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Lite] 🌟 이런 미친 존재감

점선면

[Lite] 🌟 이런 미친 존재감

7분 2023.11.23

정신장애인 탈시설 인권 미친존재감프로젝트 미친식당

🫷

'일잘러'는 필요 없어

구독하기 점선면이란?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11.23. 목요일

오늘도 애매한 지점을 톡 건드린 뉴스를 찾아 헤맵니다. 저는 이번 주 점선면 큐레이터 허남설 기자입니다.

독자님께 대뜸 고백부터 하나 하자면, 사실 오늘 소개할 기사는 읽고 또 읽어야 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소개하는 '프로젝트'가 뭔가 굉장히 새로워 보여서 눈길을 자꾸 끌었는데, 그 취지나 의미가 무엇인지 저 스스로 납득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그 프로젝트는 장애인, 특히 정신장애인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기사를 읽고 그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것저것 좀 찾아봤습니다. 솔직히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현장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아직도 100%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직접 체험해 보기 전까지는요.

그만큼 제가 정신장애인의 이야기를 몰랐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정신장애인과 단 한 시간도 보낸 경험이 없으니까요. 혹시 오늘 기사를 읽고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기사는 '미친식당'을 다녀온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의 칼럼입니다. 2분 동안 읽고 [대화하기]에서 다시 만나요.

☑️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일차적 규정은 '노동할 수 없는 자'이다.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 그래서 '미친식당'은 매우 도전적이다. 미친 존재들이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미치지 않은 존재들과 일할 길을 찾는다.

☑️ 미친식당에서는 함께 하기 위해 노동한다. 더 나아가 우리의 관계,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 가야 하는지 고민한다.

미친식당 노동후기

2023.11.16.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미친존재감 프로젝트'가 '미친식당'을 알리면 제작한 홍보물. 미친존재감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정신장애인의 노동을 함께 고민하면서 미친식당을 준비했어요." 정신장애인 예술창작 집단 '미친존재감 프로젝트'의 손성연 기획자가 보낸 초대 문자였다. 곧바로 '가겠다'고 했다. 왜 노동이냐고 묻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고민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일차적 규정은 '노동할 수 없는 자'이다.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장애인고용실태조사(2021)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고용되는 게 고시에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누군가의 눈에는 10%도 많아 보일지 모르겠다. '미친 사람이 일을 해요?'라는 말이 '지금 제정신이에요?'라는 뜻을 지닌 사회이니 말이다. 아마 고용된 10%의 사람들도 미친 채로 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친 채로는 노동은커녕 사회생활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는 소위 증상을 억압한 사람들, 미친 티가 나지 않는 사람들만 살아갈 수 있다. 그게 안 된다면 집에서 지내야 하고 그것도 어렵다면 시설에 강제 구금된다. 신체장애인들은 '경사로' 같은 것이라도 요구할 수 있지만 정신장애인의 경우엔 적합한 사회 환경을 요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친 사람에게는 말의 권리가 없다.

그래서 이번 창작 프로젝트는 매우 도전적이다. 기획자들은 먼저 '미친회사'를 설립하고 첫 번째 사업으로 '미친식당'을 열었다. 여기서 이들은 미친 사람으로서 고용되고 미친 사람으로서 노동한다. 행동의 특색이나 마음의 곤경을 감출 필요가 없다. 식당에서 '함께 일할 비장애인'(동업자)들도 모집했다. 미친 존재들이 미친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미치지 않은 존재들과 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본주의적 협업과는 다르다. 기획자 손성연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은 "일하기 위해 함께 있는 게 아니고 함께 있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위해 사람들을 어떻게 바꿀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지내기 위해 일을 어떻게 바꿀지를 묻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친 존재들과 미치지 않은 존재들이 '함께'하기 위해 노동을, 더 나아가 우리의 관계,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식당에 4시간 동안 고용되었다. 먼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나는 긴장을 하거나 정신적으로 힘들면 바로 쓰러져요. 그러면 놀라지 말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여주세요.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면 곧바로 깨어나요." 왈왈은 마음의 곤경이 곧바로 신체적으로 전환되는 사람이다. 그냥 그렇다고 했다. 무슨 비정상인을 목격한 듯 화들짝 놀라지 말고, 그를 그저 그로서 보라고 했다.

