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휴일에 뭐 할지 모르는 사람들 : 지루함과 기분전환

인스피아

🎓휴일에 뭐 할지 모르는 사람들 : 지루함과 기분전환

18분 2023.03.01

지루함 기분전환 탕진잼 예술 즐거움

휴일에 뭐 할지 모르는 사람들 : 지루함과 기분전환

“How do we overcome boredom?”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76), 2023.3.1,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m.khan.co.kr/newsletter/inspia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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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지루함, 기분전환, 탕진잼, 예술, 즐거움

1.머리말
2.지루함은 인류의 숙명이다 :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3.‘기분전환’을 잘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4.숟가락을 가져다 댈 용기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오늘은 휴일인 삼일절입니다.

연구자님은 휴일이나 평소에 기분전환을 어떻게 하시는 편인가요?

제 경우에는 기분전환을 잘 하지 못합니다. 항상 휴일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정작 휴일이 오면 뭘하고 놀지 머리가 까매집니다. 한참 늦잠을 자다가 머리가 묵직하면 산책을 나가거나,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몰아서 보거나 하는 편이죠. 혹은 가끔 큰 맘먹고 인스타에서 봤던 비싼 맛집에 방문하거나 지르고 싶었던 전자제품을 ‘플렉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쓰고 나면 과연 제대로 기분전환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것 외에는 머리에 선뜻 떠오르는 기분전환 방법이 없으니 별 수 없습니다.

비싼 것을 마구 사진 못하니까 자잘한 것들을 맘껏 사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의미의 신조어 ‘탕진잼’이 한동안 유행이었습니다.(왼쪽) 트위터 중간간부 에스더 크로퍼드가 일을 하다가 사무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고 있는 사진. 하지만 지난달 27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그 역시 일론 머스크의 감원 칼바람 속에서 살아남진 못했다고 하네요.(링크) 사람인, Evan jones 트위터

그런데 문득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오히려 이런 삶이 권장되는 사회는 아닐까요? 별다른 삶의 낙도 없이, 엉뚱한 즐거움도 없이 일만 열심히 하는 삶이요.(그러면 ‘짠테크’에도 좋습니다) 혹은 아주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TV에서 연예인이 가는 맛집같은 곳에 찾아가보고, 유행하는 여행지에 가고, 신제품을 탕진잼하면서 가끔 아주 작은 기분전환을 하긴 하지만 항상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기분전환은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을까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더 참신하고 ‘제대로 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오늘 레터에선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고쿠분 고이치로), <기쁨 없는 경제>(티보르 스키토프스키), <바베트의 만찬>(이자크 디네센) 등을 지팡이 삼아 기분전환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지루함은 인류의 숙명이다 :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우와우와우와!”

-자우림, <일탈>(노래)

우리는 언제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질까요? 매일매일이 똑같이 흘러가고, 내일이 기대도 되지 않고, 새로울 것도 없는 지루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분전환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쉬기 위해 지긋지긋하게 일하는 것 치곤, 쉼의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지 매번 고민입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며 놀고 싶어하는 걸까요?(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라든지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하기 같은 건 조금 사양하고 싶습니다)... 고쿠분 고이치로는 월화수목금토일 초싹대며 빠르게 돌아가는 비디오테이프를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애초에 우리에게는 여유를 얻은 순간 이루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1)

고쿠분 고이치로의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는 인류의 역사를 지루함이라는 키워드로 바라본 책인데요. 우리는 지루함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루함은 아주 먼 옛날부터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온 가장 큰 동력이라는 것이죠. 사람들은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다른 세계와 교류를 하고, 사람과 사귀고, 전쟁을 하고, 문명을 이룩해왔습니다.

