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인간은 대체될 것인가?”란 질문 대신[김성우 저자 인터뷰]

인스피아

🎓“인간은 대체될 것인가?”란 질문 대신[김성우 저자 인터뷰]

26분 2023.03.15

편지 AI 글쓰기 리터러시 챗GPT

“인간은 대체될 것인가?”란 질문 대신[김성우 저자 인터뷰]

Instead of asking 'Will Robots Replace Human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78), 2023.3.15,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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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편지, AI, 글쓰기, 리터러시, 과정

1.머리말

2.챗GPT 호들갑인가, 위기인가? #교육

3.‘질문’과 ‘글쓰기’의 미래 #저자성 #책임

4.‘얼굴이 보이는 글’ #편지 #존댓말

5.직진하는 길, 에두르는 산책

6.‘대체될 것인가’라는 질문 대신

7.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최근 레터에서 챗GPT에 대해서 몇 차례 다루었는데요. 어떤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

“김스피는 AI나 챗GPT에 참 관심이 많은가봅니다.”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깜짝 놀라면서, 곰곰 그 말을 곱씹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그간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꼭 ‘챗GPT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챗GPT라는 ‘현상’을 통해 평소의 중요한 질문들이 맞닥뜨려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입니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일까?”

“기계와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까?”

“우리는 왜 글을 읽고 쓸까?“

“사람이 글을 쓴다고 할 땐, 실제로 그 본질은 무엇일까?”

“효율성만 추구하며 살면 되는 것일까?”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기술은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어떤 글을 읽고 쓰고 싶을까?”

저번 레터에서 예고했듯, 이번 레터에선 김성우 선생님께 챗GPT 시대의 리터러시 관련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묻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2.챗GPT 호들갑인가, 위기인가? #교육】

김스피(이하 👤) = 안녕하세요.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발행하고 있는 김스피입니다. 인스피아는 해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구독하고 계십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성우(이하 김) =안녕하세요, 김성우입니다. 제2언어 리터러시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고요.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단단한 영어공부> 등을 썼습니다. 오늘 주제와 조금 더 가까운 책으로는 엄기호 선생님과 함께 쓴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가 있고요.

김성우 선생님이 우체통과 함께 찍은 사진. 선생님은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중고등학교 때 편지를 많이 쓰면서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생성 AI 시대에 ‘편지’가 갖는 의미도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레터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 우선 왜 이렇게 챗GPT가 초유의 관심사가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근래의 챗GPT 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챗GPT에 사람들이 유독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첫번째론 기술이 영향을 주는 범위가 블록체인이라든지 NFT, 메타버스 등 최신기술과 달리 굉장히 넓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챗GPT의 경우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이죠. 비즈니스적으로든 일상적인 호기심으로든 누구나 글을 쓰니까요.

두번째로는 이용자 입장에서 체감되는 자연스러움, 글의 질이 이전의 챗봇들에 비해 훨씬 올라갔다는 느낌이 드니까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저도 사실 알파고나 미드저니 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챗GPT가 출시되니 ‘아 이게 정말 내 일이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런데 챗GPT 붐이 일어난 과정을 곰곰 생각해보면, 초반에 교육 현장에서 주로 이 문제가 다루어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챗GPT가 평가용 에세이를 대신 써주고 커닝을 돕는다 등의 측면에서요. 왜 교육 현장에서 처음 이슈가 되기 시작했을까요?

김= 기존 학교가 ‘적당한 수준의 지식’을 익혀 ‘적당한 수준의 평가’를 하는 데 최적화된 형태기 때문이죠. 챗GPT가 가장 잘 하는 게 ‘적당한 수준’의 글을 써내는 것이고요.
근대 공교육 모델의 핵심은 ‘교과 지식의 습득’이예요. 또 많은 학생들을 평가하기 위해선 그 평가 기준이 너무 어려우면 안되고요. 그러다보니 챗GPT로 인해 이젠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평가를 해야하는지부터 혼란스러워진 것이죠.

그런데 사실 오래 전부터 이런 학교 교육·평가에 대한 비판은 있어왔어요. “더 이상 이런 방식의 교육은 유효하지 않다”면서요. 그럼에도 수능이나 중간, 기말고사 등의 고부담 시험의 본질은 거의 바뀌지 않았는데요. 물론 수업과 과정평가 등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지만요.

이번 챗GPT 계기로 근본적으로 교육 체계를 재검토해야할 때가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챗GPT 시대에 교수님들이 이젠 어떻게 평가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얘기들을 기사에서 많이 봤습니다. 선생님은 챗GPT 관련 평가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해보셨나요?

김= 일단 저는 전면적인 금지, 혹은 전면적인 허용 의견은 아닙니다. 저는 학생들이 다양한 층위의 쓰기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종이에 글을 써보게도 해보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글을 구성하는 과제를 내줄 수도 있고요. 또 챗GPT를 활용해서 글을 잘 ‘생성’하게 하는 과제도 내줄 수 있죠. 이런식으로 적절히 섞어 과제를 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작정 “이건 아주 좋으니까 이것을 써!” “이건 쓰지마!”라고 한다기보단, 전통적인 글쓰기의 모드부터 소위 말하는 ‘최첨단’ AI를 사용한 모드 사이 징검다리를 놓고, 학생들이 직접 여러 글쓰기를 경험해보곤 스스로 체득하게 하는 거예요. 아, 내가 이렇게 썼을 때는 이런 점이 좋은데 이런 점은 좀 불편하구나. 어? 이럴 때는 이렇게 쓰는 게 더 편하네? -이런 식으로 장단점을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죠.

이렇게 한번 경험을 해보면, 나중에 그런 연장들을 필요에 따라 꺼내 쓸 수 있게 되거든요.

👤 = 저도 지금 말씀을 들으면서 공감이 많이 됩니다. 저도 글을 쓸 때 어떤 경우엔 손글씨로 쓰고 어떤 경우엔 핸드폰으로 쓰기도 하거든요.

