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작업중지권’ 현장 증언대회
노동자들 “있어도 못 써” “그림의 떡”
작업중지 했더니 손해배상 청구하기도
한국타이어 직원들은 2022년 6월 공장 성형기에서 기계 결함을 발견했다. 센서에 작업자의 신체가 감지돼도 벨트 드럼(회전체)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현장 관리자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관리자는 ‘권한 밖’이라고만 말했다.
노조가 근로감독관에 연락해 노동청의 시정지시를 받았지만, 한국타이어는 “아무 이유 없이 설비 가동을 중지시켜 큰 손해를 끼쳤다”며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현진우 부지회장은 “아무 이상이 없다면 노동청은 왜 시정지시를 하고, 회사는 왜 설비를 개선했나”라며 “작업을 중지했다고 부당한 대우를 한다면 누가 작업중지를 행사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안전한 일터’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법에 명시된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현장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노총은 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작업중지권 민주노총 요구안 발표 및 현장 증언대회’를 열어 사례들을 공유했다.
작업중지 요청을 무시했다가 사고가 발생하자 불이익을 주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현대제철은 기중기 레일 파손을 발견한 사내하청노동자의 작업중지 요구를 거부하고 레일을 돌렸다. 결국 기중기가 레일에서 이탈하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사측은 오히려 해당 노동자에게 감봉 징계를 내렸다.
2022년 5월 경남 창원에서 일어난 굴착기 끼임 사망사고 당시에는 작업중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료 조종사가 금고형 집행유예를 받았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작업중지권을 보장받지도 못하는데, 행사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고 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2019년 9월 홈플러스 동대문점에서는 고객에게 폭언·모욕을 들은 캐셔가 집에 돌아와 뇌출혈로 쓰러져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배준경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 조직국장은 “홈플러스는 단체협약과 매뉴얼에 여러 보호조치를 두고 있지만 사고 당시에는 지켜지지 않았다”며 “현장 감독과 문화·제도 개선이 필수”라고 했다.
허소연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체국본부 교선국장은 “집배원에게 큰 업무 위협은 다발성 호우·폭우나 혹한·혹서로, 폭우에 집배원이 숨진 사례도 있다”며 “우편물 배송기한이 정해져 있고 특정 시기에 쏠려 있어 쉽게 업무를 중단할 수 없다”고 했다.
건당으로 돈을 버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작업중지가 소득 감소로 이어져 위험한 상황에서도 일을 멈추기 어렵다. 박상웅 서비스연맹 가전통신노조 부위원장은 “작업중지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건당 수수료를 받아야 하고, 고객만족을 시켜야만 하는 일방적인 평가제도 때문”이라며 “작업중지권 발동으로 인한 손실을 가해자나 사업주가 보장하도록 안전장치 및 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작업중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노조의 작업중지권 보장, 작업중지 노동자에 불이익을 주는 사업주 처벌, 작업중지 기간의 하청노동자 임금과 하청업체 손실보전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작업중지권의 범위를 폭염·폭우·감정노동 등으로 확대하고, 완전한 개선조치 이후 작업이 재개되도록 법에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