우리는 바쁜 가운데서도 ‘지루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매일 똑같이 살아도 되는 걸까? 하고요. 고쿠분 고이치로는 이런 지루함이 현대인 뿐 아니라 옛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존재했고, 인간 역사를 움직일만큼 대단한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왼쪽)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외치는듯한 이불 속 강아지의 모습. 파스칼의 말마따나,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아무런 역사는 쓰여질 수 없었겠죠. unsplash

심지어 파스칼은 인류의 비참함의 원인을 ‘지루함’으로 꼽기도 하죠. 만약 사람이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불 밖으로 나올 필요’ 가 없었을텐데, 굳이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싸우고 힘든 일을 만들었다는 차원에서요.

“인간의 불행은 누구라도 방에 꼼짝 않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저 방에서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당최 그러지를 못한다. 그래서 굳이 스스로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블레즈 파스칼, <팡세>

오늘날엔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 등 생존의 큰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지루함은 더 커져갑니다. 사람들은 안간힘을 쓰며 자신이 무언가 몰두하고 좋아할만한 것을 찾아다니죠. 뭐든 그저 지루함이라는 지긋지긋한 숙명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되는 겁니다. 이런 지루함을 ‘풍요의 역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자는 머릿말에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몇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중 ‘어떤 축구팬’의 사례가 눈에 띄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그는 경기 상황에 일희일비하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슈팅이 벗어나면 낙담하여 한숨을 크게 쉬었고,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상대진영을 돌파하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이상한 점은 그가 즐거워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분명 주위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뭐랄까, 자신을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나는 지금 축구 경기에 열중하고 있어”라며 주위에 힘껏 호소하는 듯 보였다.

-고쿠분 고이치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이하 동일)

저는 이 대목을 보며 깊이 공감했습니다. 지루해하는 사람들에겐 ‘○○ 하고 싶다’에서 ○○에는 무엇이 들어가도 대체로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우에도 예전에 자주 야구장에 놀러가는 야구팬 친구들을 보며 ‘나도 야구를 좋아해볼까?’ 생각했었죠. 야구라는 스포츠에 매력을 느꼈다기보다는, 바깥에서 모두 함께 같은 팀을 응원하고 노래도 하고 야외에서 뭔가를 먹는 게 신나보였습니다. 열정적으로 몰두할 무언가가 있다는 게 부러웠죠.

이런 ‘뭔가에 대단히 몰두하고 싶다는 마음’은 꼭 취미의 차원 뿐아니라, 종교, 신념, 직업 등에도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됩니다. 꼭 몰두를 통해 얻는 게 ‘즐거움’이 아니어도 됩니다.

니체는 19세기 유럽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지금 수백만에 달하는 유럽 사람들은 지루함으로 죽어버릴 지경이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무엇에 의해 괴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들은 그러한 괴로움 속에서 행동하기 위한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1822)

사람들은 이런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에 대단히 몰두하기로 결심하기도 합니다.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이니까 좋은 것일까요? 고쿠분 고이치로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일상적인 일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 말이다. 이는 결국 자신과 마주할 기회를 잃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일상적인 일의 노예가 될까? “아무튼 그냥 지루해”라는 목소리에서 도망치고 싶기 때문이다.”2)

1)예전에 인터넷 게시글에서 “만약 로또 당첨된다면 뭘 할건가요?”라는 질문에 많은 답변이 달렸습니다. 인기 댓글 중엔 요플레 뚜껑만 핥아먹고 버리기, 부페에서 초밥 한 개만 먹고 나오기 등이 있었는데요. 저는 기발하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만, 로또가 당첨이 돼도 그런 정도의 소원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면 조금 쓸쓸해집니다. 평생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이유가 (아마도) 로또 당첨금보다 적은 돈을 위해서인데, 그만큼 여유가 생겨도 요플레 뚜껑 정도밖에 떠오르는 게 없는 거니까요. 그런 삶이라면 빨리감기하면 결말엔 요플레 뚜껑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말을 한 분도 진심은 아니었겠지만, 여유가 생겼을 때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이 없다면 평소의 열심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2)고쿠분 고이치로는 이 책 후반부에서 하이데거의 ‘지루함 3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요. 지루함엔 세가지 종류가 있고, 그중 위의 코멘트는 ‘1형식(공허에 방치됨, 무엇에 의해 지루함)’에 대한 것입니다. 타려던 열차를 놓쳐서 멍해진 상황, 회의에서 의미있는 결론이 나오지 않아 지루한 상황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책을 읽어보세요.

