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리본은 천사를 뜻하나요?” 네 살이었던 아이들, 학교에서 세월호를 배우다

2024.04.12 06:00 입력 2024.04.15 09:35 수정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1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1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노란색은 밝은색이잖아요. 하늘에서는 밝게 있으라고 노란색 아닐까요?”

지난 8일 서울 금천구 한울중 1학년 4반 도덕 수업 시간.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무엇을 상징할까요?”라는 질문에 한 학생이 이렇게 답했다. 이날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를 수업 자료로 활용하며 ‘도덕적 상상력’을 배웠다. 10년 전 비극이 학생들에게 도덕적 질문을 던졌다.

한울중에서는 지난 3일부터 전교생이 ‘세월호 수업’을 듣고 있다. 참사 당시 학생들은 5살 남짓이었다. 미디어에서 배가 침몰하는 장면, 울고 있는 사람들을 얼핏 본 기억이 전부다. 학생들은 4차시 동안 세월호 참사에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해 직접 추모 활동에 참여한다.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진영효 교사가 지난 8일 세월호 참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진영효 교사가 지난 8일 세월호 참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1차시 수업. 진영효 교사가 세월호를 소재로 한 노래 ‘옐로 오션(Yellow Ocean)’ 영상을 틀었다. 학생들은 영상 속 오열하는 유가족을 넋 놓고 바라봤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의 마음도 곧잘 상상했다. 한 학생은 “안쓰럽고 불안한 느낌이에요. 저도 배 타고 가다가 비슷한 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빛 그들의 어둠을 이길 거야’라는 노래 가사의 의미에 대해선 “세월호에 대해 침묵하는 사람들이 어둠이고,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빛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는 ‘노란 리본’도 생소했다. 모둠 활동 중 노란 리본을 받은 학생들은 리본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진 교사가 “처음에는 살아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리본을) 달았는데, 이제는 어떤 상징으로 바뀌었을까?”라고 묻자 학생들은 “천사?” “기억하겠다?” 등의 의미를 더했다.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1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1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된 2차시.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학생들의 표현과 표정이 다양해졌다. 한 학생은 몸을 아예 모니터 쪽으로 돌려 한참을 집중했고, 어떤 학생은 한숨을 푹 내쉬기도 했다. “구조를 못 했나요, 안 했나요?”라는 진 교사 질문에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안했어요”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따져봤다. 구조 과정에서 발생한 도덕적 문제를 짚어 가며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학습지에 채워 넣었다. “선장과 선원들이 아닌 학생들을 먼저 구했어야 했던” 해양경찰, “의무를 내팽개친” 선장, “대한민국의 총책임자”인 대통령 등 의견이 다양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한 학생은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문장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나지막이 읊었다.

이날 수업을 들은 후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은 사뭇 달라졌다. 이지혜양(13)은 “옛날에는 단순히 큰 사고였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어떤 식으로 진실을 숨겼는지, 유가족들이 얼마나 슬픈지 직접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다”며 “희생자들에게 진실은 우리가 밝힐 테니 이제 편히 쉬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루다양(13)은 “어릴 때 받은 노란 리본을 조금 더 소중하게 바라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1학년 4반 학생이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을 듣고 학습지를 작성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1학년 4반 학생이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을 듣고 학습지를 작성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진 교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10년째 세월호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4·16 교과서 발간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세월호 참사를 가르치는 후배 교사들이 줄어든 점을 체감했다. 그가 늦은 나이에도 교단에 계속 서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세월호 참사 당시 4~6살이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업을 하는 것은 장벽이 꽤 높은 일이다. 그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으로 설명하기보다 도덕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단순히 추모식을 진행하기보다 세월호에 관한 공부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해야 아이들도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다른 한울중 교사들도 세월호 수업에 참관했다. 이번 수업은 교사들에게도 참사를 되새겨야 할 의미를 상기시켰다. 한 교사는 참관록에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마주하기 힘든 사건이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는 주제”라며 “수업을 참관하며 교사로서, 시민으로서, 부모로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주제들이라도 용기 내 마주하고 계속 이야기해야 함을 배웠다”고 적었다. 다른 교사는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도덕을 배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1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 1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 8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을 듣고 있다. 한수빈 기자

남은 수업에서 학생들은 ‘세월호 특별법’ 등 참사 이후의 진상규명 과정을 배운다. 직접 유가족을 위로하는 편지도 쓸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오는 16일에는 전교생이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에 맞춰 플래시몹을 할 예정이다. 학생들이 그림, 노란 리본 등으로 꾸민 학교 내 추모 공간도 마련된다.

진 교사는 “매일 5~6시간씩 세월호 수업을 하고 나면 몸보다 마음이 힘들다. 참사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들춰낼 때마다 누르기 힘든 감정들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이어 “추모하더라도 의미를 알게 하고 싶다. 그게 내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한울중 학생이 학교 내 마련된 세월호 추모 공간에 추모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한울중 제공

지난해 4월 한울중 학생이 학교 내 마련된 세월호 추모 공간에 추모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한울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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