 머무른 여성노동자’ 실상과 ‘경력단절 이후 저임금이 되는 구조’를 들여다봤다.
일하는 여성들이 있다. 복잡한 건강보험 규정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 가입자들에게 전화 상담을 해주고, 방과 후 초등학생들의 생활과 학습을 지도하고,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청소하는 일이다. 엄연한 직업인데 손에 쥐는 기본급은 100여만원, 월급은 200만원 언저리다. ‘숙련’이 필요한 일들이지만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최저임금에 맞춰진 기본급은 신입이나 10년 이상 된 숙련 노동자나 동일하다. 저임금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여성 고용률을 높이고 성별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AA)를 시행하고 있다. 사업주에게 사업장별 임금격차, 직급별 임금격차를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지만 대상이 상장법인과 공공기관, 지방 공기업,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에 그친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실태를 볼 수 있는 데이터는 부족하다.
경향신문은 여성들이 많이 몰려 있으면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사, 방과후 초등돌봄전담사, 학교 청소노동자들을 만났다.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필수노동자’로 호명됐지만 여전히 저평가된 노동자들 중 대표적인 직군이다. 이들의 5년치(2018~2022년) 임금명세서를 받아 저임금 구조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임금명세서 분석은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 박성우 공인노무사의 도움을 받았다.
숙련 쌓인 12년차와 5년차 기본급이 ‘동일’
29세 이하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에도 못 미쳐
대전은 ‘콜센터의 메카’로 불린다. 땅이 넓고 건물 임대료와 인건비가 저렴하며, 사투리가 강하지 않은 지역 조건이 콜센터 산업을 키울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대전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는 약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중 80~90%가 여성이다.
지난달 2일 기자가 만난 국민건강보험 대전고객센터 콜센터 노동자들은 대전 중구의 한 6층짜리 건물 중 한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별다른 간판도 없어 외부에서 보면 콜센터 사무실인지 알기도 힘들다.
올해 12년차인 이정연씨(40대·가명)와 홍미영씨(30대·가명), 5년차 윤주미씨(20대·가명)는 입사일은 서로 다르지만 기본급이 같다. 기본급(정상근무일 기준)은 2018년 157만3770원, 2019년 174만5150원, 2020년 179만5310원, 2021년 182만2480원, 2022년 191만4500원으로, 매년 최저임금 인상폭만큼 올랐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최저임금에 해당하고, 업체가 변경된 2022년엔 최저임금(191만4440원)보다 60원 많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와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이씨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 할 때 구직광고 절반 이상이 콜센터 업무였다”며 “여성들이 마땅히 갈 만한 일자리가 없다보니 콜센터로 많이 몰리는 것 같다”고 했다. 벌써 10년 넘게 건강보험 정보 전달 업무를 하고 있는데, 소속된 회사가 하청업체이다 보니 2~3년 단위로 계약을 반복해야 한다. 그는 “고객의 폭언을 듣고도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 버티는 것이 쉽지않다”고 했다.
정부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회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될 필요가 있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필수노동자’로 규정했다. 콜센터 상담사는 대표적인 필수노동자로 불렸다. 대면 서비스가 어려워지면서 콜센터 노동자의 업무가 재평가 받은 것이다. 이씨는 “코로나19 당시 질병관리청에 전화가 폭주하면서 건강보험 정보를 전달하던 저희한테도 관련 콜이 넘어왔다. 종이 몇 장 달랑 받고 코로나19 정보를 학습해 설명하는 일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임금 구조는 달라진 것이 없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을까.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29세 이하 비혼 단신근로자의 실태생계비’를 기준으로 살펴봤다. 실태생계비는 생계를 위해 매월 실제 지출한 금액을 의미한다. ‘29세 이하 단신근로자’는 지출이 가장 적은 계층이다.