너무 올드해보이지만, 사실 인스피아 글들은 매회차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손글씨로 쓰고 그걸 나중에 컴퓨터로 옮겨 적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요. 손글씨에 억지로 아우라를 부여한다기보다는, 실제로 초반에 컴퓨터로 다 쓰다보니까 나중에 흐름이 꼬여서 타자는 빠르지만 결국 처음부터 다시 써야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전체적인 틀, 구성이 중요한 글들의 경우엔 손글씨로 쓰는 편이 빠르구나...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독서노트나 SNS에 올리는 글, 단상 등은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적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정리할 땐 녹음을 쓰는 경우도 있고요. 말씀하신대로 이런식으로 자기만의 다양한 글쓰기를 체험해보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스피아를 마감하는 날은 대체로 책상이 엉망입니다. 초고를 손글씨로 쓰고 있는데, 이렇게 쓴 뒤 모바일로도 읽어보고 다시 출력해서도 고치고 합니다. 각각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매체 간 감각을 익히는 걸 ‘메타 읽기/쓰기’라고 한다고 합니다. (왼쪽)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Joanna Stern이 고등학교 문학 교실로 돌아가 챗GPT로 수업을 통과할 수 있는지를 체험해보고 있습니다(영상)

김= 네. 그런식으로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제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 앞에 말했듯 몇개의 과제를 다양한 층위로 설정을 한 뒤에,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중요한 것들을 발표하게 하는 식으로 진행할 것 같습니다. 내가 다양한 글쓰기 도구를 오가면서 어떤 것을 깨달았고,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감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요.

👤= 그러고보면 얼마전까지만해도 ‘메타 읽기(종이책, 핸드폰, 전자책 등 매체 넘나들면서 읽기)’ 차원에서 이야기가 주로 진행이 됐었는데, 이젠 챗GPT가 이슈가 되면서 ‘메타 쓰기’의 차원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 최근의 유용한 글쓰기 도구들은 오타 수정은 물론, 아예 글의 스타일을 바꾸어주기도 합니다.1) 하지만 이런 도구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쓴 글을 ‘보조’해주는 역할이고, 챗GPT의 경우 글을 기계가 쓰고 이를 인간이 최종 편집하는 개념이라 차이가 있죠.

‘올 오어 낫싱’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를 경험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마다 선호가 다를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여전히 효율성과 상관 없이 내가 즐겁기 때문에 뜨개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죠. 또 어떤 분은 노트북으로 일하면서도 다이어리 꾸미기 취미가 있어요. 생산성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런 활동들이 ‘나한테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1)글쓰기 관련, 널리 쓰이는 도구에는 그라마리(Grammarly·링크)나 퀼봇(Quillbot·링크) 등이 있습니다. 모두 영어 기반이긴 합니다만.

【3.‘질문’과 ‘글쓰기’의 미래】

👤= 최근 출판계에서도 챗GPT 집필, 관련 책들이 쏟아지는 등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어요. 챗GPT와 교수 간의 대담 책도 나왔는데요. 제가 지난 레터에서도 쓰긴 했지만, 사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부터 ‘과연 챗GPT와 대담이 가능한가?’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대담의 경우엔 서로 응답을 하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챗GPT는 제게 질문을 하지 못하잖아요. 챗GPT가 저한테 궁금한 게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그간 한 달정도 챗GPT를 써봤는데, 대화 기록을 쭉 보니까 계속 제가 물음표만 마구 던지고 있는 거예요. 일상적으론 전혀 그런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말이죠. ‘나만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지?’ 이런 낯선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지난달 27일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하고 있는 김대식 교수 (왼쪽) 저는 일방적으로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챗GPT의 대답이 다소 시크한 이유는 제가 AIPRM(링크)에서 텍스트 스타일을 '비꼬는, 냉소적인(satrical)'으로 설정해두었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Open AI

김= ‘챗GPT와의 대담이 가능한가?’라는 건 중요한 질문입니다. 책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마지막에 엄기호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리터러시(Literacy)란 내가 나의 이야기를 조리있게 설득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에 응답하는 능력”이란 대목이예요.
‘상대방의 말에 응답하는 능력’이 뭘까요? 예를 들어 제가 리터러시 연구자라서 관련 지식이 많은데, 사전 지식이 없는 김스피랑 대화를 해요. 그런데 제가 어려운 말을 막 해서 김스피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 전통적인 기준에선 저는 리터러시가 있는 사람이지만, ‘응답하는 능력’이라는 차원의 리터러시에선 저는 리터러시가 없는 사람인 거예요. 아는 건 많지만,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즉, 단순히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이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걸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말이 왔다갔다 하면서 응답하고, 때로 수렴하기도 하고 때로 갈등하기도 하고, 오랜 대화를 통해서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각이 숙성이 되어 한참 후에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런 것을 대담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이 리터러시가 있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챗GPT는 ‘요청’에 대해 답을 주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요. 인간이 챗GPT랑 ‘대화’를 한다고 할 때 ‘상대방’의 의견이나 정서, 마음같은 것들에 대해 근본적인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정답을 얻고 싶은 것이죠.

👤=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얘한테 무언가를 뽑아내겠다’는 생각이 기본적인 것이네요. 대담과는 다르게요.

그러고보면 챗GPT와의 대화엔 쓸모와 지향이 명확해요. ‘되게 구체적으로 물어봐야지 좋은 답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저렇게 해서 줘’ 이런 식으로요.

김= 그런 과정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 있어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란 표현인데요. 프롬프트 엔지니어닝이란, 명령을 어떻게 정교화하해서 챗GPT가 내가 원하는 답을 우수하게 빠른 시간 내에 답하게 할 것인가를 뜻해요. 이건 궁극적으로 챗GPT라는 ‘상대’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내 질문의 퀄리티’에 대한 관심인거죠.
한편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어요. “아니, 원래 사람이라는 게 대화를 하거나 토의를 할 때 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는 거잖아!”라고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아니다. 사람이라는 게 꼭 그렇게 생산성이라든가 수월성만을 위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진 않는다. 그냥 그 사람과 있는 게 좋아서 그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때로는 그 사람과 있는게 특별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인 이익을 주지 않더라도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문득 친구랑 만나서 차 한잔 마시면서 실 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그 대화 자체가 굉장히 좋을 수 있잖아요.

👤= 맞아요.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취재를 할 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정말 신기한 건 ‘저 사람도 분명 뻔한 이야기나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가는 경우도 있는데, 정말로 뻔한 얘기만 하는 사람은 한번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뭔가 의도치 않았던 만남을 하고, 예상치 않았던 사람이랑 쓸모 없는 대화를 하고 오면 더 재밌는 얘길 많이 듣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내 세계 안에 익숙하게 있는 사람 말고 택시기사님이나 나와 다른 세계의, 낯선 사람과 마음 터놓고 이야기했을 때 더 의외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고요.