【3.‘기분전환’을 잘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예술】

사람들은 ‘지루함을 잊기 위해 뭔가에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골똘히 하며, 제각기 분투합니다. 누군가는 탕진잼을 하며, 누군가는 축구에 열광하며, 누군가는 종교나 ‘일’에 몰두하며 제각기 지루함을 잊으려고 하죠.

하지만 고쿠분 고이치로는 묻습니다. “과연 자신을 잊고 몰두하는 삶은,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 묻죠. “그런 것은 단지 번거로운 지루함, 삶의 무게를 내던지기 위한 눈가리기 아닐까?”

저자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약간의 기분전환과 지루함이 섞여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딘가 ‘투신’해서 갑자기 대기권 밖으로 튀어나갈 궁리를 하기보다는, 어떻게하면 일상의 틈틈이 기분전환을 잘 해낼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죠.

이쯤되면 모두가 궁금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기분전환을 잘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영화 <파이트 클럽>(1999)의 주인공은 소비사회의 풍요로움, 광고들에 둘러싸여 '지루한' 삶을 살다가 타일러 더든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만나' 짜릿한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왼쪽)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사린 가스 테러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는데요. 그는 이 책에서 옴진리교를 '극악무도한 악마'로 보기보단,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옴진리교의 엘리트들은 '지루함' '삶의 무의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에 몰두했고, 결과적으로 그 헌신은 테러로 이어졌습니다. 이미지는 테러 전날 도쿄 중심부에 뿌려졌던 옴진리교의 전단("대지진, 전율의 세기말! 다음에 일본을 습격할 것은-") 20세기폭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쿠분 고이치로는 가장 먼저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맛좋은 요리를 ‘잘’ 먹기 위해선 요리에 대한 것을 조금 알아야 하듯이요. 이와 관련해 버트란드 러셀은 “예전에는 교육이란 다분히 즐기는 능력을 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먹고 마신다. 그러나 진정으로 먹지 않는지도 모른다[…]우리는 먹는다는 행위가 가능해지도록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전문학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며, 그리스어를 읽을 수 없으면 그리스어로 쓰인 고전 문학은 즐길 수 없다[…]그림이 등장하게 된 역사를 안다면 추상화를 즐길 수 있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즐기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은 향유 대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확장한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예전에 <스우파>가 끝나고 난 뒤 한 댄스채널에서 댄서들의 춤을 분석해주던 유튜브를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춤알못이기 때문에 그냥 ‘엄청 멋지구나’하면서 압도되며 봤을 뿐입니다만, 그 분석을 보고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대단하다는 걸 조목조목 알게되니 몇배로 더 댄서들의 춤을 깊이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외칠 수 있습니다. “복잡한 것을 알아서 뭐해! 그냥 봐서 재미만 있음 되지!” 일리 있는 말이긴 합니다. 다만 대체로 복잡한 건 몰라도 그만이지만, 복잡한 걸 알기 때문에 훨씬 더 풍부하게 즐거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3) 아마 연구자님들께도 나름의 그런 분야가 하나쯤은 있으실텐데요. 이런 ‘덕질’을 위한 공부나 노력은 수고롭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더 기쁘게 합니다.

이 밖에도 ‘낯선 세계에 적응’하는 능력은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게만 발달한 능력인데요. 이런 적응력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낯선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도 훌륭한 ‘기분전환’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주 낯선 나라에 훌쩍 가본다든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어본다든지 하는요.