이 금액을 살펴보니 2018년 203만3411원, 2019년 213만8220원, 2020년 210만4751원, 2021년 202만4106원이었다. 2022년 자료는 없지만 물가상승률(5.1%)을 감안하면 212만5311원 정도로 추산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 달에 212만원 정도는 써야 최소한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태생계비와 콜센터 노동자들이 한 달에 고정적으로 받는 임금(기본급+식대, 근속수당, 능력수당 등의 고정급여)을 비교해 봤다. 고정급여 중 식대는 근속기간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지급된다. 2021년까지 10만원이었다가 2022년부턴 근무일수에 따라 변동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근속수당과 능력수당은 연차와 직책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것도 2021년까지 5년 이상 근무자 2만원, 10년 이상 근무자 3만원이었다가 2022년부터 각각 3만원, 5만원으로 인상됐다. 이씨는 2020년부터 부팀장을 맡아 다른 노동자와 달리 매월 직책에 따른 능력수당 5만원을 받는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기본급에 월 10만~20만원 정도인 고정급여를 합해도 ‘29세 이하 비혼 단신근로자의 실태생계비’에 비해 적게는 1만원, 많게는 30만원 넘게 낮다. 실태생계비 중 가장 낮은 수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콜수’ 인센티브 받아야 200만원 벌어
기본급 자체가 최저임금 수준이라
화장실 못 가며 일해도 생활비 빠듯
콜센터 노동자들은 숙련도와 관계없이 동일한 기본급을 받는다. ‘인센티브(업적수당)’에 따라 급여 총액이 달라진다. 명절수당, 하청업체 변경과 같은 변수 없이 평이하게 근무했던 2019년 4월을 기준으로 3명의 콜센터 노동자 임금명세서를 들여다봤다.
윤씨는 입사 초기였던 1년차 월급을 올리기 위해 ‘콜’을 최대한 받으려 노력했고 인센티브를 많이 받았다. 이때 윤씨의 월급 총액(세전)은 200만7400원으로, 7년차였던 이씨와 홍씨가 각각 받은 198만5870원, 194만5870원보다 오히려 높았다. 이씨와 홍씨는 7년차에 해당하는 근속수당을 받았는데도 1년차인 윤씨보다 월급이 낮았다. 차이는 인센티브였다. 윤씨가 받은 인센티브는 11만8000원으로, 이씨와 홍씨가 받은 6만원, 2만원보다 많았다. 윤씨는 2020년 4월에는 25만원, 두 달 뒤인 6월에는 30만원까지 인센티브를 받았다. 윤씨는 “입사 초기였던 이때는 갈아넣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며 “점심시간 1시간,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3분 이외에 전화만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콜센터 노동자들은 ‘콜수’에 기대야 한다. 전화를 얼마나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점수로 환산된다. 종합 점수 순위에 따라 인센티브가 나뉜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최고등급인 SS등급은 30만원, S등급은 25만원, A등급은 20만원이었다. SS등급은 상담사의 3%만 받을 수 있다. 홍씨는 “1등부터 100등까지 순위를 매긴다면, 80등 안에는 들어야 하위 등급에서 벗어난다. 노력해도 누군가는 결국 하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고 일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인센티브를 많이 받는다고 월급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기본급 자체가 낮아서다. 3명의 노동자가 5년동안 받은 임금 총액(세전)의 최고·최저액 평균은 모두 200만원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기본급을 포함한 고정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90%에 달하는 반면, 변동급여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는 평균 6%에 그친다. 박성우 노무사는 “기본급 자체가 최저임금에 머물러 있는 탓에 아무리 일을 더 해도 임금이 크게 인상되지 않는 전형적인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명세서”라고 말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시장 문제를 연구해 온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시기에 일의 가치는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상담사들의 처우가 열악한 이유는 ‘성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며 “감정노동은 여성이 하는 일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이 여성을 콜센터에 많이 채용한 배경이고, 임금을 낮게 책정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알바냐” 학교노동자 과반수 ‘시간제’
“자격증 요구하면서 돌봄 ‘공짜노동’ 연장선”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필수노동자’로 호명된 노동자 중에는 방과후 초등돌봄전담사도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돌봄전담사의 여성 비율은 99%로 압도적이다. 그러나 교육공무직 과반수가 시간제로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다.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방과후 돌봄전담사 1만2046명 중 시간제 근무자는 6945명(57.7%)으로, 8시간 전일제 5101명(42.3%)보다 많다.