김= 아까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말씀드렸죠. 챗GPT와의 ‘소통’이 대화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상호작용과 되게 비슷해보이지만, 말씀하신대로 나는 계속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지거나 어떤 답을 유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질문’이라고 하기보다는 약간 유도심문에 가까운 느낌이죠. 이 사람에 대해서 정말 관심이 있어서 질문을 하는 거라, 내가 원하는 답을 어느정도는 염두에 두고 그 방향에서 그 방향의 답을 잘 얻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이렇게 계속 대화를 하면서도 내 생각만 머리에 가득 차 있는 거예요.

AI에 적절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왼쪽) '일라이자 효과ELIZA Effect'란,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인공지능 등의 행동, 말을 보았을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의인화해 해석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1960년대 단순한 인공지능인 'ELIZA'에 대해 사람들이 마치 프로그램이 인간인 것처럼 감정적으로 대한 것에서 유래했죠.(관련글) 그러고보면 저도 옛날에 심심이에게 바보 소리를 듣고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제가 챗GPT와 관련해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유도심문 같은 ‘질문’을 하면서도 그 존재를 굉장히 의인화 하잖아요. 최근에도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가 BING 챗봇과 대화한 내용이 굉장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링크) 챗봇이 진보할수록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깃거리에 대해, 심리적 대화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거든요. 그런데 케빈 루스의 경우처럼 만약 챗봇이 인간의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추궁을 한다고 했을 때 - 그걸 그냥 “얘는 참 왜 이상한 소릴 하는거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걸 보면서 정말로 마음이 이상해지는 사람이 충분히 많을 수 있는 거예요. 아무리 ‘기계의 말’이라고 해도 그 결과에 심리적으로 영향을 크게 입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예글 들어 “내가 오늘 친구랑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얘기하고, 기계가 이에 대답해요. 머리로는 ‘지금 이 말을 하는 건 기계야’라고 알고 있지만, 텍스트를 읽는 순간 그 ‘말’이 마음에 담기게 되는 것이예요. 그래서 저는 인공지능이 쓴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사람이 굉장히 다양한 의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우선, 첫째로 얘는 기계니까 내가 막 이용해먹겠다!라는 관점이예요. 두 번째는 이 기계를 사람처럼 생각해요. 사람처럼 말을 하니까요. 그런데 동시에 세번째론 이게 정말로 나의 일을 대체하고, 인간 지적 노동의 상당부분을 대체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무서워지는 것이죠. 즉 요약하자면 기계를 깔보고, 동등하게 생각하기도 하면서, 한편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우월한 존재라는 걸 인정을 해요. 이런 복합적인 마음이 뒤섞여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정말 스펙트럼이 저 아래서부터 위까지네요. 깔보거나 경외심을 갖거나.

김= 챗GPT 이전, 최신 기술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래왔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 경우엔 이게 ‘말’을 하는 AI다보니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죠.
만약 키우는 강아지가 갑자기 사람처럼 말을 한다고 하면 강아지로 보진 않겠죠. 아무리 기계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말을 진짜 그럴듯하게 하면서, 거기에 더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하니까 이것을 무시할 수 없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죠. 무서우면서도 한편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라고 봅니다.

👤= 이어서, 이렇게 사람처럼 ‘말’을 하고 글도 쓰는 챗GPT를 어떤 책의 저자로 인정할 수도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 같은 책도 챗GPT가 쓰는데요. 이때 챗GPT는 ‘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 저자성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일 수 있는 부분은, “책임을 진다”는 부분이예요. 아무리 대필작가를 써도 책이 누군가의 이름으로 나왔을 땐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 저자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거든요. 이 책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거나 하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하는 걸 암묵적으로 공인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제가 정말 터무니 없는 책을 썼다고 가정해볼까요. “5.18 민주화운동은 허구다!”이런 책을 자기 이름을 달고 썼다고 하면, 이 사람은 암묵적으로 이런 얘길 동시에 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내가 얘기 하는 거야. 내 생각이야. 불만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책임질거야.’
만약에 내가 글을 썼는데 “판사님 이건 제가 쓴 거 아닙니다. 고양이가 쓴겁니다”라고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표절했다면 100% 표절의 책임을 저자가 져야지 고양이가 지게 할 수는 없죠. 그런데 챗GPT의 글은 이런 책임이나 윤리 영역을 떠올려봤을 때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없어요. 말(생성)은 너무 잘하는데, 여기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상황인거죠. 그러면 어디까지 인정을 해줘야 해? 라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것은 환상같은 거예요. 본래 사람은 밥을 먹고, 친구랑 수다를 떨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기도 하고... 그런 모든 경험이 글과 연결되어 있는데, 경험 없이 생산만 잘할 수 있는 기계가 생기니까 혼란이 생기는거죠.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 이 책의 표지엔 '글 챗GPT'라고 적혀있습니다. (왼쪽) '책임'이 없는 글들의 생산이 늘면서 가짜뉴스, 저품질 콘텐츠 등이 많아질 우려가 있습니다. 연합뉴스/Unsplash

👤= 그렇다면 그런 글이 늘어나면 어떤 영향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김= 사실 기술 자체를 무조건 좋다 혹은 나쁘다로 말할 수는 없어요. 결국 사용하는 사람이나 그 상황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잘 못써서 내가 의도한대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요. 그러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챗GPT로부터 조금 도움을 받고 말끔한 글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죠. 이런 경우엔 현명하고 적절하게 챗GPT를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을거예요.

한편 최근 챗GPT나 AI프로그램을 활용해서 가짜 뉴스나 저품질 정보, 홍보성 글 등을 어뷰징을 하는 그런 일은 전체 생태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죠.

👤= ‘책임’에 이어 ‘생태계’의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글들이 늘어나면서 지식 생태계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 블로그에 가짜 뉴스, 홍보성 글들이 잔뜩 생성되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져버리고마는 식으로요.
아무리 우리가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결국 그 검색을 통해 연결되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인 것이 아닐까요? 또한 결국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결정적인 정보 - 특히, 예를 들면 원자로를 건설한다든지, 투자나 정치인과 관련된 정보라든지 -를 알아보려고 할 때는 결국엔 인간이 면밀하게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할테고요. 또 최종적으로 엄청나게 큰 ‘책임’이 따라붙겠죠. 하지만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챗GPT는 자신이 생산한 글에 대해 책임을 질 수가 없고요.