실제로 유목생활을 하던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게 된 것은 ‘정착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굉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정착을 함으로써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곡식을 쌓아둘 수 있게 되었지만, 유목 생활을 하던 시절 인류는 낯선 환경에서 계속 적응하며 지루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장점이 있었죠. 그러고보면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겐 ‘유목 유전자’가 남아있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스트리트우먼파이터>의 배틀과 관련해 댄스 전문가의 입장에서 분석, 구체적으로 설명한 제이블랙의 유튜브 영상.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대단하긴 합니다만, 전문가의 해설을 지팡이 삼아서 '알고' 본다면 더 제대로 즐길 수 있겠죠. (왼쪽·영상) '무조건 풍요롭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 헝가리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티보르 스키토프스키(Tibor Scitovsky1910~2002)

그리고 이런 ‘기분전환 꿀팁’은 신기하게도, 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1970년대 미국 경제학자의 한 저서의 핵심 메시지와도 긴밀히 이어집니다.

현대 경제학의 고전 티보르 스키토프스키의 <기쁨 없는 경제The Joyless Economy>(1976)의 부제는 ‘유례없이 풍족한 사회, 행복은 왜 작아지는가’입니다. 통상 고전 경제학에선 돈이 많고 풍족할수록 행복이 비례한다고 여겨왔는데요. 저자는 이에 적극 반대 입장을 내세웠죠.

스키토프스키는 고쿠분 고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루함(무료함)을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보았습니다. 쾌락이나 돈이 많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고, 인간의 지루함을 이기기 위한 적당한 새로움과 낯섦, 도전정신, 번거로움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사람들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단지 생산성이나 돈만 고려할 게 아니라, ‘지루함을 없애줄만한’ 진정한 즐거움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키토프스키가 <기쁨 없는 경제>에서 ‘기분전환’의 핵심으로 제시한 것은 바로 문화(예술)입니다.

문화에서의 ‘새로움’은 우리에게 도전정신과 진정한 행복감을 주는데, 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진지한 음악과 가벼운 음악 사이에는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진지한 음악에 포함된 더 큰 복잡성과 더 많은 정보량에는 방금 언급한 것처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데, 가벼운 음악에는 그런 게 없다. 둘째, 바로 그 많은 정보량이 진지한 음악을 가벼운 음악보다 더 오래 반복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한다. 진지한 음악의 정보량이 처음 들었을 때 우리의 뇌가 그 일부를 무시하도록 할 만큼 크기 때문이다[…]관련이 없는 정보를 무시하는 습관은 정보 처리 능력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즐거움을 최대화하기에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에서 그것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만 인식하려는 우리의 습성은 그 밖의 다른 모든 정보와 형태의 구조 및 양감, 그리고 색의 조합을 의식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만 해도 자극을 즐기는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 그런 즐거움의 원천이 박탈된 삶을 살아간다[…]새로움을 즐기는 일은 학습을 필요로 하고 새로운 것을 소비한다는 것은 숙련된 소비를 의미한다.”

-티보르 스키토프스키, <기쁨 없는 경제>

이런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소위 ‘대중예술’보다는 ‘순수예술’쪽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중예술’이 ‘저급하다’는 이유가 아니라, 대중예술은 새로운 자극이 부족해서 경제학적으로 사람들에게 큰 도전을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옮겨보자면, 가성비가 안좋습니다.

만약 우리가 집 책꽂이에 열 권의 책만을 꽂을 수 있다면, 역시 한번 보고 지루해져버리고마는 책보다는 여러번 보고 또 볼 수 있는, 그리고 볼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책을 꽂고 싶을 것입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벽에 걸 그림 등도 마찬가지겠죠.

✏️

“재미없는 책과 해피엔딩으로 끝날 게 뻔한 따분한 연극, 늘 듣는 너무나 익숙한 음악, 훨씬 약한 상대와의 카드 게임 등은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다[…]거의 아무런 쾌감을 주진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책이나 연극, 미술작품 등 어떤 자극의 원천은 우리를 사로잡고 흥분시킨다…”

-티보르 스키토프스키, <기쁨 없는 경제>

3)정경영 교수의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을 생각합니다>(2021)는 이런 태도를 잘 알려주는 좋은 책입니다. 무작정 “어려운 걸 알아야 뽐내지! 엣헴!”이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악을 더 잘 즐기기 위해 음악학을 공부한다는 것입니다. 책 속의 한 단락을 짧게 인용해봅니다.

