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Lite] 🍛 노동자는 공짜로 밥하지 않는다

점선면

[Lite] 🍛 노동자는 공짜로 밥하지 않는다

6분 2023.06.02

급식노동자 폐암 산업재해 외국인가사도우미 공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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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지옥의 급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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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6.02. 금요일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김지혜 기자입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다녔던 학교들의 급식실은 하나같이 열악했습니다. 급식, 하면 친구들과 콩나물시루처럼 붙어 앉아 밥을 먹던 식당의 낮은 천장과 후덥지근한 공기부터 떠오르곤 해요.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학교엔 다른 공간도 많은걸요. 후다닥 식판을 비우고 급식실을 떠나면 그만이었죠. 그때는 몰랐어요. 진짜 문제는 비좁고 답답한 급식실에서 온종일 일해야 하는 조리사분들이 겪고 계신다는 걸 말입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조리사·조리실무사들이 폐암 등 폐 질환을 진단받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급식실에 제대로 된 환기장치나 창문이 없어,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초미세분진(조리흄)을 그대로 들이마신 탓입니다.

이들의 폐 질환은 2021년 이미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지만, 재해를 막기 위한 업무환경 개선은 더디기만 합니다. 심지어 세상을 떠난 산재 피해자들이 일했던 학교 급식실조차도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최근 폐암을 확진 받은 11~17년 차 급식 노동자들이 함께 산재 신청을 하며 요구한 것도 학교 급식실의 전면적인 환경 개선이었습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생명이 걸린 급박하고 중대한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학교 급식실에서 이를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칼럼을 읽고 함께 대화해봐요. 약 3분 분량입니다.

☑️ 중장년 여성들의 일은 여성이 집에서 '공짜'로 맡아왔던 가사노동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어 저평가된다.

☑️ 학교 급식실의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벌써 5명의 급식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고, 폐암 의심 노동자는 전국 338명에 이른다.

☑️ 산업재해가 발생한 후에도 학교 급식실의 열악한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희생을 먹고 사는 학교 급식실의 '비극'

2023.05.25. 임아영 기자

폐암 확진을 받은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지난 3월 열린 급식 종사자 폐암 검진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엄마는 ‘다른 사람이 차려준 밥’을 사 먹는 걸 늘 아까워했다. “찬을 이렇게 조금 내고 이 돈을 받는다니, 내가 만들면 훨씬 좋은 재료로 더 맛있게 할 수 있는데.” 말하지 못했지만 생각했다. ‘엄마 밥에는 엄마 노동력에 대한 대가가 포함 안 돼 있으니까요.’ 엄마의 노동은 늘 공짜였다. 계산이 되지 않으니 엄마 음식은 사서 먹는 음식보다 저렴한 게 당연했다. 가부장제는 그렇게 수많은 엄마들의 노동을 공짜로 갈아 썼다. ‘학교 급식’이 생겨나며 엄마들은 겨우 도시락 싸는 일에서 자유로워졌다. 중식, 석식 2개의 도시락을 싸다가 해방됐다고 기뻐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의 공짜 노동은 학교 급식 조리사의 노동이 되면서 ‘최저임금’을 겨우 맞추는 값이 됐다. 중장년 여성들의 일은 ‘반찬값’ 벌러 나온 노동으로 치부되고 여성이 집에서 맡아왔던 가사노동의 연장선으로 이해되며 저평가됐다. 이들은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열악한 임금에 대해 말할 ‘힘’도 없었다. 2017년 한 국회의원의 저열한 인식은 그 결과였다.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것 아니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돼야 하는 거냐?” 100인분 이상의 밥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기득권이 수많은 학생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사람들을 ‘밥하는 아줌마’로 폄하하고 ‘따뜻한 밥을 만들어 먹이는 일’을 후려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밥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지위, 임금에 대한 재평가가 왜 중요한지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4년 후 그 기대는 손쉽게 흩어졌다. 2021년 2월 ‘학교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처음 인정되면서다. 지금까지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만 5명이다. 주차장 옆에 급식실이 있는 탓에 매연이 음식에 섞일까 문을 열 수 없고, 아이들 교실과 가까워 음식 냄새가 날 수 있어서 문을 열 수 없으며, 아예 반지하여서 환기가 잘 안 돼 조리사들은 ‘조리흄’을 그대로 들이마셨다. 17개 시·도교육청 급식 노동자 4만2077명에 대한 폐 검진 결과 1만3653명(32.4%)에게 이상소견이 나타났고 폐암 의심 노동자는 전국에 338명에 이른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경우가 총 79건인데 그중 54건이 학교에서 발생했다. 왜 학교 급식실에서 산재가 더 많이 발생했을까. “오래된 학교들은 급식실 고려를 안 하고 지었는데 애들 밥은 줘야 하니까 건물 아무 곳에나 욱여넣은 거죠.” 1인당 식수 인원도 대체로 100명이 넘었다. 조리실에 후드 장치가 없는 경우도 다수여서 창문을 열고 선풍기로 환기시키는 정도로 버텨야 했다. 시행 12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무상급식은 급식 조리사들의 노동만이 아니라 건강마저 갈아넣어 유지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엄마들이었을 급식 조리사들은 ‘요령’도 피울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초창기에는 진짜 경조사 아니면 아무도 놀지 못했어요. 내가 놀면 다른 엄마한테 피해가 가니까. 그래서 나 진짜 개근했어요, 개근.” 지난 2월 ‘학교 급식 종사자 폐암 산재, 해법 모색을 위한 토론회’ 발제문에 담긴 산재 당사자의 목소리다. 다른 엄마한테 피해가 갈까봐 쉬는 일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최저임금을 겨우 맞추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했을 중년의 여성 노동자의 삶의 결과가 ‘폐암’이 됐다.