소개를 마친 후 작업복을 입고 식당을 둘러보았다. '요리 아니면 설거지겠지', '요리에 자신 없는데 설거지로 빠질까', '4시간 동안 설거지하면 너무 힘들 텐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차에 벽에 적힌 메모를 보았다. '대화만 나눠도 노동이야. 듣기만 해도 노동이야. 같이 있기만 해도 어떤 노동은 노동이야.' 거울에는 이런 메모도 붙어 있었다. '딴짓 환영, 딴생각 환영, 잡담 환영, 탈주 환영.'

내가 맡은 일은 요리도 설거지도 아니었다. '대화만 나눠도 노동이야.'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담이었다. 나는 미친 사람들과 수다 떠는 일을 맡았다. 작업대에는 호연이 만든 알록달록 질문지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하나씩 뒤집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중간에 강제 휴식 시간이 없었다면 과로할 뻔했다.

식당 곳곳이 시끌벅적했다. 칵테일 음료인 모히토를 만든다며 사이다와 소주를 계속 붓는 성연에게 그래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여긴 미친식당이잖아요." 피자를 굽는 주방에서는 또 무슨 재미난 일이 있는지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렸다. 또 한쪽에서는 힘들다며 소파에 누워 쉬는 사람이 있었고, 전에 있었던 속상했던 일을 떠올리는 사람, 그를 곁에서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정신장애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노동이지만 삶이기도 했다.

이 식당은 피자를 구워냈지만 나 같은 비장애인도 새로 구워냈다.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4시간을 '일한=논' 것은 처음이었다. 마무리 소감을 말하는 시간. 나는 미친 사람에게 맞춰진 공간인데 미치지 않은 사람에게도 잘 맞는 것 같다고, 여기서 편안한 것을 보니 나도 조금은 미쳤나보다고 했다. 그때 농담 재주꾼 지우가 한마디 던졌다. "그럼 이참에 국가공인 미친 사람까지 한번 되어 보시죠." 모두가 까르르 웃는데, 철컹, 내 마음에서 셔터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 셔터를 들어 올려야 창작 프로젝트가 아닌 진짜 미친식당이 열리는 것이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미친 존재감'이라는 말을 오래 전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코미디언 정형돈이 존재감을 전혀 보이지 못하다가 어느 날 괴상한 춤사위로 출연진부터 제작진까지 온통 웃음바다로 만든 뒤 '미친 존재감'이라는 단어가 떠다니기 시작했어요.

이 칼럼에서 소개한 손성연 '미친존재감 프로젝트' 기획자는 "'미쳤네?'는 욕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고 그냥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 역시 'ADD(주의력결핍장애)' 진단을 받은 정신장애인입니다.

미친존재감 프로젝트는 미친회사를 세워 미친식당을 열기 전에는 연극을 공연했습니다. 누군가는 '정신장애인이 대사를 제대로 외우겠어? 실수하면 극의 흐름이 끊기잖아?' 같은 의문을 제기하겠지만, 이들의 프로젝트는 '상수'가 없고 오직 '변수'만이 있다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불완전한 사람들'의 진짜 삶이니까요.

손성연 기획자는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매번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도 간다. 그 길이 매번 달라서 능숙해진다는 게 불가능하지만, 그 길로 가면 함께 걸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미친식당의 운영 방식도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예, 셰프!"를 외치며 일사분란한 식당의 이미지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죠. 식재료 사 오기, 씻기, 손질하기, 볶기, 맛보기, 담기, 식탁에 올리기, 뒷정리하기 같은 식당의 공정은 '되는 대로' 합니다.

"일을 1/n로 정확히 나누지 않는다. 누가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그 일을 더 잘한다면, 대신 해주면 된다.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는 이유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함께 있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함께 있기가 가장 중요하다."

고병권 연구원은 미친식당에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독자님도 그럴 것 같은지요? 하루 4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을 함께 한다면 어떨까요? 저는 아마 팔팔 끓고 있는 음식이나 아직 다듬지 않고 쌓인 재료를 보며 내내 마음을 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미친식당의 분위기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일을 떠나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인정 받고 힘을 얻는 세상은 대체 어떤 곳일까요?