김= 그렇죠. 결국 중요한 정보 - 법적인, 사회적 책임이 큰 정보들은 결국 인간이 다 읽고 또 꼼꼼히 체크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서 새로운, 재밌는 포인트가 등장하는데요. 결국엔 읽기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참 아이러니합니다만, 인쇄술이 발명되고 책이란 미디어가 대중화된 이후에 모든 쓰기는 철저히 ‘읽기’가 전제되는 활동이었습니다. 물론 뭐 전혀 안읽고 내 생각만 쓸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렇지 않고 많은 책을 읽고나서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쓰거든요. 즉, 읽기가 당연했다는 거죠.
그런데 챗GPT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어요. 뭔가를 쓸 때 전혀 ‘읽기’를 하지 않아도, 그저 키워드 몇개만 던져주면 술술 써내는 것이예요. 그러다보니 적당히 읽고 쓰던 ‘중간층’에선 앞으로 읽기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요.

한편으론 여전히 사회에 필요한 중요 문서나 학술적으로 깊이가 있는 문서 등은 읽거나 쓰는 게 챗GPT로 대체가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읽기가 쌓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나 전문성의 세계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검색 기능이 덧붙은 Bing 챗봇 같은 경우에는 어떤 검색 결과에 대한 출처, 주석을 다 적어주긴 하는데요. 그래도 여전히 직접 읽기만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있지요.

👤= 어떤 것인가요?

김= AI가 어떤 정보를 저한테 검색해서 주고, 그 출처도 줘요. 정확성은 들쭉날쭉하지만요. 아무튼 예전같으면 제가 일일이 찾아봤어야 할테니까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겠죠. 하지만 과연 이 ‘인용’이 정확한 것인지는 결국 직접 읽지 않으면 알지 못해요.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글을 쓰려고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인용하고 싶어요. 그래서 챗봇이 이를 대신해서 찾아주었어요. 그런데 그 원문의 전체 흐름 상 AI가 찾아낸 대목이 내가 인용하려는 의도와 정확하게 잘 맞는 인용인지는 제가 직접 그 글을 읽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거예요.
한 권의 두꺼운 책 안에 굉장히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이 때 내 의도에 정확하게 맞는 인용을 하기 위해서는 그 맥락을 파악하며 내 의도와 함께 고려해보는 작업이 필요해요.

👤= 그렇군요. 그럼 또 ‘적합한 인용을 한다는 차원에서의 읽기’가 필요하겠네요.

사람들이 보통 어떤 책을 읽으면 다들 밑줄 치는 대목이 비슷하고, 읽어내는 핵심 메시지는 똑같다고들 생각하는데요. 마치 수능 언어영역에서 ‘이 글의 핵심 주제는?’ 처럼요.

하지만 정작 어떤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꼽아봐라 했을 때, 과연 사람들이 모두 같은 곳에만 밑줄을 칠까 생각했어요. 제각기 삶과 개성에 따라 꽂히는 포인트가 다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즉, 참신한 인용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어쨌든 전문을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말씀하셨듯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텍스트를 자신이 객관적으로 읽어낸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인용의 핵심은 그 정보나 의견의 본질을 헤치지 않으면서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의 맥락 맞게 가져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요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가져오면 되는 거예요. 저는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출처를 밝히고 왜곡을 하지 않으면서 가져와서 너희들이 너의 이야기를 만들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곤 해요. 다만 책임 있는 읽기가 필요하죠. 여기서의 ‘책임’이 뭐냐면 독자가 그 원저작을 최대한 정확히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그래야 왜곡을 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이 부분에서 읽기의 윤리가 중요해지는 것이고요. 읽기를 정확하게 하고 난 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나의 맥락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거죠.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이 새로운 맥락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가’가 인용의 핵심이예요.

👤= 사람들은 그간 챗GPT를 ‘쓰기’나 ‘생산’ 차원에서 양극화가 벌어질 것이라고 얘기해왔는데,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확실히 ‘읽기’에서도 한층 더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히 무난하게 쓰고 읽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정보나 글의 퀄리티도 양극화가 될 것 같고요.

김= 실은 배우는 단계에서 전형적인 글을 쓴다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예요. 사실 기본기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결과적으론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전형성을 배우는 것 자체는 필요한 단계거든요.
다만 제가 생성AI의 시대에 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앞으로 ‘A는 B다’ 식의 무미건조한 설명문보다는 당면한 문제를 개인적인 경험과 엮어서 풀어내는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요. 이런 글들은 챗GPT가 써주기 힘들거든요. 저는 오히려 이런 쪽으로 조금 더 과제를 많이 내줄 것 같아요.

👤= ‘너의 경험을 기반으로 써봐라’

김= 예를 들면 수업 시간에 ‘컬쳐쇼크’에 대해 다룬다고 하면요. ‘컬쳐쇼크의 정의에 대해 설명하고 대표적인 예시를 써보세요’라는 과제를 이젠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거죠. 사형제의 경우에도 그냥 무난하게 ‘사형제에 대해 찬반 논리를 들어봐라’ 이런 과제는 별로고요.

대신 컬쳐쇼크나 사형제와 관련해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에 기반해서 풀어내는 에세이를 써보라고 하는 것이죠. 보통 이런 글들을 학문 영역에서는 어려운 말로 ‘자문화기술지’라고 하는데요. 예를 들면 페미니즘과 교육을 엮은 벨 훅스의 책은 어렵지 않고 쉽게 읽혀요. 순수하게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의 경험과 이론을 분리하지 않은 채 완벽하게 이걸 녹여내서 버무려 쓴 것이기 때문이죠.

(*벨 훅스(bell hooks·1952~2021) = 흑인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삶과 이론을 접합하고 실천해온 학자, 저술가)

👤= 말씀 듣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제가 그런 글들을 좋아해온 것 같아요.