“제겐 음악을 분석하는 일이 음악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음악에 대한 경험을 경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와 경험을 더 또렷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우아, 저 5도 순환의 연쇄를 좀 들어봐””

굳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롤이나 올림픽 경기를 볼 때도 전문가 해설이 있으면 선수들의 ‘대단함’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죠.

【4.숟가락을 가져다 댈 용기 #만찬】

예술이라니! 왠지모르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스키토프스키는 우리를 안심시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물론 즐기는 덴 약간의 노력은 필요하지만, 만드는 것에 비하면 즐기는 쪽은 별로 어렵지 않으니까요.”

이런 말을 들으면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분명 <인터스텔라>를 직접 제작하는 것보다는 감상하는 편이, 고든 램지 스타일의 멋진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보단 먹는 편이 훨씬 쉽겠죠. 낯설고 어려운 것이 나와도 흠뻑 즐길 수 있는 약간의 마음의 준비, 그리고 용기 정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이미 ‘어려운 일’을 해두고 잔치상에 앉을 손님들을 위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이 쓴 <바베트의 만찬>이 떠올랐습니다.

이 이야기책은 네덜란드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청교도 목사 집 두 자매(마르티네, 필리파)에 대한 이야긴데요. 이 자매는 어려서부터 밋밋한 까만 옷만 입고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예쁜 옷도 맛난 음식도 사랑도 이들에겐 먼 일이었죠.

이자크 디네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바베트의 만찬> 영화 속 장면. 마르티네와 필리파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청교도식의 엄격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들의 삶에서 애정, 사치 등은 죄악이나 마찬가지였죠.(왼쪽) 바베트가 자신의 복권 당첨금으로 차려낸 맛있는 만찬을 동네사람들이 먹고 있는 모습. 이들은 처음 맛보는 진미에 어리둥절해져 불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 화면 갈무리

그러던 어느날 이들의 집에선 프랑스에서 유혈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급히 피신해온 바베트라는 여인이 식모 살이를 하게 됩니다. 바베트는 12년간 살뜰히 목사 집 가족을 비롯해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돌보는데요. 어느날 바베트는 무려 1만 프랑이라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죠. 바베트는 ‘마지막 소원’으로 목사의 기일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파티를 베풀고 싶다고 말합니다. 자매들은 ‘프랑스 출신’인 이 여인이 지나치게 기괴한 혹은 사치스러운 요리를 내놓아서 목사 가정의 위신을 깎을까봐 걱정하지만, 마지못해 그녀의 마지막 바람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만찬에는 평범해보이지만 깜짝 놀랄만큼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죠.

아래의 대목은 마을 사람들이 만찬을 즐기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인데요. ‘삶의 즐거움’ ‘사치(예술)가 가져다주는 지고지순한 행복감’을 묘사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그후에 일어난 일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손님들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수많은 작은 후광들이 하나로 합쳐져 거룩한 광채를 내기라도 한 듯 천상의 빛이 집안을 가득 메웠다는 것 외에는.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이 틔었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 창문이 황금처럼 빛났고 아름다운 노래가 바깥의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나갔다.

한때 서로를 욕했던 두 늙은 여인은 앙숙 같은 사이가 되기 훨씬 이전, 둘이 함께 견진성사를 준비하며 손을 맞잡고 끝도 없이 노래 부르며 베를레보그 거리를 돌아다니던 소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내게 남은 나날 역시 당신과 함께할 거요. 오늘 밤처럼, 매일 저녁 나는 당신과 저녁을 먹겠고. 육신으로가 아니라 영혼으로. 어차피 육신은 의미가 없으니. 오늘 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소. 소중한 자매여.”

“그래요. 형제님.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가능해요.”

-이자크 디네센, <바베트의 만찬>

이렇게 평생 청교도적인 마른 빵 식사만 해오던 마을 노인들은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굉장한 진미를 맛보고는 어린아이같은 영혼이 되어 눈밭을 굴러 집으로 돌아갑니다.