'효율적 이타주의'가 뭐길래

샘 올트먼이 마이크로소프트(MS)로 간다더니, 오픈AI로 복귀한다는 뉴스가 나오네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요? 오픈AI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이데올로기, '효율적 이타주의'에 관한 기사를 소개합니다.

설악산의 길, 제주도의 길

환경 분야를 취재하는 김기범 기자가 제주도와 설악산의 과거를 되짚으며 '오색케이블카' 설치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설악산이 1996년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될 뻔했군요. 제주도는 2007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습니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면

질문과 의견을 남겨주세요!

구독자님의 이야기

📬 "북아현동 노인 분들이 어떻게 폐지를 줍게 되었고 어떻게 줍고 있는지 분석한 책 <가난의 문법>을 읽고 한참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기초연금을 하루빨리 상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월 40만원 정도로 생활하는 노인 분들은 그냥 국가가 아사시키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재원 마련 방법은 모르겠습니다. 십시일반 하는 사회는 어려운 걸까요?" (씨드님)

📬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만큼 노인 빈곤은 큰 문제로 보여요. 폐지를 줍는 게 그분들의 가계가 나아지는지 걱정도 됩니다. 국가 차원에서 더 깊이 고민하고 정책을 실현해 나가는 게 필요해 보였어요. 비영리단체 등이 이분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하려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국가가 고충을 듣고 저소득 노인들 삶의 최소 안전망을 설치하는 게 제일 튼튼한 안전망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익명의 독자님)

📬 "오전에 책 상자를 내놨더니 점심도 되기 전에 사라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폐지 수거하는 분들이 없었다면 더 오래 걸렸을 일이겠죠. 내가 느끼는 편리함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익명의 독자님)

📝 "지난 점선면Lite <♻️ 고물상에서 든 생각>편을 읽은 독자님들이 보내주신 이야기예요. 여러 독자님께서 노인 빈곤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대안을 고민하시는 것 같네요! 아무래도 '연금개혁'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 제도를 고치는 방안이 많이 거론되더라고요. 지금보다는 지급 대상자를 줄이되 금액(현재 30만원)은 늘리자는 주장이 많습니다. 현재는 자산을 어느 정도 보유해 빈곤 위기에 놓이지 않은 노인도 기초연금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초연금을 이런 방향으로 개편한다면 어떤 노인은 이제껏 받던 걸 더는 못 받을 텐데요, 우리 정치가 이 갈등을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 "기자님께서 가해자의 서사를 의지적으로 다루지 않아 오신 이유를 읽으며 끄덕끄덕하면서도, 지금은 직시할 대비를 위해 가해자의 사상과 혐오 논리를 들여다봐야겠다는 이야기에도 많이 배웠습니다. 여성혐오 범죄에 분노만 하기 바빴는데 정부 기조와 연관 짓는 등 다각도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익명의 독자님)

📬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확인하려는 것은 '나'와 '범죄자'는 다르다고 선을 긋는 것이라는 박지선 범죄심리학자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그런 짓을 한 걔들이 이상한 거다' 라고 말하면서 선을 그은 거죠.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익명의 독자님)

📝 "지난주에 보내드린 점선면Lite <🧨그렇게 해도 된다는 신호>를 읽고 보내주신 의견입니다. 레터를 쓰고 있는 22일, 여성 20여 명에게 수면제·합성대마를 투약해 정신을 잃게 한 뒤 성폭행하고 불법촬영을 한 30대 남성 3명과, 강남 일대 지하철역·공중화장실 등에서 여성 190여 명을 불법촬영한 20대 남성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유사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며 우리 사회가 특정한 인식이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이 짙어져요.

한편, 검찰은 경남 진주에서 20대 남성이 '페미니스트니까 맞아도 된다'며 편의점에서 일하던 여성을 폭행한 사건을 두고 "전형적인 혐오범죄"에 해당한다며 동종범죄 전력, 구체적 범행동기 등을 철저히 수사하고 범행 동기를 양형 가중요소로 고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의 태도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앞으로도 관련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