【4.‘얼굴이 보이는 글’ #편지 #존댓말】

김= 연장선상에서 저는 ‘편지’라는 것이 되게 특별한 장르로 남을 것 같아요. 친구와 진심어린 편지를 주고받는데 이걸 챗GPT에 “대신 써 줘”라고 하진 않을테니까요. 편지와 마찬가지로, 굳이 일기를 챗GPT로 쓸 일은 없을거예요.

👤= 방금 말씀하신 두 장르의 공통점이 ‘개인의 얼굴이 명확히 보이는’ 글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김= 맞아요. 개인의 얼굴, 표정, 그리고 순간순간 변해가는 개인 간의 관계가 편지에는 들어가죠. 이 사람과 나의 관계, 그리고 오늘의 경험에 기반해 해석한 언어를 챗GPT에 맡길 수는 없잖아요.

사무적인 글이나 비즈니스 메일 - 즉 ‘얼굴이 별로 필요 없는 글’은 분명 챗GPT로 상당수 넘어갈거예요. 하지만 누군가가 편지나 일기를 쓸 때 그런 종류의 생산성을 기대하진 않을 거예요.

👤= ‘편지’에 대한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처음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 뉴스레터 역시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요.

기존의 인터넷 텍스트 생태계(포털 뉴스, 블로그 등)가 워낙 엉망이다보니 ‘과연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들 제목만 읽고 내려서 댓글을 달고 싸우고요. 저는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뭔가 마음 속에 있는 궁리는 백분의 일만 전달하고 독자와 전혀 소통이 안되는 느낌이어서 참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제목으로 눈길을 끌고 내용은 거의 없는 기사가 댓글이 수천개가 달리고 성과지표도 더 좋으니 진짜 누군가가 읽어줄만한 깊은 글을 쓸 욕심도 사라지죠.
한편 뉴스레터는 일단 적극적으로 당신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동의를 한 사람들이 받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포털에서 아주 많은 글들 가운데 하나를 읽는 거랑은 달리 뭔가 여기서는 이제 “이 사람이 진짜로 나를 향해서 글을 썼구나. 내가 이제 읽어보자”라는 마음가짐이 된달까요. 저도 독자로서 뉴스레터를 이것저것 받아보고 있는데 그런 느낌, ‘얼굴이 보이는 글’을 읽는 재미가 있어요. 물론 정보성 큐레이션과 에세이 등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홍보성 글이 아니고 개인이 진심을 담아서 쓴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친근하게 읽게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물론 모든 기사가 편지문처럼 쓰여야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요. 나름의 목적에 따른 적합한 문체가 필요할 것입니다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이제 앞으로 챗GPT로 인해 ‘얼굴 없는 글’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산이 되고 한층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게 될 텐데 적어도 그럼 기사들 가운데서도 조금 더 다양하게 ‘얼굴이 있는 글’이 생산되어도 좋지 않을까. 기존의 칼럼도 조금 더 자유분방하고 다양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대목을 읽고 너무 좋았거든요. 20세기 초반 어떤 작가의 아버지가 시골 의사였는데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이 집에 배달오면 가장 먼저 칼럼 면을 펼쳐서 책상 옆에 잘 붙여두곤 이렇게 중얼거렸대요. “자, 오늘은 ㅇㅇ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한번 볼까?...” 꼭 아는 사람이 놀러와서 수다떠는 것 같잖아요. 궁금해할만한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를 안고서요. 저는 지금도 얼마든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실제 시사 유튜브 구독자들의 경우 이런 마인드로 구독자들이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이번엔 이 이슈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궁금해하면서 알림을 기다릴 수도 있는 거고요.
왜 이렇게 제가 말을 많이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편지라는 키워드가 너무 좋았어서 뉴스레터와 연결지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챗GPT로 쓴 ‘안네의 일기’란 가능할까요? 안네가 만약 챗GPT를 쓸 수 있었다면 이를 활용해 일기를 썼을까요?(왼쪽) ‘유리병에 든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써서 보내곤 합니다. unsplash

김= 제겐 개인적인 고집같은 것이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냈던 단행본들을 경어체로 썼는데요.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의 경우엔 인지언어학과 관련된, 학문적인 성격이 뚜렷한 책인데 왜 경어체로 쓰냐고 주변에서 묻더라고요. 차라리 경어체를 빼고 ‘일반적으로’ 쓰는 게 훨씬 더 ‘전문적이고 진지한 책’처럼 보일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저는 항상 제가 글을 쓸 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거든요. 저는 평소에도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나 초등학생들한테도 반말을 하지 않고 모두 존대를 해요. 이게 저의 스타일이예요. 일상에서도 그렇고 책에서도 그런 것이죠.
아마 김스피님도 그런 부분을 못느끼실 수도 있지만, ‘얼굴이 있는 글’의 한 표지로서 경어체를 쓰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책을 쓰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지금 당신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다”라면서요.

👤= 제가 평소에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라 깜짝 놀랐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로 경어체가 단순한 ‘존댓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했다’ 체로는 그냥 혼잣말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말이나 할 수 있지만, ‘했습니다’체로 쓰다보면 분명 계속 가상의 독자를 의식하고 한글자 한글자 쓰게 되거든요.

혼잣말로 “아 이건 참 재밌는 얘기네요” “이제 옷을 입고 과자를 사러 갑니다...”라고 하는 건,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조금 어색하죠. 말하고 보니 뭔가 유튜브 브이로그 말투같기도 하네요.

김= 저는 좀 다른 맥락에서도 ‘편지’가 흥미로운 장르라고 생각하는데요. 편지는 사적인 장르이면서도 동시에 관계성이 굉장히 중요한 장르예요. 일기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I-Me relationship)라고 볼 수 있고요.
저는 ‘관계성’이라는 이슈가 비단 글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육을 망친 이유와도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추상적인 것은 없어요. 인간의 삶에서 추상화가 된 것이죠. 그런데 추상적인 말들이 지배하고, 글과 말에서 삶의 구체성이 사라져온 게 지금까지의 교육의 역사가 아닌가 싶어요. 나의 삶과 ‘관계가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니까 흥미가 떨어지고 읽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 거죠.

👤= 저희가 지금까지는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얘길 했는데요. 한번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생각해볼까 해요. 쓰는 사람 입장에서 편지 쓰는 게 재밌다는 건 저희가 동의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은데, 한편 이런 궁금증도 들어요.