인천의 한 공립초등학교에서 돌봄사로 근무한 지 13년차가 된 박선미씨(50대·가명)는 2021년까지 6시간 시간제로 일했다. 박씨는 “정부가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시간제를 유지하는 것은 돌봄 업무를 아르바이트 정도로 폄하하는 이중적 행태”라고 말했다. 그의 5년치 임금명세서를 보면 방학이나 명절 없이 평이하게 근무한 5월 기준 기본급이 2018년 123만2030원, 2019년 123만2030원, 2020년 164만6580원, 2021년 138만원으로 1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2020년에 기본급이 높은 이유는 코로나19로 긴급돌봄에 따른 업무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턴 전일제로 근무 형태가 바뀌면서 기본급이 186만8000원으로 올랐다.
박씨의 임금명세서는 기본급과 고정급여(식대, 근속수당, 가족수당)로 이뤄져있다. 근속수당이 전체 월급(세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8.4%, 2019년 10.1%, 2020년 10.6%, 2021년 12.6%, 2022년 16%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교섭을 통해 매년 조금씩 인상해온 근속수당이 그나마 생계를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그러나 여전히 임금 총액은 적다. 매년 5월 기준으로 월급(세전)은 2018년 161만890원, 2019년 168만6550원, 2020년 238만7760원, 2021년 187만1940원이었다. 2022년에는 전일제 변경으로 243만8000원이 됐다. 콜센터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29세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조금 넘는 수준이다. 4인 가구인 박씨의 경우 지출액이 더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부족하다.
돌봄전담사는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전문 업무지만, 여성이 집에서 맡아온 가사·돌봄의 ‘공짜노동’ 연장선쯤으로 이해되며 저평가된다. 박씨는 “자격을 요구하면서 자격에 대한 평가를 해주지 않고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일과 같은데 그 정도(저임금)면 충분하다’며 평가절하하는 시선이 문제”라고 말했다.
학교 청소노동자는 ‘특수직군’ 차별
‘허드렛일=여성’ 성역할로 구분
일한 시간 만큼 ‘숙련’ 인정 안해
같은 교육공무직이면서 더 열악한 노동자들도 있다. ‘특수운영직군’으로 분류된 청소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특수 직군이라는 이유로 다른 교육공무직에 비해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지난달 8일 만난 김진숙씨(60대·가명)의 손가락은 마디마다 굽어 있었다. 김씨는 부산의 한 공립초등학교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그러나 재직으로 인정된 경력기간은 공무직으로 전환된 2018년 9월부터다. 김씨는 2018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는 하루 5.5시간만 근무했고, 지금은 6시간 시간제로 일한다.
김씨의 임금명세서 항목은 단출했다. 기본급과 함께 매월 지급되는 고정급여는 식대뿐이다. 근속수당이나 가족수당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 끈질긴 교섭을 통해 정기상여금 30만원을 받게 된 것이 유일하다.
김씨의 5년치 임금명세서를 보면 매년 10월 기준 기본급이 2018년 108만1970원, 2019년 119만9790원, 2020년 125만3310원, 2021년 126만5000원, 2022년 140만1000원 등으로 나타났다. 고정급여로 지급된 식대는 2018년 13만원에서 2021년 14만원으로 1만원 인상됐다. 김씨의 월급 총액(세전)이 200만원을 넘은 건 5년 동안 3번에 그쳤다. 방학 땐 근무일수도 줄어 100만원도 못 받는다.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김씨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고 주말엔 뷔페집에서도 일했다”며 “그렇게 안하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효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조직국장은 “집에서 여성이 하는 ‘허드렛일’이라는 인식과 대체가능한 일이라는 인식이 결합해 ‘저임금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10~20년 넘게 일해도 숙련도가 임금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비스, 돌봄 등 여성들이 많이 분포돼 있는 노동은 고부가가치 전환의 과정을 겪지 못했다. 그 배경엔 성역할 구분이 있다”고 말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환경 특성은 ‘숙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재생산이 생산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아영(소통·젠더데스크) 황경상·배문규·이수민·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조형국(사회부) 이아름·유선희(플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