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호 기자(이하 ‘문’) = 저도 21대 국회의 특징을 ‘중간이 없다’란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대 국회에서는 제3당이 최대 40여석을 갖고 있으면서 양당의 중재자 역할을 했어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연합으로 ‘평화와 정의’라는 원내교섭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21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과 국민의힘의 버티기 또는 보이콧이 맞물려 이전에 비해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과정이 많이 생략된 것 같아요. 특히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가능해지자 이 경향이 더 심해졌습니다. 든든한 뒷배가 생긴 국민의힘으로써는 더 배짱을 부릴 수 있게 됐고, 민주당은 견제에 앞장서겠다는 취지로 더욱 ‘강 대 강’으로 붙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3당이 다 합쳐도 원내교섭단체 기준인 20석이 되지 않아서 중재 노력을 하기에 역부족입니다. 이를 타개하려면 소수당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더 촘촘하게 마련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김윤나영 기자(이하 ‘김’) = 저는 19대 국회에서 처음 민주당을 취재하면서 정치부를 경험했습니다. 그때는 친문-비문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어요. 박지원 민주당 고문이 매일 아침 ‘문모닝’(매일 아침 문재인 전 대표 비판)을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국회는 원래 싸우는 곳인가보다' 생각했고요. 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호남 의원들이 집단으로 탈당해 안철수 전 대표와 국민의당을 창당합니다. 분당 사태 이후 민주당은 단일대오를 유지하더라고요. 분당 트라우마 때문인지 20대 국회, 21대 국회 들어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원들의 강박이 강해진 것 같아요. 당내의 '다른 목소리'가 정말 들리지 않습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당은 혼란스러워졌고 민심-당심 괴리 논란이 불거졌는데도 민주당 내부 성찰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요즘 민주당에서는 ‘조국의 강’을 못 건너서 ‘남국의 늪’에 빠졌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어요. 이재명 대표 체제를 거쳐서는 팬덤정치 논란이 강화했고, 열성 당원들의 ‘문자폭탄’도 일상화했습니다. 국회의원이 제대로 일할 때 💻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입법기관’이라고 하는데, 현장에서 언제 이 사실을 가장 절감하나요. 김 = 사회적 참사가 있을 때 특히 절실하게 느껴요. ‘전세 사기’ 같은 이슈도 마찬가지고요. 중요한 이슈는 결국 다 국회로 옵니다. 입법 과정을 거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니까요. 탁지영 기자(이하 ‘탁’) = 국회의원 입법 활동의 정수는 ‘상임위원회’에서 느낄 수 있어요. 국회에는 총 17개의 상임위가 있는데, 300명의 의원들이 17개 상임위에 분산돼서 의정활동을 해요. 법안 발의, 정부 관계자를 상대로 한 현안 질의, 국정감사 등을 합니다. 문 = 출입 이전에 저는 막연히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만 생각했는데요. 국회 상임위와 소위원회 활동을 취재하면서 이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어요. 하나의 법안을 의결하기 위해 의원들이 법안의 세부 내용을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을 보고 ‘이 과정이 아주 중요하구나’하고 여기게 됐어요. 대표적으로 2021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떠올라요. 여야간 이견은 있었지만 상임위, 법사위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토론을 거친 끝에 합의점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있었습니다. 조 = 19·20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정치인들이 도외시하던 우리 사회 ‘을’들의 투쟁 현장에 국회의원들이 한 명씩 담당 의원이 돼 직접 찾아가고 중간중간 성과를 보고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이전엔 경찰들이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해산하기 일쑤였고 사용자들도 노동자들의 협상 요구를 내내 무시했는데, 국회의원이 찾아가서 자리를 함께 하고 사용자에게 협상을 요구하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한 예로 통신사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자신을 정규직화해달라고 단식에 고공농성을 장기간 진행한 일이 있었는데, 을지로위원회가 나서면서 합의를 이끌어냈어요. 탁 = 정쟁만 일으키는 의원들을 보면 기자들도 속이 터져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현장조사를 벌이던 때가 생각납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뤄진 2차 현장조사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사안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경기 이천 화재 참사 당시 ‘경기지사 떡볶이 먹방 논란’이 일었던 건 (재난 대응의) 일차적 책임이 지자체장에 있다는 것”이고 “(당시) 행안부 장관이 컨트롤타워이기 때문에 책임져야 한다는 보도는 못 봤다”라고 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때 이천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났는데, 당시에 한 유튜브 방송에 나가 떡볶이 먹방을 찍어 논란이 됐다는 걸 거론한 거예요. 