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머글'들의 눈에는 희한하기만 하죠. 연애하는 게 왜 사과할 일이지?
팬덤의 언어를 이해해보기로 합니다. 카리나에게 화가 난 팬들이 말한 '배신감'에 관해 숙고해 봤어요. 팬들은 카리나에게 뭘 기대했길래 믿음을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걸까요?
K팝 산업은 팬들의 '덕질'을 기반으로 존립합니다. 산업적 관점에서 덕질의 핵심은 지갑을 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K팝의 각종 재화들은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돈을 쓰는 건 '차별화된 친밀감'을 위해서예요. '내 스타'와 남다른 유대를 맺는다고 느끼는 거죠.
팬들은 아이돌이 '1위'에 등극하도록 독려하는 보호자이자, 성장하는 경험을 같이 나누는 동반자이자, 아이돌이 언제나 최상의 모습을 보일 수 있게 감시하는
관리자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는 관계를 넘어선, 독특한 형태의 결합인 거예요. K팝 산업이 '마음의 산업'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 관점에서 카리나를 향한 팬들의 질타를 한번 볼까요?
"응원했던 카리나의 빛나는 미래. 같은 꿈을 꾸는 줄 알았던 건 팬들의 착각"
"최근 버블* 접속이 뜸했는데, 알고 보니 연애 시작 타이밍이더라"
"버블로 셀카 달랑 2장 보낸 다음 이재욱 만나러 갔더라"
"첫 정규앨범이 코앞인데, 리더가 본업에 지장이 가는 연애를 한다"
"팬들은 '카리나'가 아니라 '이재욱 여친'으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버블 : 아이돌과 소통할 수 있는 유료 구독 서비스)
정말 각별했던 상대에게 하는 원망으로 보여요. '나만 진심이었어?' 하고 따져 묻는, 흡사 연인 간의 다툼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각별함, 관계성, 친밀함… 아이돌의 계약서에는 이런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조항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을까요? 아이돌은 덕질 덕분에 빛나지만, 그 대가로 어디까지 응답할 수 있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K팝 산업은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스타가 팬덤의 덕질에 충실히 응답할 수 있게 각종 행사와 서비스를 기획해 내놓을 뿐이죠. 아이돌이 팬들의 관심과 사랑에 반응해야 한다는 표면적 당위, 그 이면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형태의 요구가 아이돌을 향해 덮쳐오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은 여기에 부응하는 행위를 '친밀성 노동'이라고
표현했어요. 기획사들이 모호한 상태로 방치한 이 영역 안에서 팬들의 덕질과 아이돌의 친밀성 노동은 서로를 끊임 없이 되먹임합니다. 친밀함을 보여야 한다는 압력은 아이돌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고 있고요.
이 구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아이돌은 언제까지, 왜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마음을 다친 스타들이 스러지는 안타까운 장면을 이미 여러 차례 지켜봐야 했습니다. 카리나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