사람들은 왜 ‘얼굴이 있는 글’ ‘직접 자신에게 말 거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할까? 뉴스레터나 유튜브의 성장이 저는 이런 부분과 결코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김= 제 생각엔, 인간의 본성이 ‘입말’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컴퓨터, 모바일 통신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아주 기나긴 역사 동안 인간은 기본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서 그 사람과 한 공간 안에서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존재였잖아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직접 만나서 하는 거랑, 줌으로 하는 것도 굉장히 느낌이 다르고요. 인간은 원래부터 사회, 공동체를 이루며 문명을 이루어 온 존재였기 때문에 ‘얼굴이 있는 글’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이건 김스피가 쓴 글이네. 내가 좋아하는 해찰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왔는데’, ‘이 글은 딱 김성우 톤의 글이네.’ – 그 사람과 같이 있다라고 하는 느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글을 통해 그런 느낌을 줄 수 있거든요.

‘얼굴 있는 글’에선 그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요. 그 사람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인상, 스타일, 말투, 세계관 등을 아울러서, 언어학에서는 ‘인덱시컬’(indexical·지표성)이라고 말해요. 마치 ‘화살표’처럼 누군가를 ‘딱!’ 가리키는 거죠. 이런 표시가 풍부한 글에선 어떤 글을 읽는 순간 ‘어? 이건 왠지 김스피가 쓴 글 같은데?’라고 연결이 됩니다.

반면 챗GPT는 당연히 그런 표시를 많이 담고 있지 않을 거예요. 물론 충분한 언어데이터가 웹에 공개되어 있는 사람들의 말투를 챗GPT가 흉내낼 수는 있어요.(참고) 하지만 이건 '그들'의 언어이지, 나의 언어는 아니죠.

편지는 당연히, 누구한테 왔는지 모를 수가 없는 글이죠. 예를 들어 저한테 누군가가 편지 앞머리에서 ‘성우에게’라고 쓰면, 그 한 단어만으로도 많은 정보가 훅 들어와요. ‘누군가가 내게 편지를 보냈는데, 나보다 연장자 그리고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쓴 글이다!’ 그런 표지들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글들은, 확실히 챗GPT가 쓴 글은 아닐 거라는 거죠. 그리고 그게 관계성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 명확하게 내가 보이고 상대방도 보이고, 그런 글을 읽는 것을 인간들은 옛날부터 좋아했다는 것이네요.

조금 딴 얘긴데, 아무래도 기자들은 사실 가장 ‘인덱시컬’이 없는 글(기사)을 쓰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가장 기계 같은?(웃음)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사람들이 보통 인덱시컬이 없는 글은 곧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한 글’ 반대로 인덱시컬이 있는 글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글’로 치부하는 오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김= 기사 뿐 아니라, 오랜 수사학적 전통이 있죠. 저는 방금 말씀하신 그 구분에 의문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 ‘객관 대 주관’ 이렇게 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되게 재밌는 얘기인데, 이 주제만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올 정도로 엄청 큰 얘기이기 때문에...

김= 그렇죠. 그런데 어떤 쪽이 더 좋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챗GPT로 인해 앞으로 한층 인덱시컬이 없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 관계성에 대한 목마름은 분명히 생길 거라는 거죠.

【5.직진하는 길, 에두르는 산책】

👤= 그러고보니, ‘도메인 스페시픽 AI’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김= 네. 기존의 아주 방대하고 보편적인 데이터 뭉치를 가진 챗GPT 말고, 특정 전문화된 데이터 뭉치를 기반으로 한 AI를 ‘도메인 스페시픽 AI’라고 하는데요. 예를 들면 성경만을 기반으로 하는 AI라든지, 경향신문의 정제된 기사들을 모아놓은 AI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언론사에서 그런 것을 도입한다면 저작권을 다 갖고 있는 경향신문의 모든 기사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챗GPT한테 가르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다음에, 이제 그 안에서 검색도 가능하고 그 다음에 뭔가 키워드로 몇 개의 기사를 하다가 이제 엮어서 종합 기사를 쓰는 것도 가능하고요.

예를 들어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정책을 비교해 주는 글을 써 줘” 이렇게 지시하면 여태까지 경향신문에서 썼던 수많은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 통일과 관련된 옛날 기사를 쭉 찾은 다음에 챗GPT가 이제 조합을 하는 거죠. 이미 데이터를 갖고 있으니 저작권 걱정할 필요도 없고요.

'도메인 스페시픽 AI'는 특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좁은 AI(Narrow AI)'입니다. 챗GPT는 반대로 아주 많은 보편적인 데이터들을 모두 흡수한 '넓은 AI(General AI)'이고요. 만약 ‘길 안내해주는 AI 챗봇’을 만든다면, 이 AI에게 만두 찌는 법에 대한 데이터까지 알려줄 필욘 없겠죠 (왼쪽) 수많은 책들이 꽂힌 서가. 여기서 '핵심'만 뽑아준다면 굳이 서가를 살필 필욘 없겠지만, 해찰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 있습니다. Levity AI/Unsplash

👤= 와! 마법같아요. 옛날 글들 그냥 빨리 찾아서 엮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 글들이 분량은 또 많아요. 특히 부고 기사 쓸 때 정말 아주 옛날 아카이브까지 다 찾아가지고, 일일이 수십 수백개의 글을 살펴 보고 정리를 하거든요. 확실히 기계가 그런 역할을 되게 잘할 것 같아요.

김= 그렇죠. 굉장히 혁신적인데 저는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해요.

만약 김스피님이 그런 기사를 직접 아카이브를 뒤적거리고 헤매면서 썼다고 하면, 그 과정에서 직접 읽으면서 알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을 거거든요. 최종 글엔 꼭 담기지 않더라도요. 예를 들면 분명히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정책을 상세히 비교하는 글을 쓰려고 하면 힘들고 짜증 날 거예요. 그런데 그걸 하는 사람의 몸에, 뇌에, 읽기의 시간이라는 경험이라고 하는 게 쌓이거든요. 힘들어도 읽으면서 뇌가 변하고 생각이 변하죠. ‘어 김영삼 대통령이 이런 일도 했었네?’ ‘당시 이런 기사도 있었네?’하면서 몰랐던 것을 새삼 눈치챌 수도 있고요.

