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 ‘특정 이념·사상 배제한 영화 교육’…시민단체, “예술 검열의 제도화”

2024.04.30 17:14

블랙리스트이후 등 6개 시민단체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사업 지원 조건으로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한 영화와 교육 프로그램을 내건 영화진흥위원회를 비판하고 있다. 오동욱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블랙리스트이후 등 6개 시민단체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사업 지원 조건으로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한 영화와 교육 프로그램을 내건 영화진흥위원회를 비판하고 있다. 오동욱 기자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학생 대상 영화 교육사업 수행자를 공모하면서 ‘정치적 중립 소재’로 하거나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한 영화와 교육 프로그램을 조건으로 내건 데 대해 시민단체들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30일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윗선’에서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하도록 압박한 것이 의심된다며 진상 규명도 촉구했다.

블랙리스트이후 등 6개 시민단체는 이날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진위의 이번 조치가 “2022년 ‘윤석열차 논란’과 판박이 사건”이라며 “이번에는 영진위가 사전 검열을 제도화했다”고 비판했다.

논란은 영진위가 지난달 27일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 운영 용역’ 사업 입찰을 공고하면서 시작했다. 학생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교육을 받으며 영화의 사회적 가치를 느끼게 한다는 목적이다. 영진위는 사업의 교육내용으로 ‘정치적 중립 소재와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한 영화와 교육 프로그램으로만 구성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시민단체는 인권위에 이 조건을 삭제되도록 해달라고 진정을 제기했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문화 사업을 하면서 정치 중립을 강요하거나 특정 사상과 이념을 배제하도록 하면 용역업체와 영상물 제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특정 이념이나 사상이 포함되지 않은 영화나 작품은 있을 수 없다”며 “정치적 중립성 소재,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하라는 것은 영화의 다양성과 예술의 자유를 근원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이나 특정 이념, 사상 등 추상적 표현은 명확하지 않아 집권세력에 비판적인 영화나 교육 프로그램은 배제될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이들은 ‘특정이념·사상 배제’라는 조건이 청소년의 양심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했다. 이들은 “국가 구성원인 청소년들은 입시문제, 기후 등 환경문제, 교육문제 등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기본권이 있다”면서 “청소년들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내면적 기초가 되는 사상을 자유로이 형성할 양심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 있다”고 했다.

영진위가 3월27일 공지한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 운영 용역’ 제안 요청서(왼쪽)와 1월24일 발표한 2024년 사업계획(오른쪽). 1월24일 발표한 자료에 청소년 추천영화 선정위원회 운영으로 청소년 추천영화를 선정한다는 내용이 3월27일 자료에는 ‘정치적 중립 소재와 특정 이념, 사상 배제한 영화 및 교육프로그램으로 구성’으로 바뀌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이미지 크게 보기

영진위가 3월27일 공지한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 운영 용역’ 제안 요청서(왼쪽)와 1월24일 발표한 2024년 사업계획(오른쪽). 1월24일 발표한 자료에 청소년 추천영화 선정위원회 운영으로 청소년 추천영화를 선정한다는 내용이 3월27일 자료에는 ‘정치적 중립 소재와 특정 이념, 사상 배제한 영화 및 교육프로그램으로 구성’으로 바뀌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특정 이념과 사상 배제’라는 조건이 ‘윗선’에 지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 소재’나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라는 조건은 1월5일 열린 2024년 제1차 위원회 임시회의에서 위원들이 의결한 회의자료나 같은 달 24일 발표된 영화진흥위 사업계획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계획 발표회 자료에는 영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구성이 “청소년 추천영화 선정위원회 운영으로 청소년 추천영화”로 이뤄진다고 돼 있었다. 정윤희 블랙리스트이후 디렉터는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배분받은 복권기금으로 수행하는데 문체부가 ‘소관 중앙관서의 장’의 역할을 맡는다”며 “영화진흥위는 언제, 어떤 이유로 ‘정치적 중립 소재와 특정 이념, 사상을 배제’하라는 문구를 삽입하게 됐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022년 10월 문체부는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윤석열차)을 전시했다는 이유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경고하고 예산을 삭감해 논란이 됐다. 당시 인권위는 “문체부의 보도와 설명 자료 배포 시기는 이미 공모전의 공모와 심사가 종료된 뒤였다”는 이유로 진정을 각하하면서도 “국가기관이 장래 학생만화공모전 공모요강에 결격사항으로 ‘정치적 의도’를 포함하는 경우 기본권 침해의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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