순간 유가족은 물론이고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모두 한숨을 내쉬었어요. 누가봐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편들기 위해 꺼낸 발언이었죠. 생떼같은 자식들을 한순간에 잃고 국가에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 야당 공세에만 일관하는 걸 보니, ‘입법기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문 = 국회의원은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해요. 이태원 참사 직후 의원들이 ‘뒷북 법안’을 우후죽순 쏟아냈는데요. ‘선제적 입법’도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요. 저는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청년층에게 각광받는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대해 알고 있었더라면, 축제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법안을 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국회는 연령, 성별, 종사해온 업이 매우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법안의 발굴도 편향될 수밖에 없어요. 사회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보다 다양한 사회 계층의 수요에 반응할 수 있는 의원이 많이 선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 2015년에 유인태 당시 민주당 의원이 사형제 폐지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어요. 의원 171명을 모아 공동 발의했습니다.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서 폐지가 현실화하긴 어려웠지만, 국회 의결 정족수인 절반 이상이 사형제 폐지에 공감한다는 걸 보여줬죠. 유 의원은 2004년에도 의원 174명을 모아 사형제 폐지안을 발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 다 법안이 통과되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우리 사회가 사형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계속 만든 겁니다. 의원 한 명 한 명이 실현 가능성을 떠나 신념을 가지고 뚝심있게 입법을 추진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비례대표를 늘려야 할까 💻 현재 47석인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요.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의정 활동은 실제로 많이 다른가요? 인상적인 비례대표 의원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문 = 지역구 의원들 일정은 보통 ‘월화수목 금금금’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월~목요일에 국회 일정을 소화하고 주말을 낀 금~일요일에는 지역구 행사를 뛰는 데 바빠서요. 사실 비례대표 의원이라도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지역구 의원들과 크게 다른 의정활동을 하겠지만, 대개 지역구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관심사와 전문성에 집중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 김 = 비례대표 의원들이 확실히 ‘전문 분야’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19대 국회 때 비례대표이던 장하나 의원이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동물원법을 발의하고, 여러 노동 현안에도 중요한 목소리를 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1대 국회에선 김병주 의원의 활동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육군 대장 출신인 김 의원은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어요. 조 = 의사·간호사 출신 비례대표 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하는 경우도 전문성을 살린 대표적 사례예요. 꼭 전문직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코로나19가 심각할 때 민주당의 이동주 의원 등 자영업자를 대표해 비례대표로 들어온 분들이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국회에 많이 전했습니다. 탁 = ‘제대로 된’ 비례대표가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면 “지난 총선 비례대표 공천은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비례대표 의원 중에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죠. 확실한 근거도 없이 마구잡이로 의혹을 제기하는 무리수를 두거나, 강성 팬덤에만 기대는 발언을 하거나….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지역구 공천을 받으려고 돌출 발언을 더 서슴없이 내뱉는 것 같아요. 비례대표를 두 번 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모든 비례대표 의원이 이렇다는 게 아닙니다. 문 = 저는 비례대표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전장연 시위 당시 직접 지하철역 현장을 찾았던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정치인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야 하는데, 오히려 언급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던진 발언이 ‘역풍’으로 돌아올까봐 전전긍긍하고요. 비례대표 의원들은 당사자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구 의원들보다 사회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