챗GPT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이런 ‘경험’들은 모두 다 잃어버리게 되는 건데 이런 측면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주어진 시간 안에 ‘있어 보이는 산출물’을 얼마나 많이 뽑아낼 수 있느냐, 이 논리에 포섭이 된 거죠.

👤= 그 부분은 굉장히 동의합니다. 그런데 최근 챗GPT나 딥플같은 게 특히 통번역 측면에서 굉장히 각광을 받고 있는데요. 저도 사실 가장 일상적으로 쓰는 도구는 번역 기능같아요.

그런데 선생님의 근작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2022)은 사실 영어를 단순히 점수 잘받으려는 ‘꿀팁’ 같은 게 아니라, “영어 공부는 곧 영어의 마음을 읽는 일”이라고 하시는 게 핵심 메시지거든요. 예를 들면 5형식이면 그냥 ‘S+V+O+O.C’ 외워!가 아니라 5형식이 담고 있는 장면을 이해하려고 하고, 관사의 복잡함을 그 자체로 즐겁게 파고드는 식으로요. 그런데 딥플같은 도구를 통해 그냥 뚝딱 번역이 나와버리는데, 도대체 5형식이라든지 관사라든지를 이제 외울 필요조차도 없어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이 시대가 그러한 ‘과정’에 점점 더 적은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관사에 대해 알아볼까요?’라고 말하면 ‘그냥 챗GPT 쓰면 다 해결되는데 뭐 골치아픈 걸 알아봐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99% 정도를 차지하는 시대가 오는 거잖아요.

👤= 맞아요. 선생님이 혹시 이 자리를 빌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고 싶은 말을 한번 해보신다면요?

김= 그런 분들은 이 레터도 안보실 것 같은데요(웃음). 뭐 어쨌든, 저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도, 산출물만큼이나 소중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해요.

잠깐 개인적인 얘길 해보자면, 제가 지금은 공부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이전에 약 10년 정도 에듀 테크 분야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몸을 갈아 넣어서 화려한 산출물이 나오는 걸 보는 건 나름 뿌듯하기도 해요. 그런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저 자신은 어느 순간 회의가 들더라고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세계관에서는 안팔리면 끝장이니까요. 과정도 중요하지 않고요.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저는 지금 벌이가 많지 않지만 현재 삶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이렇게 김스피랑 만나서 오래 이야기하는 것도 즐겁고요. 내가 모르던 것을 공부하고 알고,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새로운 것을 깨닫는 그 모든 ‘과정’이 제겐 삶의 기쁨이예요. 지금도 만약 이 길을 다시 선택하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네. 저는 다시 선택해도 이 길을 선택할 거예요. 물론 다른 사람한테 추천하는 건 또 다른 문제긴 하지만요(웃음).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은 건, 이런 삶이 재미도 있거든요. 단순히 이런 게 의미가 있다, 학문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걸 떠나서, 재미가 없으면 못해요. 어떤 삶의 소중한 순간들이나 재미있는 발견들, 몸에 새겨지는 경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만약 이런 글쓰기나 공부 등을 ‘산출물’ ‘성과’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이 모든 것은 내 몸에 쌓이지 않아요. 예를 들어 카카오 사태처럼 전기가 나가버리면 그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력해지는 부분이 있는거죠. 즉, 저는 ‘더 좋은 삶’이라는 것은 내가 맨 몸으로서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고, 기계와 결합해서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스펙트럼의 삶. 횡단하는 삶이지 의존하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양한 결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직진하는 길, 에두르는 산책 코레일/Unsplash

👤= 재미라는 요소,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사실 처음엔 좀 더 적극적으로 쓸데 없는 레터를 쓰고 싶었거든요. 초반에는 실제로 그렇게 썼었고, 근데 이제 구독자분들이 늘어나시면서 자꾸 멋있는 얘기(?)를 해야될 것 같은 중압감 때문에 여전히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딴 짓’을 할 때가 너무 재밌다는 그 컨셉을 가지고 가고 싶어서 해찰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재미라는 것도 어쨌든 ‘생산성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이 관사가 어떻게 생겼구나. 신기하구나. 여기에 가면 이렇게 되는데 저기에 가면 저렇게 변하네? 재밌다.’ 이렇게 그냥 이런 걸 보는 순간, 그 자체가 너무 재밌는 것 같은데, 점점 우리 사회가 다양한 결의 경험, 즐거움을 지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책을 읽을 때 사소한 포인트에 혼자 ‘ㅋㅋㅋ’ 쳐놓고 웃기도 하고 맘에 드는 부분은 한참 필사를 하고, 혼자 이상한 데 꽂혀서 성내기도 하면서 읽거든요. 몇 권 읽겠다는 성과에 매이면 이런 읽기는 영 효율이 없죠.
그래도 한편 저는 -너무 희망적인 시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챗GPT라는 강력한 태풍을 계기로 어쩌면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좀 더 얘기가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사실 챗GPT 이전에도 성과중심, 효율중심의 원칙들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수면으로 전면적으로 이런 얘기들이 올라오지는 못했었으니까요.

김=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어떤 행동이나 현상을 ‘익사이팅하다!’ ‘즐겁다!’라고 느끼는 데는 상상 이상으로 사회적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 모두 챗GPT 등의 신기술이 매우 짜릿해, 즐거워라고 생각하고 흥분하고 있지만, 실은 그게 미디어나 사회적으로 이게 굉장히 신기술이고 신기하고 즐겁다 흥미진진하다는 이미지를 계속 불어넣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게 즐거운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문화와 기술생태계 전반을 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는 거죠. 사회의 각 영역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6.‘대체될 것인가’라는 질문 대신】

👤=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많은 분들이 우려를 하고 계신 부분, 그리고 많은 말이 나오고 있는 부분을 짚어보아야겠죠. 사실 챗GPT와 관련해서 가장 이야기 많이 나오는 얘기가 “신기술 제대로 못쓰면 이젠 도태될 것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 그 부분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류의 이야기예요. 그만큼 많은 분들이 두려워하고 계시고요. 저 또한 마찬가진데요. “이제 내 직업도 대체되는 게 아닐까. 난 이제 뭘 해야하지?”이런 걱정이 많아요.