자매들이 손님을 배웅하고 난 뒤 산더미같은 냄비더미에 둘러싸여 피곤해진 바베트를 발견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음식을 어떻게 만든 거냐고 묻자, 바베트는 복권 당첨금을 죄다 써버렸다고 실토하죠. 이는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술가인 바베트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베트는 알고보니 프랑스의 고급 식당에서 일하던 셰프였는데요. 돈이나 노력이 얼마나 들든 상관 없이 최고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바베트의 기쁨입니다.

바베트가 차려낸 만찬을 즐긴 뒤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즐거움을 느낀 마을 노인들이 손을 붙잡고 동그랗게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왼쪽) 만찬 뒤 산더미같이 쌓인 접시들을 정리하며 자매에게 최고의 만찬을 차려내느라 당첨금을 모두 써버렸다고 말하는 바베트의 모습. 영화 <바베트의 만찬> 화면 갈무리

이런 바베트의 태도는 분명 ‘경제학적’ 차원에선 아주 바보같은 일입니다. 자기 돈을 죄다 써버린데다가, 본전을 거두긴커녕 맛좋은 식사는 전부 공짜였으니까요. 하지만 바베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즐거움 -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엄청난 만찬을 누리고 진정으로 행복해졌습니다.

이 세상엔 수많은 바베트들이 있었습니다. 이 만찬을 집어먹기 위해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대체로 그냥 초대에 응하기, 그리고 낯선 음식을 환대할 용기, 약간의 마음쏟기 정도입니다.

【5.맺음말】

‘지루함’과 ‘기분전환’으로 시작된 해찰이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요.

진작 거창한 의도는 아니었습니만, 그저 ‘못 노는 대마왕, 김스피’로서 원래부터 쉼, 기분전환에 대해 한번쯤 다루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가’라는 키워드 그 자체보다도 ‘지루함의 철학’이라든지 ‘경제학’의 차원에서 바라보니 뜻밖에 오히려 기분전환에 대한 재밌는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 읽어 본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기쁨 없는 경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류의 숙명인 지루함의 가장 큰 원인은 ‘쾌락 부재’가 아니라 ‘흥분(두근거림) 부재’이며, 이는 ‘안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번거로움, 도전’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렇다고 할 때 단지 ‘소소한 쾌락’을 주는 소확행이라든지 남의 욕망을 제시받을 뿐인 탕진잼으론 진정한 기분전환을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돈도 많이 들지 않고 적당한 도전과 헌신을 해야 하는 예술이나 깊은 취미를 가지는 편, 나와 낯선 것을 알아보는 열린 태도 쪽이 ‘가성비 갑 놀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 파스칼은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의 한 예시로 토끼사냥에 나서는 사람을 묘사했는데요. 그는 만약 토끼사냥에 나서려는 사람에게 “그런건 됐고, 그냥 토끼를 줄게”라고 하면 시무룩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저는 그저 쉬운 기분전환거리를 찾는 것은, 토끼사냥이 귀찮으니 그냥 토끼를 얻으려는 토끼사냥꾼의 태도와 비슷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편한 게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런 행동은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알쏭달쏭해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기분전환’은 자판기 속 콜라처럼 동전만 넣으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 어떻게 내가 자극을 기다리고 내 삶을 흔들만한 흥분에 맞닥뜨릴 수 있을지를 기다리는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들뢰즈는 “당신은 왜 주말이 되면 미술관이나 영화관을 찾나요? 그런 노력이나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자신이 압도당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즐기는 것을 배우고 강제로 사고하는 것을 체험함으로써 인간은 그 대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고쿠분 고이치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예전에 너무 ‘휴가 때 하고 싶은 100가지’ 버킷리스트를 세 개쯤 쓰다가 더이상 생각이 나지 않아 치워뒀었는데요. 거기에 탕진잼이나 소확행말고 차라리 좀 거창하고 번거롭고 엉뚱한 것들을 적어볼까 싶습니다. ‘제목만 보고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 보기, 제목이 웃긴 책 읽어보기, 혼자 있을 때 악어 흉내 내보기(최대한 구체적으로)...’