학교 급식실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 더욱 처참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관계자는 말했다. “이제 대공장 급식실의 환경은 많이 좋아졌어요. 정규직인 경우도 많고요.”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학교 급식실이 민간 회사의 급식 공간보다 열악하다는 것을, 자신의 노동을 갈아넣던 노동자들이 병을 얻은 공간이 ‘학교’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왜 이 사회는 국가의 필수 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밖에 주지 않고 그들이 안전한 환경, 안정된 지위를 요구하면 ‘욕심’이라고 말하는가. 우리의 세금이 이렇게밖에 배분되지 못할 정도로 한국은 가난한가.

‘폐암’이라는 결과는 이제 더 이상 이들의 희생으로 학교 급식을 유지할 수 없다는 신호다. 갈 길은 멀다. 산재가 발생한 학교 급식실인데도 아직 환기시설이 교체되지 않았고, ‘지옥의 급식실’이 이슈화된 후 열악한 급식실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신규 채용이 어려워 급식실 인력 공백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 고용노동부, 교육청 의사결정자들은 기획재정부 핑계는 그만 대고 서둘러야 한다. 이상소견 있는 노동자 1만3653명, 폐암 의심 노동자 338명을 구할 생각이 먼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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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자연·돈·노동·돌봄·식량·에너지·생명 등 7가지 저렴한 것들 덕분에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됐다면서 ‘저렴하다’는 것의 의미를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라 규정합니다.

칼럼에 쓰였듯 우리는 가정에서 엄마의 ‘공짜’ 노동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어요.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 따르면 그건 지나치게 적은 보상으로 엄마의 노동력만 취하는 ‘폭력’이었습니다. 그 폭력 때문에 청소, 조리, 돌봄 등 엄마가 공짜로 해오던 노동들을 가정 밖 일터에서도 '저렴한 것'으로 취급 받아요.

소수 ‘나쁜 사장님’들을 탓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폐암 대부분이 민간 기업이 아닌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했으니까요. 중년 여성의 노동을 ‘공짜’ ‘저렴한 것’ ‘희생’으로 취급하며, 이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지속해온 건 다름 아닌 학교 예산을 쥔 국가였어요.

정부가 저출생 해법으로 내놓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에서도 같은 방식의 폭력을 봅니다. 결국 개발도상국 출신의 가사노동자를 국내보다 싼 값에 고용함으로써 저출생 문제를 풀자(?)는 아이디어인데요. 가사노동을 과거처럼 '저렴한 것'으로 유지하기 위해, 가사노동자에게 어떻게든 정당한 보상과 대우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국가의 꼼수처럼 보였어요.

홍콩과 싱가포르의 이주 가사노동자 정책을 연구했던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은 칼럼에서 “임금체불, 중개업체의 수수료 갈취는 예사였고, 폭언·폭력 등 고용인의 ‘갑질’에도 계약 해지 우려로 문제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며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이 겪는 문제를 짚습니다.

김 특파원은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될 정부 시범사업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노동자’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도 최저임금법 등의 적용을 받는 정당한 임금과 대우가 제공돼야 한다는 뜻이겠죠.

학교 급식 조리사의 산재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급식 조리사=노동자’라는 당연한 등식을 되새기는 것에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숨 쉴 때마다 폐암 공포"

“최근 폐 결절 진단을 받았어요. 매일 수백명분 식사를 만들면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됐지만 급식실에는 제대로 된 환기시설도, 작은 창문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낸 기사입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저출생 해법?

홍콩·싱가포르·대만·일본 등 아시아 4개국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지만 합계출생률 증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가사·돌봄 영역에 내국인력이 부족한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이었다는 내용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럼 의사들은 어떻게 하자는 걸까요?

요즘 잊을만하면 '응급실 뺑뺑이' 뉴스가 나옵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또 한 생명이 스러집니다. 그런가 하면 소아과병원 앞엔 새벽부터 마치 '오픈런' 보는듯한 부모들 행렬이 이어져요.

정부와 국회는 다시 의사 수 증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일하는 지역의사제, 특정 진료과 의사만 키우는 특성화의대 등도 검토 중이에요. 그러나 의사단체는 이 모든 제도 변경을 반대합니다. 대신 의사단체는 특정 지역, 특정 진료과 의사의 수입을 늘려주면 된다고 합니다.

6월 7일 수요일 점선면에서는 이 논쟁을 다룹니다. 이 문제에 관한 의견과 경험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꾹 눌러 들려주세요. 점선면에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