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성으로 만들던 락앤락…여기서 내쫓길 순 없어요”

2024.01.12 17:45

밀폐용기 ‘락앤락’ 만들던 경력단절 여성들

“내 일터를 잃을 수 없다”…싸움 나선 이유

락앤락 밀폐용기. 락앤락 제공

락앤락 밀폐용기. 락앤락 제공

“락앤락이라고 하면 엄마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용기잖아요. 다 알아주고요. 그런 자부심이 있는 회사였어요.”

락앤락 안성공장의 DPS(포장·디지털 패키징 시스템) 팀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은애씨(49)는 1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출고 직전 마지막으로 물건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게 김씨의 일이다. 업무가 가장 많은 월요일에는 5000~6000개의 락앤락 제품이 김씨와 동료들의 손을 거치지만, ‘정성’은 조금도 변색되지 않는다.

“다들 자신이 받는 물건처럼 열심히 포장하고 한 번이라도 더 닦아서 넣어줘요.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했는데, 주방에서 쓰는 제품이니까 더 깨끗해야 한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더라고요.”

락앤락 안성공장 직원 절반 이상은 중년 여성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은 ‘엄마’들은 고된 일도 꾹 참고 버텨왔다. 김씨도 “무게 20㎏짜리 박스도 많고, 웬만한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한다”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 때문에 참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성으로 락앤락 용기를 만들고 포장해 온 안성공장 노동자들은 최근 갑작스러운 해고 위기를 맞았다. 락앤락은 지난해 11월 안성공장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공고했다. 회사는 영업손실이 심각해 안성공장을 외주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성공장 직원 150여명 중 70%가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12일 경기 안성시 락앤락 공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심민정씨 제공.

12일 경기 안성시 락앤락 공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심민정씨 제공.

김씨를 포함해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직원 34명은 오는 31일부로 해고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김씨의 팀 동료 심민정씨(55)는 “일방적인 통보였다”며 “생계 때문에 돈을 꼭 벌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업급여를 받으면서라도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자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심씨는 “10년 넘게 물건 만지고, 진열하고, 정리하고, 청소도 해서 일군 직장”이라며 “이런 곳을 하루아침에 잃는다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처음엔 없는 자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장에서 지게차 타는 남자들을 보니 남편이 먼저 생각나더라”라며 “애매한 나이에 직업이 없어지면 안 되니 서로를 위해 함께 싸우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34명 중 여성은 24명이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락앤락지회가 지난 11일 경기 안성공장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다. 심민정씨 제공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락앤락지회가 지난 11일 경기 안성공장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다. 심민정씨 제공

노조는 2017년 락앤락을 인수한 홍콩 사모펀드 운영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가 경영 실패로 인한 영업이익 감소의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한다고 보고 있다. 손세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락앤락지회장은 “회사가 어렵다면서 임원은 늘고, 배당이나 급여 같은 몫은 챙겨가고 있다”며 “경영진은 경영 실패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저임금 노동자들만 내보내고 있다”고 했다. 노조는 고용안정 보장과 외주화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락앤락 측은 “지난 5년간 한국 사업의 영업손실이 누적됐고 작년부터는 상황이 급속히 악화돼 생존을 위해 안성사업장 운영을 중단하게 된 것”이라며 “락앤락은 (해고와 관련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는 상황으로, 노조와 고용안정위원회 등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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