다행히 내가 그런 것들을 바닥부터 궁리할 필요 없이 그런걸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신실한 괴짜’들이 있으니 이들을 지팡이 삼아서 조금 휘둘러 보는 편이 누워서 잠만 자거나 탕진잼 하는 것보다는 썩 좋은 기분전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책은 꽤나 많은 괴짜들이 모여있어 금세 기상천외한 기분전환거리를 얻어낼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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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장미로 꾸미지 않으면 안 된다.”-윌리엄 모리스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고쿠분 고이치로, 최재혁 옮김,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한권의책, 2014.

-이 책의 부제는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인데요. 오늘 레터에는 분량 상+가독성의 문제로 논증 부분은 거의 덜어냈지만, "우리는 왜 지루함에 맞서 '투신'이 아닌 '기분전환'을 제대로 하는 법을 갈고 닦아야 하는가?"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파스칼, 러셀, 하이데거 등의 논리를 가져와 차근차근 알기쉽게 논리를 전개해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꼭 내용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서문부터 결론까지 개성과 에너지가 넘치는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 역시 눈에 띕니다. 그야말로 ‘멱살잡는 글쓰기’랄까요. 고쿠분 고이치로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철학을 팝니다. 하지만 누가 살까요?Philosophy sells...But Who's Buying?(링크)"라는 쓸쓸한 제목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티보르 스키토프스키, 김종수 옮김, 『기쁨 없는 경제』, 중앙북스, 2014.

-‘단순히 돈이 많고 풍족해진다고 해서 사람들의 기쁨이 늘어나진 않는다’는 말은 이젠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는데요. 티보르 스키토프스키가 이 책을 통해 이 주장을 할 당시(1976)엔 굉장히 혁명적인 발언이었다고 합니다. 의식하고 두 책을 붙여봤던 것은 아닌데, 의외로 고쿠분 고이치로의 책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이 보여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욕망을 억누르고, 노동에 집중하는 청교도적인 당시 미국 사회의 교육 등이 ‘즐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자크 디네센, 추미옥 옮김, 『바베트의 만찬』, 문학동네, 2012.

-매번 책 선정에는 우연이 여러번 끼어들곤 합니다만, 이 책은 정말로 예전에 한 칼럼에서 인용된 것을 보고 흥미가 생겨서 읽었다가 이번 회차에 함께 쓰게 되었습니다. 레터 본문에서도 썼지만, 이 책은 주로 호화로운 만찬을 먹은 후 사람들이 엄청난 행복감에 젖어 '마치 천국에 와있는 듯한' 묘사 부분이 인용됩니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을 읽어보니 핵심이 될만한 장면은 오히려 만찬 이후 산더미같은 냄비 사이에서 피곤해진채로 부엌에 기대 앉아있는 바베트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한편 티보르 스키토프스키의 책에는 '방어적 상품'과 '창조적 상품'을 나누어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호트리의 말을 빌어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의복에 의한 신체 보호효과는 입는 사람에게만 배타적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단지 옷으로 몸을 덮는 데 만족하지 않고 눈에 즐거움을 주는 멋진 의상을 입는다면, 그 즐거움은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창조적 상품' - 사치의 외부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예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쓸모를 갖는 건 아니지만, 좋은 음악을 들을 땐 모두가 공짜로 행복에 젖을 수 있으니까요. 구체적으로 김스피를 위해 만든 건 아니고 예술가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만든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금고 속 금괴와는 달리 맑은 하늘이나 햇님처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또한, 어쩌면 예술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직접 하는 것만큼 좋은 기분전환 방법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루나의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를 읽다가 “너는 좋겠다 심심할 때 그림 그리면 되니까”라는 친구의 말을 인상적으로 되새기게 된 일화를 인상깊게 봤었거든요. 저도 심심할 땐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쓰면 시간이 잘 가니 좋습니다. 물론 지금은 인스피아 덕분에(?) 기분전환과 일이 꽤 뒤섞여있긴 합니다만.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열정적인 ‘휴가’ 끝에 남은 것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1700자

