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았는데…이 교도소, 왜 익숙할까

2024.07.02 21:25 입력 2024.07.02 22:09 수정 글·사진 강현석 기자

장흥군 옛 장흥교도소,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유명

‘더글로리’ ‘밀수’ ‘하이재킹’ 등 67편…지역경제 활기

하반기 체험 공간 조성…숙박 가능한 ‘교도소 호텔’도

지난달 26일 찾은 전남 장흥군 옛 장흥교도소 모습. 최근까지 교도소로 사용된 이곳은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지난달 26일 찾은 전남 장흥군 장흥읍 옛 장흥교도소는 촬영을 마치고 철수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국내 한 유명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인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이날 촬영됐다고 한다.

이용희 로케이션 매니저(30)는 “서울에서 멀어도 찾아오는 것은 전국에서 ‘실제 교도소’를 배경으로 촬영할 수 있는 곳이 이곳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얼마 전까지 교도소로 쓰였기 때문에 사실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옛 장흥교도소 곳곳에는 ‘서서울교도소’ ‘청수교도소’ ‘교정부’ 등 실존하지 않는 교도소와 정부 기관 명칭 등이 쓰인 간판이 남아 있었다. 모두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위해 설치해뒀던 것이다.

하지만 내부는 실제 교도소 모습 그대로다. 죄수들이 갇혔던 수용동에는 밖에서만 열리는 녹슨 철문, 쇠창살 등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남아 있었다. ‘독방’과 ‘수용실’에서도 나무 마루와 문 높이가 허리춤까지인 화장실, 목재 선반 등을 볼 수 있었다.

인구 3만4000여명의 장흥군이 옛 교도소를 활용해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장흥읍에는 1975년 1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도소가 세워졌다. 당시 인구가 12만3900여명에 달했던 장흥에는 일대를 담당하는 광주지검 장흥지청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2015년 법무부가 용산면에 새 교도소를 건립해 이전하면서 장흥읍의 교도소는 방치됐다. 장흥군은 옛 교도소를 문화예술 복합공간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9년 1월 31억원에 사들였다. 매입 이후 건물은 헐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겨뒀는데 ‘교도소 촬영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이곳에서 찍은 영화와 드라마는 모두 67편에 이른다. <닥터프리즈너> <범털> <지금 우리 학교는> <밀수> <빅마우스> <공작도시> <닥터 로이어> <법쩐> <더글로리> <스위트홈> <모범택시2> <하이재킹> 등이다.

전남에서 가장 많은 영화·드라마가 촬영되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47편이 장흥교도소를 거쳐갔다. 같은 기간 순천드라마세트장은 22편, 낙안읍성민속마을 20편, 순천만국가정원에서는 7편의 촬영이 진행됐다.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 제작진으로 한 번에 70명 안팎의 사람들이 찾는다. 전남도영상위원회는 촬영팀 1명당 하루에 숙박과 식비 등으로 7만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동안 교도소 촬영 일수는 361일에 달한다.

일반인도 방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교도소에 장흥군은 하반기 ‘문화예술 복합공간 빠삐용 집(Zip)’ 조성을 마무리한다. 여성 죄수들이 수용됐던 공간은 1일 최대 6시간까지 머물 수 있는 ‘글감옥’으로 바뀐다. ‘접견실’도 그대로 살려 체험 공간이 들어선다. 미결수들이 지내던 공간은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교도소 호텔’로 리모델링할 예정이다. 촬영팀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카페 등도 생긴다.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경찰서와 검찰청사, 법정 등의 세트장도 만들어 촬영팀 체류 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송병석 장흥군 문화예술팀장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장흥에만 있는 개방된 옛 교도소가 영화·드라마 촬영장뿐 아니라 일반인도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전국적인 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원문기사 보기
상단으로 이동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