저도 그간 챗GPT와 관련해 몇번 레터를 썼고, 거기서 대체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식으로 끝을 맺었는데요. 어찌보면 오늘 선생님이랑 제가 한 말도 인간의 특성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가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기자 이런 맥락입니다. 저는 이런 얘길 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사실, 이런 이야기가 “도태되지 않기 위해 인간의 능력을 키우자”라는 맥락으로 읽힐 위험성입니다. 사실 ‘챗GPT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지켜가자’랑,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으로 무장한, 엄청 짱 센 사람이 되자’가 진짜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그런데 이미 서점엔 그런 책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제목이 ‘AI 시대에 대체되지 않는 법’ ‘인간이 필요 없는 시대에 살아남는 법’ 등등...

김= 저는 그 말(“도태되지 않기 위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을 들을 때마다 그 ‘능력’을 과연 누가 정의하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돼요. 결국 챗GPT를 만들고, 이것을 제일 잘 사용하는 사람들은 사회 자본과 문화 자본이 많은 사람들이잖아요. 주로 이런 사람들이 챗GPT 관련 담론을 퍼트리고 있고, 누군가들은 벌써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요. 하지만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챗GPT가 뭔지도 잘 모르고, 이걸 한번도 써본 적이 없어요.

“대체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라”라는 문구들을 보다보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우리는 단지 보통의 삶을 살아갈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걸까요? 진짜로 각자가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걸까요?(왼쪽) 번쩍이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율무 200원'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위즈플래닛, 경향신문

👤= 맞아요, 저도 최근 어떤 모임에서 나이가 많은 분이 ‘챗GPT가 뭐냐, 그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보셔서 제가 가입 방법을 알려드리기도 했거든요. 이렇게 우리는 ‘난리’라고 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선 이걸 적극 활용하거나, 혹은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예요.

김= 그러니까 이 최신기술을 일반화, 낭만화하고, “모두가 이 기술을 슬기롭게 쓰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면서요. 대체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챗GPT가 못하는, 더 창의적인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을 할텐데요. 여기에 대해선 두 가지 차원을 얘기할 수 있어요.
첫째로, 각자도생의 논리입니다. 사회는 “모두에게 기술을 줄게”라고 하면서 결국 거기서 살아남아야하는 건 개인의 능력, 몫인 것이죠.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는 챗GPT 유료 구독을 하는 비용의 문제도 예를 들 수 있겠고요. 활용법도 적극 배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텐데요.
두번째로는 어떤 기술을 상상할 때 철저히 ‘지식 노동’의 영역만을 상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술 발전 상의 균형의 문제인데요. 현재 텍스트로 된 챗GPT가 개발이 되었는데 한편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모든 사회적 자원이 가사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었더라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세상에는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없어요.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으시겠어요? 그런데 이런 세상이 있었을 수도 있는 거예요.

요는, 그 누구도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데 위협을 느끼게 만든 사회에 대해서 저항할 필요가 있는 거죠. 지금은 거의 모두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어요.

“챗GPT를 잘 사용하면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마케팅 담론이지 사실은 사회의 담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담론은 “어떠한 기술 변화에도 모두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가 되어야죠. “신기술 잘 써서 살아남아라”가 아니라요.

【7.맺음말】

저는 선생님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 어쩌면 현재 진짜 중요한 것은 ‘챗GPT에게 질문하기’가 아니라, ‘챗GPT에 대해 질문하기’일 수도 있겠다고요.

그리고 이런 ‘챗GPT에 대해 질문하기’를 계속해가기 위해서는, 책을 계속 읽고 낯선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서로 나누고 비효율적인 궁리를 하고 해찰하는 삶을 계속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단지 챗GPT를,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멋진 도깨비방망이처럼 보는 대신요.

이런 태도는 ‘최신기술을 무조건 반대하는 태도’가 아닌, 궁극적으론 새로운 기술을 ‘더 잘쓰기 위한 태도’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요.

귀중한 생각을 나누어주신 김성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연구자님께도 즐거운 해찰거리가 많은 대화였다면 기쁘겠습니다.

✏️

“기술에 반대하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음식에 반대하는 것과 같다. 살면서 음식이 필요하듯이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식하면 혹은 영양가가 없는 음식을 먹으면, 혹은 병든 음식을 먹으면 우리의 생존 수단은 그 반대가 된다.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오직 바보만이 그 질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태평하게 모든 기술을 환영할 것이다.”

-닐 포스트먼, <18세기에 다리 놓기>(이동후, <미디어는 어떻게 인간의 조건이 되었는가>에서 재인용)

※오늘은 선생님께서 읽을만한 두 권의 좋은 책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이하 김성우 선생님이 추천하는 책과 추천의 코멘트입니다. 둘다 인공지능과 거리는 있지만, 읽고 쓰는 삶의 태도와 관련해 생각해볼만한거리를 제공해주는 책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은 본문에서도 언급된 김성우 선생님의 책을 제가 추천했습니다.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동녘, 2019.

김성우= “책을 읽으면서 몸과 글이 이렇게 엮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찌 보면 일반화와 추상화에 저항하는, 개인과 사회와 제도와 정치가 엮이는 '몸의 글쓰기'가 이런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기자님과 제가 함께 주고 받은 내용 중 '얼굴이 있는 글'의 예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유기쁨,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한신대학교출판부, 2013.

김성우=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의 화려함이 휘몰아치는 시대일수록 인류가 오래 고민해 온 주제를 천천히 곱씹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중 하나가 종교입니다. '종교'라는 말 때문에 거리감을 가지실 수도 있겠지만, 종교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관계 맺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여러 문화의 종교를 생태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화를 시도하는 책이고, 그런 의미에서 '생산성 증대'와는 전혀 다른 틀과 방향에서 세계를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무엇보다 재미있고요. 그래서 추천드립니다.”

김성우,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생각의힘, 2022.

김스피= “지금까지 저의 삶을 돌이켜보면, 영어는 제게 있어 즐거움이라기보다는 항상 숙제였던 것 같아요. 영어 없이 살아온 삶보다 영어를 공부하고 읽고 쓰는 삶이 훨씬 길었으면서도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영어를 공부하는 것 자체도 재밌을 수 있는 거였구나. 영어의 복잡함을 복잡함 그 자체로 즐길 수도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말거는 방법이나 이해를 돕기 위한 은유 등의 차원에서도 배운 것이 많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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