🖍글 속 한 문장

“그렇게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며,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들였는데 행복하다고 느낀 건 아주 잠깐뿐이었다. 특히 여행이라면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면 더 행복할 것 같았기에, 과연 그런지 내 몸으로 경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김경의 칼럼입니다. 젯셋 족 대신 스테이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진정한 휴식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비슷한 입장입니다만, 최근은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유행을 쳐내다보니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버리고 나서 손에 남은 것 역시 없어서 그냥 말린 북어같은 삶을 살지 않게 되었나 하는 고민입니다. 결국 본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겠죠.

테러가 휩쓸고 간 곳에서 피어난 예술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4400자

🖍글 속 한 문장

부서진 거리에서 그의 음악을 듣던 군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입을 맞추고 박수를 쳤다. 살아있다는 것,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느꼈고,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들을 서로 표현했다.” 그날 밤 사람들은 테러 현장에 촛불과 꽃을 들고 나와 하나가 됐고, 와스피는 다시 한 차례 연주를 했다고 한다[...]“밥과 물뿐 아니라 음악과 문화도 중요하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테러 현장에서 첼로를 켜고 벽화를 그리고 꾸밉니다.

예전에 영국의 빈민계급의 생활을 그린 한 책에서 한 조사관이 가난한 여성 집에 있는 예쁜 찻잔 세트를 가리키며 “이런 것은 필요없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화를 냈다는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필요 이상의 무언가는 단지 ‘낭비’가 아니라 우리 삶의 핵심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포유동물의 사치스러움

독서시간: 약 5분 / 글자수: 약 2000자

🖍글 속 한 문장

“인간을 필두로 하는 포유동물은 양서류나 파충류 등의 변온성 동물에 비해 꽤나 사치스러운 삶의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 사치스러움은 정온성에서 극치를 선보인다. 체온만큼 기온이 상승하는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틀어대며 자신의 환경을 10도 이상 낮추면서도 제 몸의 체온을 37도로 유지하기 위해 인간들은 계란이 열 개나 들어간 계란말이를 거침없이 먹는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김홍표 교수의 과학 칼럼입니다. 자연은 극도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생물은 사치를 합니다. ‘사치’란 필요 이상으로 무언가를 낭비한다는 의미를 갖는데요. 과연 낭비란 나쁜 것인가? 어쩌면 적절한 낭비를 할 줄 알아야 다양성이 늘어나고 까닭 없는 즐거움도 넘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족이지만, 원래 오늘 레터의 주제를 ‘사치’로 해볼까 했는데 약간 애매해서 방향을 바꾸어보았습니다.

과정을 빚는 노래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200자

🖍글 속 한 문장

‘꿈을 잃지 말아요’라는 말은 굳이 뮤지컬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들을 필요 없는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가 뮤지컬이 되는 순간은 바로 그 이야기가 디테일을 가질 때, 굳이 결론과 관계없는 수많은 ‘과정’이 얽힐 때(다)[...]음악도 그렇다. 음악의 결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냥 ‘도’다. 웬만한 음악은 모두 ‘도’로 끝나니까. 그러니 음악에서 우리는 결론을 듣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듣는다. 그것이 음악을 듣는 방식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를 쓴 정경영 교수의 칼럼입니다. 어떤 작품을 볼 때 단순히 결론만 찍어 보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을 이모저모 살피고 그 '과정'에 동참해보는 것이 어떻게 즐거움을 주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레터에서 다루었었는데요. 저는 당시 때론 빨리 감기, 때론 느리게 보기를 병행해보자라고 제언했습니다만. 빨리 보기가 습관이 되는 것만큼은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루함'을 가성비있게(?) 물리치기 위해서라도요.

👥지난 회차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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